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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on Apr 23. 2019

근대적 시적 주체의 각성

정지용 시평론

   정지용은 ‘근대시의 아버지’라 불리는 30년대 대표시인이다. 1930년대 조선은 일본의 수탈과 더불어 근대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당시 지식인들은 선진화된 일본의 문물을 수용하여 조선을 발전시키고 나아가 독립국가 건설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었다. 이들은 타국의 땅에서 공부하는 식민지 유학생의 비애와 낯선 근대적 일상에서 발생하는 부조리의 경험으로 인한 자아분열을 함께 겪어야만 했다. 지식인 정지용의 시에도 이와 같은 혼란스러움이 녹아있다. 근대사회를 겪으며 생애주기와 함께 변모되어가는 자아와 시적 주체 그리고 이를 인식시켰던 고향이 등장하는 시를 선별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본고는 유년기의 고향이 담긴 「향수」, 청년기의 자아가 담긴 「카페 프란스」, 장년기의 자아가 드러나는 「시계를 죽임」 그리고 달라진 자아로 인해 다르게 비치는 장년기의 「고향」을 선정했다. 이 시편 속에서 시적 주체들의 변모된 자아와 함께 그로 인해 낯설어져 버린 고향에 대해 살펴봄으로써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이방인으로의 삶을 살아야 했던 근대 조선인의 개인과 그들의 고향 간의 연관성을 알아보자. 
 

 「향수」는 1927년 발표되었으나, 정지용이 대학에 입학하기 전인 23년도에 쓰인 작품이다. 당시 우수한 성적으로 장학금을 받고 유학길에 오를 청년기의 정지용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냈다. 22세의 어린 나이에 홀로 유학을 떠나야 하는 상황 속에서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그의 향수를 더욱 자극했을 것이다. 상경을 하거나 유학길에 오른 개인들은 근대화의 공간에 노출되어야 했고, 이들은 마음의 안정을 얻고 휴식할 고향을 늘 그리워했다. 

  작품 속 고향은 이들의 그리움만큼이나 아름다운 이미지로 가득하다. 넓은 벌판 동쪽 끝에 위치한 그곳은 실개천이 돌아나가고, 황소가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이다. 시골 외양간 소를 떠올리게 하는 황소의 금빛 울음은 고즈넉하다 못해 “게으르”게까지 표현된다. 금빛 울음이라는 청각의 시각화를 통하여 고향의 소박한 아름다움을 강조한다. 2연에 밤바람 소리와 함께 달리는 말은 차갑고 스산한 분위기를 조성하며, 방 안에서 졸고 계신 늙은 아버지를 더욱 슬프게 그려낸다. 


 주목해야 할 것은 3연과 5 연이다. 3연은 “흙에서 자란 내 마음”과 대비되는 “파아란 하늘”이 등장한다. 유년시절 화자는 파아란 하늘을 “그립어” 화살을 쏜다. 땅과 하늘의 대조 속에서 활을 쏘는 행위는 땅에 속했던 유년의 화자가 하늘의 무언가를 동경하고 갈망했음을 알 수 있다. 5연 속 유년의 화자는 더 이상 고향에 돌아갈 수 없음을 시는 암시한다. “파아란 하늘”에는 “석근 별”이 있고, 화자는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길을 옮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흐릿한 불빛”처럼 멀어지는 고향은 “도란도란거리는 곳”이며 “차마 꿈엔들 잊힐” 수 없는 장소다.  이 작품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동시에 그곳에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은 불길함이 함께 드러난다. 그 이유는 「카페 프란스」와 「시계를 죽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카페 프란스」는 정지용이 교토의 학창 시절에 겪었던 생활 속 한 단면을 보여준다. 교토는 ‘낯선 곳’이며 새로운 근대 풍경을 체험하게 하는 장소이다. 근대적 삶에 대한 부조리의 경험은 근본적 무기력, 허무감, 슬픔 등이 내포하는 우울의 감정이 동반된다. 모든 것이 무의미해지면서도 그것을 벗어날 수 없을 때, 시적 주체는 스스로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 직면한다. 이때 화자는 부단히 탈출하고자 노력하지만 뜻대로 할 수 없다. 감각적 쾌락을 탈출구로 삼아 보지만, 그러한 시도는 순간일 뿐 다시 무의미에 직면한다. 시적 주체는 근대적 풍경들로 부조리와 존재의 무력감을 경험하고, 자의식의 분열을 보인다.

