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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on Apr 23. 2019

꽃과 얽힌 여인들의 심상

서정주 시평론

  미당 서정주의 시에는 ‘여인’과 ‘꽃’이 높은 빈도를 차지한다. 제1 시집인 『화사집』에서부터 제6 시집『질마재 신화』까지 수록된 총 201편의 시 중에서 여성이 등장하는 시는 137편으로, 한 시집 당 평균 70%에 이르는 비율이다. 그가 여성인물에게 끌리는 것은 여성의 존재가 남성과 비교할 때 자연의 속성을 보다 많이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동시에 그의 시는 남성화자가 시의 표면에 등장하지만 여성의 이미지가 많이 등장하는 이유로 많은 논자들이 페미니즘 경향이 나타나 있다고 해석해왔다. 하지만 최근의 페미니즘 이론에 따르면 여성을 자연의 상징으로 해석하는 것은 전형적인 남성 중심적 시각이다. 따라서 미당의 시에 나타난 여인과 꽃의 이미지에 대한 재검토가 요구된다.


  미당의 시에서 여인과 꽃의 이미지가 강하게 결합되어 나타난 대표적인 <추천사>, <석류꽃>, <영산홍>, <슬픈 여우>, <석녀 한물댁의 한숨>, 이렇게 총 5편의 시에서 차용된 꽃들과 그 꽃이 지니는 상징과 더불어 여성인물들의 심상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그녀들과 달리 남성 화자인 미당, 자신을 상징하는 <내 영원은> 속 꽃 역시 살펴봄으로써 꽃의 전형적인 상징 속에 갇힌 여성인물들의 존재와 그 한계를 밝혀보고자 한다. 


 상징이란 하나의 낱말이나 어구가 하나의 사물을 의미하고, 이 대상이 또 다른 사물을 의미하거나 그것을 초월하여 다른 지시 영역까지 암시하게 되는 바를 일컫는다. 꽃의 일반적인 상징으로는 아름다움, 번영과 풍요, 존경과 기원, 사랑, 여인, 재생 혹은 영생과 같은 것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여성이 꽃과 많이 비유되는 이유로는 크게 2가지를 추측해볼 수 있다. 첫째는 외형적 아름다움이 그것이고, 둘째는 꽃이 씨를 만들어 종족을 유지하듯 여성도 그와 같은 역할 수행이 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춘향이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추천사>와 <석류꽃>, 첩의 이야기인 <영산홍>과 중년의 창부가 등장하는 <슬픈 여우> 그리고 아이를 낳지 못한 여성에 대한 <석녀 한물댁의 한숨>과 미당의 첫사랑 여선생이 등장하는 <내 영원은> 각각 2편씩 나누어 살펴보았다.  


 <추천사>의 화자는 그네를 탄 춘향이다. 그녀는 향단이에게 하늘 저 너머로 자신을 밀어 올려달라고 말한다. 춘향이는 지상의 공간에 마음을 두지 않고 그곳에서 완전히 벗어나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넷줄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만 자유로운 춘향이는 결국 “아무래도 갈 수”가 없게 된다. 이 작품 속 춘향이는 좌절 속에서도 이상향으로 나아가려는 인간의 존재로 해석된다. 왜 춘향이는 "아무래도 갈 수" 없는 존재인가? 그에 대한 답은 68년 <석류꽃>에서 보다 분명히 제시된다.

 

 <석류꽃>에서는 죽음을 초월하는 사랑을 보여준 춘향이가 석류꽃으로 형상화된다. 춘향이의 “다홍치마 빛”을 지닌 꽃은 그녀의 “가야금 소리”로 피어나기 때문이다. 이처럼 시각적, 청각적 이미지를 통해 형상화되는 석류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국 문화에서 붉은색의 꽃이 절개와 충절을 상징한다는 사실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꽃에 관한 전설 가운데 절개를 지키다 죽은 여인의 넋으로 피어난 꽃은 한결같이 핏빛처럼 붉은 꽃이다. 따라서 몽룡을 기다리며 절개를 지키는 춘향이라는 여성 인물 역시 “무주 남원 석류꽃”이라 표현된 것은 자연스럽게 과거 아름답게 보던 ‘전통적인 여성상’을 연상시키게 된다. 이처럼 석류꽃으로 표현되는 춘향이라는 인물은 기존 연구자들의 해석처럼 단순히 영원에 도달하지 못하는 인간의 좌절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 시편들에서 석류꽃과 춘향은 오히려 전통적인 ‘여성적 이미지’를 강렬하게 환기시키며 시의 주제 의식을 드러낸다. 

 

 <영산홍>에서는 소실 댁 즉 첩이 등장한다. 영산홍은 모양이 작고 화려한 느낌을 주는 붉은 꽃이다. 산자락에 위치한 영산홍은 첩실의 이미지와 그대로 겹쳐진다. 붉은색 꽃은 화려하고 요염한 모습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색깔이었다. 옛날 선비들은 “뜻을 잃는다”라고 하여 멀리하고자 했던 화려한 꽃은 주로 붉은색이었다. 이는 화려하고 아름답기에 주목 받음과 동시에 가부장적 유교사회에서 도외시되어야만 했던 첩실들의 삶을 추측케 한다. 안방이 아닌 툇마루에 방치된 놋요강은 긴 기다림의 시간을 암시하고, “소금 발이 쓰려 우는 갈매기”를 통해 고독과 생의 비애는 절정에 이른다. 
 

