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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온나길 Mar 26. 2020

"역사를 왜 배워야 하죠?"

책 <역사의 쓸모> 리뷰

 -<역사의 쓸모>/최태성/다산초당(다산북스)

 -출간연도: 2019                                    



 대체 역사라는 걸 왜 배워야 할까? 특히 요즘처럼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에, 한 치 앞도 불확실한 시대에 고작 지나간 과거의 기록을 공부해야 할 이유가 있나? 역사가 기본 과목이기 때문에 배우기는 배우지만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역사의 쓸모>는 이 질문에 대한 저자의 대답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역사를 '삶이라는 문제에 대한 해설서'라고 표현한다. 그 표현 그대로 이 책은 역사를 통해 저자가 배워온 것과, 우리가 역사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것들을 역사 속 이야기를 사례로 들며 이야기해나간다.


어떤 사람은 역사가 단순히 사실의 기록이라고 말하지만, 저는 오히려 그것은 착각이고 역사는 사람을 만나는 인문학이라고 강조합니다. 역사는 나보다 앞서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어떻게 살 것인지를 고민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존재예요.                                      


 역사 속 인물들, 역사적 사건. 이렇게 표현하니 뭔가 엄청나고 별난 것처럼 느껴지지만, 생각해보면 역사라는 것은 과거에 있었던 일들이다. 과거의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이 바로 '역사 속 인물'이고, 그 사람들이 살아가며 일어났던 일들, 그 중에서도 기록으로 남은 일들을 '역사적 사건'이라고 부른다.


 '역사'라고 통틀어 부르면 우리의 삶과는 동떨어진 어떤 것으로 여겨지지만 결국 모든 것은 사람들이 살아온 이야기이며 사람이 사는 이야기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도 곧 역사가 될 거고, 우리는 한 시대를 살다간 역사 속 인물이 될 것이다.


 역사라는 건 우리보다 먼저 살다간 사람들의 종결된 이야기들이다. 이미 종결된 이야기이기에 그들의 삶과 그 삶 이후의 흐름들, 그리고 한 시대에 살았던 여러 삶의 얽힘 등을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우리는 이전에 일어난 사건 하나, 인물 하나에 초점을 맞춰 그 궤적을 따라갈 수도 있지만 더 고도를 높여 그 거대한 흐름을 멀찍이 떨어져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즉, 우리는 역사를 확대하거나 축소하는 망원경처럼 자유자재로 들여다 볼 수 있고, 그것을 통해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다. 그렇기에 책에서 말하듯, '역사는 삶의 완벽한 해설서'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들을 몇 가지 꼽자면 역사적 사고, 즉 거시적 관점과 역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 그리고 한계라고 생각되는 것 앞에서도 멈추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역사는 과거에서 현재로, 그리고 미래로 흐른다. 물이 흘러가는 흐름을 지켜보듯이 우리는 역사가 흘러가는 방향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 갑작스럽게 툭 튀어나오는 변화는 없으며 우리는 이전 시대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것들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한다. 우리는 신분제를 부자연스럽게 여기는 세상에 살고 있으며,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언젠가는 사람은 태어났을 때부터 신분이 정해져 있는 게 자연스러운 것을 넘어 당연했다. 오히려 신분제가 불평등하다는 말이 이상하게 들렸을 것이다.                                    


김득신의 그림. 옛날에는 양반과 마주치면 이렇게 허리를 굽혀 인사해야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들이 바라던 시대가 찾아왔어요. 신분제 폐지라니 말이 돼?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던 이야기가 지금은 너무도 당연한 현실이 되었습니다. 두려움 속에서도 먼 미래를 보며 나아갔던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희망을 품은 사람이 있었고, 그들이 도전했고, 그 덕분에 지금의 우리가 그 당연한 것을 누리고 사는 건지 모릅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것, 태어났을 때부터 주어진 것들은 이전에 살다간 사람들이 불편함을 느끼고, 호소하고, 그들의 갈망을 이루기 위해 목숨까지 걸고 부딪쳤기에 뿌리내린 것들이다. 우리 시대의 꿈은 무엇일까? 우리는 미래 세대를 위해 어떤 꿈을 꾸고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역사는 우리에게 발 앞이 아니라 더 큰 흐름, 미래에까지 이어질 그 커다란 흐름을 볼 수 있게 해준다.                                    

