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역사의 쓸모> 리뷰
어떤 사람은 역사가 단순히 사실의 기록이라고 말하지만, 저는 오히려 그것은 착각이고 역사는 사람을 만나는 인문학이라고 강조합니다. 역사는 나보다 앞서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어떻게 살 것인지를 고민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존재예요.
그런데 그들이 바라던 시대가 찾아왔어요. 신분제 폐지라니 말이 돼?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던 이야기가 지금은 너무도 당연한 현실이 되었습니다. 두려움 속에서도 먼 미래를 보며 나아갔던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희망을 품은 사람이 있었고, 그들이 도전했고, 그 덕분에 지금의 우리가 그 당연한 것을 누리고 사는 건지 모릅니다.
역사를 통해 우리는 사회의 변화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역사의 수레바퀴 안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문제란 별로 없습니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변화의 움직임도 알고 보면 역사에서 그 문제의 뿌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좀 더 폭넓게 사회 문제를 이해하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가질 수 있게 되죠.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순간, 문제의 핵심을 바라보고 해결하는 원동력을 얻게 될 것입니다.
고려가 원의 부마국이 된 일을 창피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학창시절에 원 간섭기를 치욕의 역사로 배운 분들도 있을 것이고요. 하지만 저는 꼭 그렇게만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세계를 지배하던 몽골, 그리고 가장 넓은 나라였던 원나라의 사위 나라입니다. 그 대제국이라는 판 위에서 고려의 위치를 보자는 거예요. 고려는 확실히 다른 속국들과는 달랐어요.
저는 가끔 항복을 앞둔 원종의 마음이 어땠을까 생각해보곤 합니다. 자기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위기의 연속이었어요. '이제 고려는 끝났구나'라는 자포자기의 심정이었다면 정말 고려는 끝났을지도 몰라요. 몽골제국에 편입되어 마치 섬과 같은 끄트머리 변방 땅으로 남았을 수도 있어요. 그러나 원종은 그게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다 포기하고 될 대로 되라지 하고 내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에서 자신이 지켜야 하는 것, 얻어야 할 것을 빠르게 계산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패를 이용해 그처럼 대담한 제안을 던졌지요. 그가 기지를 발휘한 덕분에 고려는 계속해서 자치국가로 남을 수 있었습니다. 이는 분명 원종의 외교적 성과였습니다.
역사는 흔한 오해와 달리 고리타분하거나 미련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현시대의 맥을 짚는 데 가장 유용한 무기이자 세상의 희망을 발견하는 데 도움이 되는 도구죠. 불확실성의 시대에서 우리는 늘 불안해합니다. 이 시대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그 속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역사를 공부한 사람은 이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할 것입니다. 과거보다 현재가 나아졌듯이 미래는 더 밝을 거라고, '나'보다 '우리'의 힘을 믿으며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면 된다고. 역사를 통해 혼란 속에서도 세상과 사람을 믿고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다시 공부하려는 사람들에게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공부하는 건 역사지만 결국은 사람을, 인생을 공부하는 것이라고.
아직 진행 중이지만, 제 인생도 하나의 역사가 될 것입니다. 역사는 수많은 아무개의 작은 시간들로 빚어낸 큰 시간의 덩어리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