  <슬픈 여우>는 사창가에서 채송화 같은 젊음을 자랑하던 여인이 중년에 이르러 “슬픈 여우”가 되어 “스러지는” 모습을 그려낸다. 흔히 일생은 꽃이 피고 지는 화기(化期)와 연관시켜왔다. 채송화는 한해살이 식물로 그 생이 짧다. 또한, 과거 기생은 ‘말을 이해할 줄 아는 꽃’이라 하여 ‘해어화(解語花)’라 불렸다. 중년의 창부는 채송화 같은 짧은 젊음이 “쉬이 뭉캐져” 해어화로의 자격마저 박탈당하고, 요물이라 여겨지는 “슬픈 여우”가 됐다. 젊음과 아름다움이 소모되자 자신의 존재를 규정하는 명칭마저 변해버린 비참했던 창부의 삶을 이 시는 보여주고 있다. 과거 보수적인 한국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던 첩실이나 절개를 지키지 못한 창부는 아무 데도 갈 수 없어 슬퍼하던 춘향보다 비참한 삶을 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석녀 한물댁의 한숨>에서는 아이를 낳지 못하여 소실에게 남편을 양보한 여인이 등장한다. “단단하게 살찐 옥”과 같은 그 여인은 쓸쓸한 환경에서 웃음을 잃지 않는다. 그런 그녈 보고 마을 사람들은 “한물댁 같이 웃기고나 살”으라며 그녀의 웃음은 “옥 속에 핀 꽃”이라 칭한다. 그렇게 스스로의 기구한 삶을 대한 그녀의 태도는 다른 누군가의 교과서가 된다. 외롭게 살다 마흔에 요절한 한물댁의 죽음 후, 뒷산 바람 소리에 그녀의 한숨이 섞였다는 소문이 돈다. 마을 사람들은 그것이 한물댁이 자신들을 배려해 대신 한숨을 쉬어주는 것이라 믿는다. 평생 고독한 삶 살다 간 한물댁은 마을의 수호신이 된다. 정효구는 서정주의 시에 등장하는 여성 인물들은 인간인 여성으로의 아름다움 뿐 아니라 천상적인 세계를 지향하는 존재로 격상되고 있다고 말한다. 그의 시속에 등장하는 여성인물들은 인고의 생애 이후에서도 마을 사람들을 배려하는 수호신의 역할까지 수행하게 된다. 죽어서까지 자유롭지 못한 한물댁의 웃음은 “옥(玉) 속에 핀 꽃”이 아닌, “옥(獄) 속에 핀 꽃”에 가깝다.

 

 끝으로 <내 영원은> 미당의 첫사랑이었던 일본인 “이쁜 여선생”이 등장한다. 순수했던 그 시절의 사랑과 그리움을 떠올리며, 그 영원을 “물빛 라일락의 빛과 향”의 길이라 칭한다. 그리고 과거 그 시절을 영원히 간직할 휴식의 공간으로 “후미진 굴헝”이 함께한다. 

 

 석류꽃 닮은 춘향이가 “아무래도 갈 수가 없”던 것, 영산홍의 첩실이 “소금 발이 쓰려서 우는”것, 채송화 같던 창부가 여우로 “둔갑해 스러지”던 것, 옥 속에 핀 꽃 같이 웃던 한물댁이 마흔에 “지독한 열병”으로 세상을 뜬 것은 모두 당시 여성에게 주어져야 했던 역할과 그를 아름답게 미화한 꽃들이 지닌 상징들 속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그녀들에게는 “후미지 굴헝”이 없었고, 미당을 영생하게 한 “라일락”과는 달리 그녀들의 꽃은 그들을 정해진 심상 속에 한정시켰다. 꽃은 생물학적으로 양성을 모두 포함하는 기관이다. 또한 성의 차원을 넘어 하나의 종을 실현시킨다. 그 꽃의 생명력이 아마도 미당의 많은 시에 영감을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차용한 꽃의 이미지는 도리어 시 속의 인물들로 하여금 ‘전통적인’ 남성적, 여성적 심상에 국한시켰다. 

 

 남성의 정신세계에 있는 여성성이 형상화되고 상징화된, 남성 성격의 여성적 요소(아니마)는 시인의 무의식 속에 있는 여성성이 의식세계에 있는 남성성과 관계를 맺으며 이를 형상화시킨다. 이는 상당수의 남성 시인들에게 나타나는 현상이라 한다. 따라서 미당의 무의식 속에 반영된 여성성과 남성성에 대한 표현은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여성들의 피해의식이 클수록 꽃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고, 사회적 불평등이 심할수록 꽃에 대한 폄하가 강하다고 한다. 그의 시 속의 꽃이 지니는 상징과 여성 인물들의 슬픔이 불편한 것은 비단 미당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사회적 틀과 형식에 길들여진 여성은 박제된 꽃이었다. 꽃들은 비록 움직이지 못하나 일탈을 꿈꿔왔다. 꽃이 찬사를 받아야 하는 이유는 단순한 외형적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라 생물학적 ‘본성’ 때문이다. 향기도 생동감도 없는 틀 속에 갇힌 꽃은 그 본성이 인정될 때, 사회적 통념에서 벗어나 미당의 “라일락”처럼 영원하며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1.  강지정, 「서정주 시의 여성 이미지 연구」, 원광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1, 16면 
2.  정효구, 「서정주 시에 나타난 여성 편향성 연구」, 『개신 어문연구』, 1994, 252면
3.  양혜경, 「서정주 시에 나타난 안티 페미니즘적 경향」, 1999, 320면

4.  이상희, 「꽃으로 보는 한국문화 1」, 넥서스, 1998, 28면

5.  이숭원, 「미당과의 만남」, 태학사, 2013, 105면
6.  윤미화, 「서정주 시연 구 – 꽃과 여인의 심상 규명 중심으로」, 상명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3, 57면
7.  이숭원, 「한국현대시감상론」, 집문당, 1998, 242면
8.  차윤정, 「꽃과 이야기하는 여자」, 중앙M&B, 2003,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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