                                                                                             

역사를 통해 우리는 사회의 변화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역사의 수레바퀴 안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문제란 별로 없습니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변화의 움직임도 알고 보면 역사에서 그 문제의 뿌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좀 더 폭넓게 사회 문제를 이해하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가질 수 있게 되죠.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순간, 문제의 핵심을 바라보고 해결하는 원동력을 얻게 될 것입니다.                                        



또, 이 책에서 소개하는 사례를 통해 우리는 이미 배워 익히 알고 있는 역사적 사건을 그 시대의 관점, 즉 새로운 관점으로 볼 수 있다. 소개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은데 그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원종, 즉 원 간섭기에 대한 이야기였다.                                    


고려가 원의 부마국이 된 일을 창피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학창시절에 원 간섭기를 치욕의 역사로 배운 분들도 있을 것이고요. 하지만 저는 꼭 그렇게만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세계를 지배하던 몽골, 그리고 가장 넓은 나라였던 원나라의 사위 나라입니다. 그 대제국이라는 판 위에서 고려의 위치를 보자는 거예요. 고려는 확실히 다른 속국들과는 달랐어요.                                        


저는 가끔 항복을 앞둔 원종의 마음이 어땠을까 생각해보곤 합니다. 자기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위기의 연속이었어요. '이제 고려는 끝났구나'라는 자포자기의 심정이었다면 정말 고려는 끝났을지도 몰라요. 몽골제국에 편입되어 마치 섬과 같은 끄트머리 변방 땅으로 남았을 수도 있어요. 그러나 원종은 그게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다 포기하고 될 대로 되라지 하고 내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에서 자신이 지켜야 하는 것, 얻어야 할 것을 빠르게 계산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패를 이용해 그처럼 대담한 제안을 던졌지요. 그가 기지를 발휘한 덕분에 고려는 계속해서 자치국가로 남을 수 있었습니다. 이는 분명 원종의 외교적 성과였습니다.                                      


 우리는 고려의 원 간섭기를 치욕의 역사로 배운다. 그런데 그 시대에 사는 사람의 시점으로 보면 또 다른 것들이 보인다. 먼 시선에서 봤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다. 당시 몽골은 아시아는 물론이고 유럽까지 정복활동을 벌여 거대한 땅을 지배하던 나라였다. 그런 대제국이 파죽지세로 오랜 시간 공격을 해오는데도 40년 넘게 저항하며 버텼다는 것, 그리고 결국 항복을 하면서도 자치권을 지켜내 원나라의 속국이 되지 않았다는 것. 내가 그 시대에 살았다면 과연 그럴 수 있었을까? 그렇게 생각해보면 그 시대와 그 시대의 사람들을 다른 시선으로 평가할 수 있게 된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역사를 보는 것은 중요하지만, 자칫 그 시대가 아닌 현대라는 전혀 다른 시대에 사는 우리의 시점으로 그 시대를 바라보고 그 시대 인물을 속단하게 될 수 있다. 그렇기에 역사 속 인물의 시점으로 그 인물의 선택과 그 시대를 바라보는 것도 중요하다.                                    


벽을 타고 자라나는 담쟁이 덩굴이 옛 위인들과 현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를 떠올리게 한다. 벽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지만 저 위에선 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장보고, 정도전, 김육, 정약용………. 우리는 이들을 잘 알고 있다. 이들은 흔히 우리가 '위인'으로 분류하는 사람들이다. 위인하면 뭔가 굉장히 특별한 사람들일 것 같다. 이들은 위인이기에 다른 사람들과는 특별히 다르고, 그래서 역사에 이름이 남았을 것만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인상적이었던 건 그들이 타고난 특별한 재능이며 천재적 면모들이 아니었다. 이 책에 소개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한계에 안주하지 않는 것'이다.


 장보고는 신분제가 공고했던 폐쇄적인 신라에서 나고 자란 평민이다. 정도전 또한 신분적인 한계에 더해 당시 고려조정과 맞지 않았던 사람이었으며, 김육은 당시 힘 있는 귀족들이 모두 반발했던 대동법을 꿋꿋이 밀고나간 사람이다. 정약용은 당시 가문은 폐족(벼슬못함)이 되었으며 형제들도 모두 뿔뿔이 유배를 갔다. 뛰어난 능력이 있었지만 정작 조정의 일을 했던 시간보다 유배를 가서 살았던 세월이 더 길었다.


