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여행기
‘독일’ 하면 떠오르는 것이 뭐가 있을까. 나치와 히틀러. 우리나라와 같은 분단국가였다가 통일을 이룩해 낸 표본. 독일 3사라고 불리는 고급 자동차와 아우토 반. 하얀 유니폼의 축구 국가대표와 분데스리가. 차범근 및 한국 축구 선수들. 음... 다니엘?
이 정도로 기본 이하의 상식을 가진 나지만, 독일이라는 나라에 대한 이미지는 확실히 있었다. 뭔가 발전되어 있는 깨끗한 도시에 키는 크지만 노잼인 백인들이 살고 있는 그런 곳? 아무튼 독일이라는 이름 자체에 끌림이 있었고 그렇게 우리는 예정에 없던 독일행을 감행했다.
폴란드에서 U-20 월드컵 결승전이 열리는 걸 알고 우리는 즉흥으로 폴란드로 향했었다. 모로코의 사하라 사막, 이미 예약해 둔 모로코-체코 항공권까지 모두 버리고 말이다. 엄청 손해 보는 일이었지만 끌리는 대로 따랐고, 즉흥여행의 매력을 한껏 느꼈다. 그래서 그 맛에 빠져버린 걸까.
폴란드를 거쳐 체코의 수도인 프라하에 가게 된 우리는 프라하에 대해 알아보다가 두 시간만 가면 독일의 드레스덴이라는 소도시에 갈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가벼운 흥분과 함께 구글 지도를 켰고, 드레스덴과 베를린이 가깝다는 사실까지 알아냈다. 그래 이거야! 그렇게 우리는 베를린으로 가게 되었다.
확실히 무리하는 감은 있었다. 그동안의 모든 에어비앤비 숙소는 비싸도 3만 원 선에서 해결되었다. 그러나 베를린은 가볍게 5만 원을 넘겨주셨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에 그만큼 독일을 더 열심히 즐기기로 했다. 약 4시간이 걸려 베를린에 도착했고, 도착 후 2시간도 지나지 않아 나는 베를린을, 그리고 독일을 사랑하게 되었다.
인생은 독일 사람들처럼 살아야 한다.
상상만큼 깨끗한 모습도 아니었고, 특출나게 발전된 모습도 아니었다. 자동차가 아닌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고, 지하철 안에도 자전거를 세울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 정도가 인상적이었다.
그 외엔 여느 도시들과 다를 바 없었다. 아니 오히려 더 낙후되고 더러워 보이는 건물과 거리, 온몸이 문신인 사람들 등으로 인해 어두운 긴장을 느꼈다.
그런데 항상 웃었다.
길을 물어보면 친절히 어딘지 알려주며 웃었다. 도로를 건널 땐 차를 세우고 양보하며 웃었다. 길거리나 가게에서 길을 막고 서 있으면 조심스레 비켜달라고 하곤 웃었다. 실수로 자전거도로를 걷고 있어도 옆으로 걸어야 한다며 알려주고 웃었다.
특히 가게에서 물건을 사거나 할 때 의사소통이 잘 안되어 곤란한 상황이 종종 생기는데, 독일에선 곤란하지 않았다. 기다려주었고 다시 한번 들으려 귀 기울여 주었다. 물론 웃으면서 말이다.
웃음의 힘을 느꼈다. 나는 그들에게 겸손해지고 착해질 수밖에 없었다. 인상을 쓰거나 언성을 높였다면, 비록 나한테 잘못이 있더라도 순순히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고 내내 불쾌했을 것이다. 도시가 아무리 멋지고 깔끔하다 한들, 다시 오고 싶지 않은 곳이 됐을 것이다.
항상 여유와 배려를 외치며 살아온 나지만, 독일에 오니 발 끝에도 못 미쳤다. 가끔 바빠서 어쩔 수 없다며 서둘러 운전하던 내가, 답답한 사람을 보면 속으로 비난하던 내가, 무표정으로 타인을 대하던 내가 극도로 작아 보이고 부끄러워졌다.
이거였다. 내가 바라는 대한민국과 내 삶이 이런 모습이었다. 급하고 짜증내고 성질내는 사람과 상황이 오히려 어색하고 비난 받는 분위기. 진짜 여유에서 나오는 미소를 머금은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그런 분위기의 삶 말이다.
그들의 여유를 체감하니 모든 게 멋졌다. 자동차로 세계를 호령하는 나라지만, 자전거를 정말 많이 탄다는 사실이 다르게 다가왔다. 발전의 단계를 넘어 건강과 환경으로 회귀하는 탈선진국의 모습이 아닐까.
독일은 현재 EU(유럽연합)의 리더국가이다. EU의 모든 안건은 메르켈이 최종 결정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영향력이 있고 돈이 있는 나라다. 패전과 분단, 그리고 통일로 인해 경제가 바닥을 쳤음에도 불구하고 현재는 다시 유럽의 패권을 쥐고 있는 대단한 나라다.
그러나 그들은 으스대지 않는다. 베를린 한가운데에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을 설치하여 유대인에게 속죄하고 희생자들을 기린다. 직접 아우슈비츠를 견학하며 과거를 반성하고 되풀이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러한 자기반성과 인정은 주변국들의 귀감이 되기에 충분하고, 적대감을 덜어줄 것이다. 자신을 낮추는 행동과 겸손은 신뢰로 연결되고 신뢰는 독일을 보증하는 이미지가 될 것이다. 그러한 이미지와 기술력 등 복합적인 것들이 작용해 지금의 독일을 만들었을 것이다.
강대국에서 나오는 여유를 몸에 밴 채, 그들은 또 다시 웃는다. 그리고 웃을수록 강해진다. 아름다운 선순환이다.
정말 인생은 독일 사람들처럼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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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