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는 알까

윤선도, <오우가> 중 4수

by 한가온

아파트 단지를 산책하다가 소나무 아래에서 잠시 멈춰 섰다. 경비원 아저씨가 커다란 갈대 빗자루로 바닥을 쓸고 계셨다. 아스팔트 바닥엔 황토색으로 빛이 바랜 소나무 잎, 그러니까 송엽이라 불리는 그것들이 잔뜩 떨어져 있었다.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다시 우수수 떨어질 것만 같은 그것들. 경비원은 아무 말 없이 그것들을 한쪽으로 모으고 있었던 거다.

그 모습을 보다가 문득 생각했다.


그 옛날, 그 사람들은 왜 늘 소나무를 이야기했을까.


지조, 절개, 굳은 심지. 사계절 내내 늘 푸르다는 이유로 사람의 마음을 비유할 때면 어김없이 소나무가 등장한다. 선비의 마음도, 충신의 절개도, 흔들리지 않는 의지도 결국 소나무에게 맡겨진다.

그런데 아파트 단지에서 본 소나무는 조금 다른 모습이다.

곧게 뻗었다기보다는 삐쭉삐쭉하다. 가지는 제멋대로 뻗어 있고, 바늘 같은 잎이 촘촘하게도 자라 있다. 바람이 불면 그 잎들이 마찰하며 사각거리는 소리를 내기도 한다.

나는 가끔 그 모습이 굳은 절개라기보단, 세상에 조금 예민하게 반응하는 존재처럼 느껴지곤 한다.


그래서 더 궁금해진다.

소나무는 알까.

사람들이 자기에게 그런 의미를 붙여왔다는 걸.


선비들은 이 나무를 보며 절개를 이야기했다. 다른 나무들이 잎을 떨구는 차디찬 나날에도, 홀로 추위를 이겨내며 사시사철 푸르다는 이유로.

하지만 내가 보는 소나무는 선비의 그것과는 다른 존재다.


이맘때의 봄이 되면 송홧가루를 잔뜩 날려 바닥은 금세 누렇게 변한다. 어쩌다 환기라도 시키기 위해 창문을 조금 열어두면, 그 틈새로 누런 가루가 집안 곳곳에 흔적을 남기고 간다. 가까운 아파트 단지에서는 3층까지의 조망을 가린다는 이유로 베어지기도 했다.


누군가에게는 절개의 상징이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민원의 대상이다.


어쩌면 소나무는 그런 걸 전혀 모른 채 그냥 서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겨울이 오면 겨울을 견디고, 봄이 오면 송홧가루를 날리고, 그렇게 자기만의 계절을 지나가고 있을 뿐.


나는 가끔 그 차이가 궁금해진다.

우리가 어떤 존재를 보며 붙이는 의미와, 그 존재가 실제로 살아가는 방식의 괴리.


사람도 비슷하다. 누군가는 우리에게 어떠한 ‘이미지’를 붙인다. 단단한 사람, 침착한 사람, 늘 괜찮은 사람. 그렇게 한 번 붙은 의미는 마치 본질인 것처럼 우리를 따라다닌다. 하지만 정작 그 사람은 그저 하루하루를 그저 그런대로 살아가는 중일지도 모른다.


소나무가 절개의 상징이 된 것처럼, 우리도 때로는 누군가의 상징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다시 한번 소나무를 본다.


절개의 상징이 아닌, 그냥 거기 그렇게 살아있는 나무로.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존재로 말이다.


오우가(4수)

더우면 꽃 피고 추우면 잎 지거늘
소나무야 너는 어찌 눈서리를 모르느냐
깊은 땅 속까지 뿌리가 곧을 줄을 그것으로 인해 알겠구나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누가 시켰으며 속은 어이 비었느냐
저러고도 사시사철 푸르니 그를 좋아하노라

_윤선도
누군가에겐 절개의 상징이던 소나무가
도시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존재합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붙여온 의미에 대한
간극을 생각했습니다.
한가온 올림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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