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여행기
여행을 출발하기 전 지인들에게 “거기 진짜 위험한 곳 아냐?”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들은 나라
여행 출발 후 만난 여행자들에게 “거기가 가장 좋았어요!”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들은 나라
공교롭게도 두 나라가 모두 멕시코이다. 나 또한 흉흉한 기사나 피해사례 등을 접하면서 다시 한번 정신무장을 한 계기가 된 나라이지만, 지금으로서는 여행하기에도 살기에도 가장 좋을 것 같은 나라가 바로 멕시코이다.
멕시코의 어느 곳이 좋았다는 말을 하기엔 좀 편협한 내용이 될 수 있는 게, 사실 가려고 했던 모든 도시를 생략하고 멕시코시티에만 8일이나 머물렀다. 도대체 멕시티의 어떤 면이 나를 그렇게 붙들어 두었을까.
쿠바를 탈출한 직후 마주한 멕시코의 첫 이미지는 ‘매우 나쁨’이었다. 우리는 칸쿤을 경유하여 멕시코시티로 가는 동선이었는데, 칸쿤에는 저녁 6시쯤 도착했고 멕시티로 가는 환승 비행은 다음날 새벽 2시였다.
세계 1위의 신혼 여행지답게 칸쿤은 으리으리한 규모의 공항을 자랑했다. 터미널끼리의 간격이 멀어 차를 타고 10여분을 가야 했는데, 무료 셔틀을 타고 갈 수 있다고 했다.
근처의 직원으로 보이는 분께 국내선으로 경유해야 한다고 했더니 터미널 3으로 가라고 했고, 터미널 3을 찾지 못해 또 다른 분께 여쭸더니 셔틀 타는 방법을 알려주어 다행히 터미널 3에 도착했다.
셔틀에서 내리자마자 자신을 직원이라고 소개한 한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우리의 비행시간이 새벽임을 확인하고 나서, 오늘은 비행이 끝나 지금 터미널이 닫히므로 공항 근처의 시내로 나가서 식사를 하고 쉬다가 새벽에 체크인 시간에 맞춰 돌아오면 된다고 택시기사를 주선해주었다.
갓 쿠바를 나와 갑자기 접한 문명세계도 적응이 안되는데, 복잡한 환승체계까지 가세하여 어리바리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잠시 그녀와 이야기를 나눈 후 전광판을 확인했더니 터미널 4는 아직 열린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는 그 남자를 무시하고 터미널 4로 가기로 했다. 직원 명찰까지 보여주며 친절을 베풀던 그 남자는 우리의 의중을 확인한 후엔 더 이상 말을 걸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라운지에서 푹 쉬다 무사히 환승할 수 있었다. 터미널 4에서 타는게 맞았다.
우리에게 터미널 3으로 가라고 했던 직원들은 뭔지, 어떻게 공항 터미널에서 버젓이 사기꾼들이 활개 칠 수 있는 건지, 내가 지금까지도 오해를 하고 있는 건지 여전히 진실은 알 수 없지만, 정황상 사기가 맞는 것 같아서 지금도 떠올리면 언짢아진다.
이러한 첫인상에도 불구하고 멕시코를 사랑하게 만든 멕시코시티의 매력에 대한 이야기를 지금부터 시작해보려 한다.
사람들
지난 월드컵 때 한국이 독일을 이기면서 멕시코가 본선에 진출하게 되어 한국을 더 좋아한다는 말을 듣긴 했는데, 연관이 있는 건지 아무튼 대체로 친절하고 인심이 좋았다.
두리번거리면 먼저 도움을 주려고 했고 지하철에서도 내릴 역이 되면 한번 더 확인시켜 주었다. 스페인어를 못 알아듣는 눈치면 주변에서 짧은 영어로라도 알려주려고 했고, 급하게 프린트를 할 일이 있었는데 돈을 안 받으려고 했다.(성의 표시는 했다.) 사진을 찍자고 요청해 오는 사람들도 되게 겸손했고 순박해 보였다.