 보통이라면 '이건 내가 뛰어넘을 수 없는 벽이야. 왜 이런 시대에 태어나서, 왜 나는 이렇게 태어나서' 등 한탄하며 한계를 느끼고 체념했을 벽 앞에서 그들은 멈춰서지 않았다.


 장보고는 바다를 건너 당나라로 갔고 정도전은 이성계와 함께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웠다. 김육은 거센 반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대동법을 확대시행하는 것에 온 인생을 바쳤고, 정약용은 형조에 남은 몇 줄의 기록으로 자신이 기억되게 하지 않겠다며 수많은 책들을 썼다. 당대에 그들은 어떻게 평가되었을까? 우리는 이들을 어떻게 기억하는가?


 여기서 신라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신라는 당시 가장 작고 약한 나라였지만, 결국 삼국 중에 통일을 한 것은 신라다. 가장 무시당했고 통일은 커녕 당장의 외적을 막기에도 급급했던 나라였는데도 불구하고 신라는 모두의 예상을 엎고 통일의 주역이 됐다. 일반적으로 그처럼 작은 나라가 다른 커다란 나라들을 이기고 통일을 할 것이라고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우리가 한계라고 생각하는 것은 과연 정말 부술 수 없는 벽인 걸까? 그걸 어쩔 수 없는 한계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견고한 벽처럼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물론 그것은 한계다. 신분제 사회에서 신분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가볍게 말할 수는 없을 거다. 그렇지만 '한계'라는 것은 말 그대로 한계일 뿐 그것을 넘어설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는 장보고처럼 벽을 넘을 방법을 찾아내거나(당나라로 감), 정도전처럼 벽을 무너뜨릴 수도 있을 것이다(조선건국). 이들이 지금까지 기억되며 '위인'으로 분류되는 이유는 특별한 재능이나 뛰어난 능력보다 이들의 선택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한계로 여겨지는 벽 앞에서 멈춰서지 않는 것.'                                    


멀리서 보면 역사는 구불구불 흘러가는 강과 같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간도 역사가 되어 흐른다.


역사는 흔한 오해와 달리 고리타분하거나 미련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현시대의 맥을 짚는 데 가장 유용한 무기이자 세상의 희망을 발견하는 데 도움이 되는 도구죠. 불확실성의 시대에서 우리는 늘 불안해합니다. 이 시대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그 속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역사를 공부한 사람은 이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할 것입니다. 과거보다 현재가 나아졌듯이 미래는 더 밝을 거라고, '나'보다 '우리'의 힘을 믿으며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면 된다고. 역사를 통해 혼란 속에서도 세상과 사람을 믿고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다시 공부하려는 사람들에게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공부하는 건 역사지만 결국은 사람을, 인생을 공부하는 것이라고.                                        


 우리는 역사를 연도와 이름과 사건들의 나열로 기억할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살아숨쉬는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 수많은 사람들과 그들의 선택이 만들어간 거대한 흐름을 보아야 한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역사의 쓸모'에 대해 생각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저자의 이야기와 저자가 내린 선택을 들을 수 있다. 이회영 선생이 던진 '한 번의 인생을 어떻게 살다 갈 것인가?'라는 질문에 '일생'으로 대답한다면 우리는, 나는 그 질문에 어떻게 답할 것인가?

                                                                                                                      

아직 진행 중이지만, 제 인생도 하나의 역사가 될 것입니다. 역사는 수많은 아무개의 작은 시간들로 빚어낸 큰 시간의 덩어리니까요.                                      


 우리의 삶은 역사가 된다.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나는 어떤 삶을 살아나갈 것인가?


 이 막연하고 어려운 질문 앞에 다행히 우리 앞에는 참고할 수 있는 수많은 자료가 담긴 '역사'가 있다.                                    














사진 출처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733885&cid=49295&categoryId=49295

https://pixabay.com/photos/ivy-climbing-plant-creeper-plant-413686/

https://pixabay.com/photos/river-stream-curved-prairie-679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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