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에서 울지 않았다

박형준, <해가 질 때>

by 한가온

망자는 자기를 사랑했던 사람의 꿈에 흉측한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일부러 정을 떼게 하려고, 더 이상 자기에게 마음 쓰지 말라는 마지막 배려 같은 거라고.


내 할머니는, 내 꿈에 한 번도 나타난 적이 없다.


박형준의 시 ‘해가 질 때’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해가 질 때까지 할머니는 메밀꽃밭에 앉아 계시리라. 붉게 남은 빛이 오래 나를 지켜주리라.”


시를 읽다 보면, 세상을 떠난 할머니가 저녁 무렵 다시 돌아와 냇물에 발을 씻으며 손주를 지켜보는 장면이 그려진다. 죽음 이후에도 이어지는 어떤 보호 같은 것.

하지만 내 기억 속 할머니는 그런 모습으로 나타난 적이 없다.


내 할머니는 2016년 6월에 돌아가셨다. 당시 우리 나이로는 아흔넷. 실상 언제 숨을 거두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기는 하였으나, 그렇게 급작스럽게 세상과 작별하리라고는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다.


점심 즈음이었을까. 할머니가 계시던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현재 산소포화도가 60% 정도로, 아주 위독한 상황이니 빨리 병원으로 오라고 했다. 우리 식구들은 소식을 접한 후 곧장 병원으로 달려갔고, 그게 전부였다. 드라마나 영화에서처럼, 마지막을 앞둔 이의 힘겨운 한 마디 같은 건 없었다. 아마 할머니도 본인의 죽음을 예견하지 못했을 거다. 간호사의 말에 따르자면, 전날까지만 하더라도 모든 수치가 안정적(연세에 비해)이라 하였으니.


장례식에서도 나는 울지 않았다.

염을 할 때에도, 발인을 할 때에도.


놀라기는 했지만 슬프지는 않았다. 오히려 내 아버지가 걱정되었을 뿐. 어른들은 장례 절차를 정리하고, 비용을 계산하고, 조문객을 맞이하며 능숙하게 움직였다. 사람이, 그것도 내 존속이 세상을 떠났는데 아무렇지 않게 돈 이야기가 오가고, 웃으며 조문객을 맞이하고, 안부를 물으며 술 한 잔을 걸치고. 마치 이런 일을 여러 번 겪어본 사람처럼, 그래서 슬프지 않은 사람들처럼 움직였다.

그런데 할머니 친척들이 도착하자 아무렇지 않아 보이던 그들이 서로서로 엉겨 붙은 채로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그제야 알았다. 사람은 슬퍼도 울지 않을 수 있고, 울지 않는다고 해서 슬프지 않은 것도 아니라는 걸.


나는 그냥 잡일을 했다. 조문객을 맞이하고, 식사를 대접하고, 신발 정리를 하고. 슬픔보다는 내 아버지가 괜찮을지, 장례가 잘 치러질지 그런 생각만 했다. 그러기 위해선 내가 몸을 바쁘게 움직이는 것밖엔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했다.

할머니의 영원한 안녕을 위해서가 아니라, 슬퍼할 겨를도 없는 불쌍한 내 아비를 위해.


어릴 시절 나는 할머니를 정말로 사랑했었다.


할머니 집은 아주 오래되고 낡은 집이었다. 천장은 내려앉았고, 전등 스위치는 천장에서 내려온 전선에 간신히 매달려 있었던. 텔레비전도 아주 작은 것이었는데, 채널을 바꾸려면 다이얼을 좌우로 돌려야 했다. 그걸 올려놓은 작은 선반에는 내 아버지가 젊었을 때 찍은 사진 몇 장이 놓여 있었다.

거기서 하룻밤 자는 날이면, 밤이나 새벽에 창문을 멍하니 바라보곤 했다. 불투명한 창문 어딘가에 노란 불빛이 반사되어 꼭짓점이 아주 뾰족한 네모 모양으로 보였다. 어디서 들어온 빛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내 옆엔 꼭 할머니가 누워있었다. 모로 누워 손을 모아 베개처럼 머리를 받치고 자는 건, 할머니의 버릇이었다.


그 시절 나는 할머니 무릎에 앉아 허무맹랑한 소리를 하곤 했다. 한 번은 커서 치과의사가 되어, 할머니의 이를 고쳐주겠다고 했다. 할머니의 앞니 하나는 은니였다. 어린아이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아마도 할머니에 대한 애정에서 나온 말이었을 거다. 할머니는 내가 나이를 먹는 내내 그 말을 하곤 했다.

‘니 어릴 때, 커가 할미 이빨 고치준다꼬 했던 거 기억 나나.’

나중에 치매가 오고 나서는 다 큰 내 얼굴을 알아보지 못했는데도, 그때 그 말만큼은 기억하고 있었다. 아마 할머니 기억 속에는 다섯 살쯤 되었던 내가 그대로 남아있었나 보다.

딱 새모이만큼만 밥을 먹었다던 내 할미에게, 그때의 그 기억은 죽는 날까지 먹고 살았을 영양제였겠지.


사춘기가 되면서 상황은 조금 달라졌다. 할머니는 우리 집에서 함께 살게 되었고, 그때는 이미 거동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그 시절의 나는 할머니를 미워했다.

왜 할머니는 항상 부모님 싸움의 중심에 있는 걸까. 왜 우리 식구가 평화롭지 못한 이유가 되어야 할까.


같은 집에 살면서도 나는 할머니와 거의 말을 섞지 않았다.

그러다 병세가 악화된 할머니는 병원으로 옮겨졌고, 몇 년을 더 살다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그리고 그로부터 10년이 지났다.

나는 여전히 할머니 꿈을 한 번도 꾸지 않았다.

할머니를 ‘한때’만 사랑했어서, 그래서 나타나지 않는 걸까.


나는 할머니를 사랑했던 걸까. 아니면 미워했던 걸까. 아니면 그 둘 사이 어딘가에 있었던 걸까.

슬픈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무렇지 않은 것도 아니고, 일종의 후회 같은 게 점철된 상태도 아니고,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마음이 남아 있다.

마치 그 시절, 그 밤. 할머니 방에서 넋을 놓고 쳐다보던, 창문에 비친 노랗고 뾰족한 반사 빛의 정체처럼.


해가 질 때

냇물에 발을 씻으며
메밀꽃밭 저녁해에 붉게 피어난다

어린 나만 놔두고 할머니는
메밀꽃밭을 이고 저승으로 가시었으나
낮아지는 저녁해를 타고
다 커서도 혼자 놀고 있는 나를 찾아
저렇게 냇물에 발을 씻으신다

해가 질 때까지 할머니는
메밀꽃밭에 앉아 계시리라,
붉게 남은 빛이 오래 나를 지켜주리라

_박형준
어떤 감정은 시간이 지나도
정확한 이름을 붙이기 어렵습니다.
사랑과 미움 사이에 남아있는
기억에 대해 쓴 글입니다.
한가온 올림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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