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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간지 Aug 15. 2024

성찰적 관음, 존 오브 인터레스트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 관람 후기.

나는 평소에 영화를 보기 전 전체 줄거리를 확인한다. 과거 학교에서 들은 영화 비평 수업에서, 일반 대중은 스포일러를 당하고(?) 영화를 보는 것이 작품에 집중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내용을 배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 본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어떠한 사전 정보도 찾지 않은 상태에서 관람했다. 심지어 어떤 장르인지, 제목이 'Zone~' 인지 'John~' 인지도 몰랐다.



영화는 지루한 편이였다. 단란하게 지내는 가족의 모습, 예쁘게 꾸민 집, 직장에 헌신하는 엘리트 군인 아빠. 중간에 아빠가 강제 전출 당하는 장면이 있지만, 그냥 헤프닝일 뿐 서사에 긴장감을 조성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찝찝한 느낌이 가시지 않았다.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 홀로코스트 작품들을 떠올려 보자. 쉰들러 리스트, 피아니스트, 안네의 일기등이 전세계적으로 히트를 친 작품이다.

보통 전쟁 내지 학살의 참상을 그린 영화는 내용이 인물의 감정을 호소하는 방향으로 전개된다. 유대인의 아픔을 보여줌으로써 나치의 끔찍함과 잔혹성을 일깨우는 것이다. 하지만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정 반대의 관점에서 서사를 가져간다.


'타인의 고통을 헤아릴 줄 모르는 생각의 무능은
말하기의 무능과 행동의 무능을 낳는다'
- 한나 아렌트

영화에 등장하는 군인 가족의 일상이 얼마나 잔인한 것이였는지, 직접적인 폭력이 없을지언정 잘못된 생각을 가지는 것 만으로도 악하다고 할 수 있다.

회스 가족의 집은 장벽으로 둘러쌓여있고, 그 뒤에 유대인 수용소가 위치해 있다. 끊임없이 수용소에서 들려오는 비명과 고함을 회스 가족은 무시하는걸까.

관객의 신경을 건드리는 불쾌한 소리가 회스 가족에게 마치 당연한 것 처럼 들리는 모양새는 경각심의 결여 또는 무지가 중죄임을 나타낸다. 무능함도 악이다.


비판은 회스 가족에게만 향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영화에서 인상깊게 느낀 또 다른 장면은 현대에서 수용소를 관리하는 직원들의 모습이다.

끔찍한 참상이 머물러있는 물품들을 유리벽 사이에 두고 아무 생각 없이 일을 하는 사람들과, 그 모습을 지루하게 보고있는 나를 포함한 관객. 영화는 모두를 비판한다.

우리 모두를 회스 가족과 비슷한 위치에 놓는다. 결국 영화는 모든 사람의 마음에 악이 존재한다는 것, 홀로코스트의 역사에서 우리 모두가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말한다.


또 하나 흥미로운 지점은 관객이 영화를 바라보는 시점이다.

다양하지만 고정된 위치에서 그들을 '관찰'하는 방식은 중립적인 위치에서 사건을 바라보라는 의도가 담겨있는듯 하다. 나는 영화를 만들었고 해석은 알아서 하라는 것인가.

인물을 집중해서 보여주는 장면은 한 두번에 지나지 않는다. 사고와 성찰은 관객 스스로 하는 것이지 영화가 떠먹여주는 것이 아니라는 느낌이다. 이 또한 홀로코스트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없던 방식이다.


하지만 배경에 깔리는 섬뜩한 소리가 영화 전반에 깔려있고, 비명에 가까운 아기의 울음소리와 간간히 등장하는 충격음과 붉은 화면 또한 긴장감이 끊어지지 않도록 돕는 장치이다. 이를 통해 관객이 평화로운 분위기에 적응하지 않고 주제에 집중하도록 유도한다.


결론을 내리자면, 우리에게 반성과 공감을 호소하기보다 스스로 성찰할 수 있게 만드는 영화다.

영화관에서 막 나왔을 때에는 '그래서 뭐 어쩌라고' 의 느낌이 강했지만, 곱씹어볼수록 영화가 던지는 주제에 대해 다양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정말 섬뜩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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