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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로 Oct 24. 2022

법대생의 종결

요즘 시대에는 걸맞지 않을 이야기

법대생으로서의 삶이 끝났다. 결과가 어찌되든 일단 대단히 홀가분하다. 내 삶에 이것이 그토록 무거운 짐이었구나. 이로써 하나의 오랜기간의 프로젝트가 종결되었다. 대단한 실패로서. 홀가분하다. 뭔가 굉장히 가벼워진 느낌. 


법대생으로서의 내 삶은 역시 같은 학교 법대생이었던 어떤 책의 저자가 머리말에서 스스로의 학부시절에 대해 표현하듯 "대단히 불행"했다. 그러나 그 시절이 현재의 나를 형성시킨 과거임을 부정할 순 없다.


잔혹하고도 아름답다는 표현, 그게 맞을거다. 인간의 성장이란 그런 것일게다. 나의 경우는 남들보다 그게 좀더 극적이었을뿐. 박찬욱의 '스토커'가 다시 보고싶다.



솔직히 말하자면, 진로를 고민중이다. 주변에 공식적으로 공언된 바와는 달리. 무얼 벌어먹으며 살까를 중점으로 삼을지, 혹은 다른 방향의 삶을 모색할지. 전자는 보다 명확하고 순탄해보이되 무언가 허무할까? 후자는 지고의 유의미성은 획득하겠으나 당장 힘들것이다. 그리고 후자의 경우, 내가 그것을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견뎌낼 수 있을지 확신이 안 서고. 전자에서 자리잡는다면(그것이 현재 내가 처한 신체적 한계와 부합할 수 있다는 것도 매력적이지만) 삶에 처한 여러 문제가 한번에 해결될 수 있다.


(내 학부전공은 돈을 많이 버는 데에 도움이 될만한 전공이다. 그리고 그 돈을 많이 벎에 최종적으로 진입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들을 해대는 공간. 하지만, 물질적 필요만 '충분히' 만족시키고자 한다면 길은 얼마든지 있었는지를 이제서야 알았다. 사실 난 그런 돈벌이와 관련된 문제에서 세상의 평판 따위에 신경쓸 단계는 이미 예전에 지났다.-아마도, 그정도는 내가 성장한거겠지. 어찌 판단하든 내가 나 스스로만 가지고 판단하리. 10여년전에 했던 '사회적으로는 대단히 보편'적인 선택이 얼마나 내 삶에 비극적이었는지.)


하지만 그 말은 참 위로가 되었다. "그 나이대면 아직 ㅇㅇ법대생으로는 늦은게 아니에요. 너무 조급하게 굴때가 아니에요." 그자가 나와 같은 학교 법학부였다는 사실이 그 말에 강한 설득력을 더해주었다. 학교를 떠난 이후 나는 처음으로 위로받았다. 


(2013. 8.)


요즘 시대에는 걸맞지 않을 이야기. 많은 곳에선 법대가 사라지고 로스쿨이 된지 오래다. 

학부생은 신경도 안쓰고 스스로가 고딩 때 닦아온 진력으로 알아서 크게 방치해두던 교수들은 실상 가르치는 내용과 실질은 바뀐게 없는데 로스쿨생에겐 지극정성을 다하더라는(아마 교수로서의 자신의 위신과 보다 밀접히 연결된 신생 제도의 필사적 안착을 위해서였을 테지만. 우리한텐 왜 그랬을까. 멀리보면 자기네도 다 우리랑 같은 학부 선배인데 그런 관념은 애저녁에 없었을 존재들이다. 그런 이들임에도 희한하게 교수임용에서는 이전에도 다른과에선 상상하기 힘들, Ph.D 논문 따위없어도 같은 순혈학부출신을 '미리' 교수로 채용하고 그런다고 요즘도 들었긴하다만.), 나처럼 과도기 법대의 명멸을 그 안에서 보았던 동문 친구와의 지난 대화 중 생각나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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