그리고 가격 흥정이 거의 되지 않는 나라인데, 그런 만큼 터무니없는 금액으로 바가지를 씌우거나 하지 않고 어느정도 정해진 금액을 부른다. 여행하면서 돈을 쓸 때마다 불이익을 당하는 걸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가져왔기 때문에, 이 점도 매우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관광지
예술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디에고 리베라와 프리다 칼로를 알 것이다. 몰랐다고 하더라도 그들에 대해 조금만 공부하면 흥미가 생길 것이고, 그들의 작품이나 생가를 만날 수 있으니 의미 있는 여행이 될 것이다. 그리고 Vasconcelos 도서관이 있다. 우리에게 인터스텔라 도서관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멕시코에도 피라미드가 있다는 건 많은 사람들이 몰랐을 것이다. 유적지나 고고학에 관심이 있다면 ‘테오티우아칸’이라는 거대한 피라미드가 있는 고대도시를 방문할 수 있다. 아메리카 대륙에 있는 피라미드 중 가장 큰 규모라고 하며 기원전 2세기에 지어진 걸로 추정된다고 하니 정말 대단하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다.
자연경관을 보거나 물놀이를 좋아한다면 근교에(조금 멀긴 하지만) Las estacas라는 타잔 촬영지와 Tolantongo라는 산속의 자연 온천이 있다.
Tolantongo는 ‘프리한19’라는 방송에 소개되어 더욱 유명해졌고, 나도 실제로 가 봤는데 1박2일로 놀지 않고 당일에 돌아온 게 한이 맺힐 정도였다.
그 외에도 에스파뇰 침략의 흔적이 남아 있는 소깔로 광장, 미국과의 독립전쟁이 담긴 차풀테펙 성, 재규어와 하이에나, 흑표범도 볼 수 있는 국제적 수준의 동물원 등 볼거리가 많고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Six Flags(놀이공원)가 멕시코에도 있으니 정말 할 게 많다.
물가
표면적으로 GDP만 놓고 보자면 멕시코와 우리나라는 비슷한 수준이다. 하지만 생활 물가는 훨씬 더 저렴하다.
지하철 체계가 꽤 잘 되어 있어 환승을 하면 어디든 갈 수 있는데, 무제한으로 환승이 가능한 지하철 요금이 300원 정도이다. 지하철과 버스의 교차 환승은 되지 않지만, 버스 요금도 360원 정도이니 정말 저렴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버가 잘 되어 있고 요금 역시 저렴한 편이라 대부분의 여행객들은 우버를 타고 다닌다.
외식 비용도 저렴한데, 타코나 브리또 같은 현지 음식이 저렴한 건 당연하고 버거킹, 도미노피자, 스타벅스 같은 체인점들도 보통 한국보다 천 원 정도 저렴하다. 타코만으로 한 끼를 때운다면 3~4천 원이면 배부르게 먹을 수 있고, 무엇보다 좋았던 건 한국에선 이천 원이 넘는 음료수의 가격이 천 원 전후라는 것이다.
한인 인프라
이미 멕시코시티에 정착해 살고 계시는 한국인들이 많은 것 같다. 지금까지 갔던 나라 중에서 가장 한식당이나 한인마트가 많았다. 한글 이름으로 된 카페도 있었고, 저렴한 일식당도 있었다.
장기 여행자에겐 이러한 요소가 생각보다 크게 다가올 수 있다.
여행 떠나온 지 3개월 만에 짜장면, 짬뽕, 탕수육을 먹었고 꿈에 그리던 치맥도 할 수 있었다. 심지어 순대국밥도 있었는데 예산 초과라 먹지 못해 너무너무 아쉽다. 그리고 한인마트를 두 번 이용했는데, 여행객인 걸 알아본 아주머니께서 떡과 김밥의 가격도 깎아주시고 심지어 라면을 열 봉지 정도 샀더니 김치를 서비스로 주셨다. 화룡점정이었다.
아마 쿠바에 있다가 나와서 상대적으로 멕시코가 더 편하고 좋았는지도 모른다. 숙소와 카페에서 wi-fi가 빵빵 터지는 데다가 지하철에서도 wi-fi가 되니 더 혹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 나라에 대한 이미지를 결정짓는 가장 핵심 요소는 사람들과 분위기인 것 같다. 다른 모든 게 좋았더라도 사람과 분위기가 별로였다면 이렇게 멕시코를 좋게 기억하진 못했을 것이다.
이제 같은 멕시코지만 전혀 다른 분위기인 유카탄 반도로 떠난다. 수천 개의 세노테들과 마야 문명이 살아 숨 쉬는 곳이며 그 유명한 칸쿤이 속해 있는 반도다. 많이 덥다고 해서 조금 걱정은 되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 중의 하나인 세노테에 갈 수 있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흥분이 된다.
유카탄 반도의 아름다운 경관들은 멕시코 여행기 2에서 소개할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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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