  “루바쉬카” 즉 러시아풍 남성 의상을 걸치고 보헤미안 넥타이를 한 친구가 앞장서 무리는 카페 프란스를 찾는다. “머리를 빗두른 능금”은 『정지용 시집』에서 수록되면서 ‘갓익은 능금’이 바뀐 표기다. 따라서 원문의 뜻을 반영하여 이제 막 익은 능금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머리는 막 신문물의 지식을 받아들이고, 심장으로 상징되는 열정은 벌레 먹은 장미로 형상화된다. 조선인의 정체성을 상실한 복장과 사상 그리고 부재한 열정으로 인해 유학생들은 모두 불안하고 “슬프”한다. 「향수」 속 유년기 화자가 동경하며 “파란 하늘”을 향해 쏘아 올린 화살은 사라지고, 「카페 프란스」 속 청년기의 시적 주체는 열정을 잃고 “제비처럼 젖”어 카페로 향한다. 불안하고 방황하던 청년기 근대적 자아는 장년기로 성장해 「시계를 죽임」에 등장한다.


 「시계를 죽임」은 32세가 된 정지용의 작품으로 장년기의 자아를 엿볼 수 있다. 한밤중 벽시계를 딱따구리가 나무 쪼는 소리에 비유한다. 밤의 적막을 깨는 시계 소리는 화자의 뇌를 재봉틀의 바늘처럼 자극한다. 화자는 10시간을 일한 노동자로 긴 노동으로 인해 그의 신경은 예민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이지 즉 이성과 윤리에 따라 사물을 분별하는 능력은 톱니바퀴와 함께 돌아가 사라져 버린 듯하다. 그는 자신의 이러한 생활에 “일절 분노를 잊었”다고 말한다. 분별력도 자의식도 잃어버린 시적 주체는 유리 안에 갇혀 하품을 하는 검은 곰 마냥 무기력하고 무료할 뿐이다. “꿈같은 이야기는 꿈에도 아니”하고 “필요하다면 눈물도 제조할 뿐”이라는 그는 과도한 노동으로 번 아웃된 노동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시간은 비행선처럼 속절없이 흘러간다. 장년기의 시적 주체는 자신의 고향에서 변모된 자아를 발견하는데, 이는 32년도 「고향」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고향」은 「향수」의 발표 시점에서 5년이 더 지난 뒤의 작품이다. 시간적 거리만큼이나 시인과 고향은 정신적으로도 더 멀어져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던 고향’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은 고향의 모습이 변해서가 아니라 그 고향을 바라보는 시적 주체의 내면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산꽁이 알을 품고 뻐꾸기는 여전히 제철에 울건만” 화자의 내면은 “떠도는 구름”처럼 고향에 머무르지 못한다. “어린 시절 불던 풀피리”에서는 예전과 같은 소리가 나지 않고 그저 쓴맛만 감돌뿐이다. 고향은 그대로이나 변화된 자아와의 어긋남이 갈등으로 드러난다. 「향수」의 고향이 그리운 공간이었다면, 「고향」의 고향은 진정함이 부재하는 공간으로 체험된다. 즉 고향은 근대를 체험한 시적 자아의 내면 풍경이 된다.


 부조리를 표현한 카뮈의 소설 『이방인』은 죽음에 직면하고 나서야 삶의 가치를 깨닫는 사형수를 통해 맹목적인 삶에 묶여 있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고향의 이방인이 된 순간에서야 고향의 진정한 가치와 변모된 자아를 발견하는 정지용의 시 속의 주체들은 카뮈의 인물과도 닮아있다. 그러나 카페라는 공간으로 도피하거나, 유리에 갇힌 곰처럼 꿈을 꾸지 않는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을 수 있는 것은 변모된 장년기의 자아는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다”는 것을 인식했으며, 그로 인해 “꿈같은 이야기는 꿈에도 아니”하지 않고, 희망 없는 반항을 계속해나갈 가능성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카뮈의 고국 알제리 역시 프랑스의 식민통치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카뮈는 『알제의 여름』에서 모국은 언제나 상실의 순간에만 인지된다고 말한다. 정지용의 고향은 시 속의 주체들을 각성시키는 공간이 됨과 동시에 상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희망을 꿈꾸게 만든다. 시를 정치 선전의 목적으로 사용하는 KAPF에 대항하는 시문학파의 동인이었으나 스스로를 순수시의 범주에 분류하기를 원치 않았던 정지용. 월북시인이라는 오명으로 군사정권 당시 그의 서적은 불온서적으로 분류되었다. 많은 이념과 사상들이 그와 그의 시를 규정하려고 했으나, 실은 그가 시 속에 담고 싶었던 것은 혼란스러운 시대 속에서도 희망 없는 반항을 포기하지 않는 이방인을 담고 싶었던 것을 아니었을까. 


<참고문헌>
1. 김영미, 「정지용 시와 주체의식」, 태학사, 2016, 78면
2. 권영민, 「정지용 시 126편 다시 읽기」, 민음사, 2004, 248면
3. 송기한, 「정지용과 그의 세계」, 박문사, 2014, 28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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