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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on Oct 05. 2020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국대 문창>

열두 살 생일이 다가오자
나는 한 가지 소망을 품게 되었다.
생일이 오면 원래대로 돌아갈 거라고.
열두 살 이후 나는 한 번도
불면증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위 글과 이어지는 이야기를 상상하여 산문을 창작하시오.


*유의사항

분량 : 2000자

시간 : 120분

이 작문은 시험은 상상력, 구성력, 표현력을 테스트하려는 것입니다.




 식은땀을 흘리며 꿈에서 깼다. 불면의 종류는 2가지이다. 하나는 잠에 들기 어려운 것과 얕은 잠에서 이내 깨어나는 것. 내 경우는 후자에 해당된다. 이십 년 넘도록 꾼 꿈임에도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꿈속의 이미지가 점차 선명해지는 걸 보면 겨울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겨울에는 두 가지 이벤트가 있다. 하나는 나의 생일과 그리고 엄마의 기일 둘은 모두 12월 12일에 치러진다.


 열두 번째 내 생일날 아침, 나는 몹시 상기돼있었다. 늘 일주일 먼저 있는 누나의 생일과 퉁쳐서 지나갔으나 그날만큼은 오롯이 나를 위해 온 가족이 움직였다. 서울에 계신 아버지는 퇴근 후 합류하기로 하고, 난생처음 놀이공원에 가기로 했다. 늘 상 그렇듯 나와 누나는 뒷 자석에서 투닥거리고 있었다. 축구공으로 누나의 머리를 맞히자 누나는 화를 냈다. 나는 아마도 그때 누나를 약 올리고 싶었던 것 같다. 누나는 내 공을 뺏었고, 나는 소리를 지르며 안전벨트를 끌렀다. 얌전히 있으라며 엄마가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우리 차 앞 화물차 위에 놓인 검은 천이 운전석의 시야를 가리며 떨어졌다. 당황한 엄마의 급브레이크로 빙판길 위를 달리던 차는 몇 바퀴쯤 회전하다 바리케이드를 들이받았다. 시커먼 차 내부에는 축구공이 날아다녔다. 정신을 잃기 전 나는 엄마의 날카로운 목소리의 한 마디가 여전히 선명하다.

 "미소야! 영철이 챙겨!"


 응급실에서 눈을 뜬 내 옆으로는 축구공만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나는 그 공 안은 채 울며 엄마와 누나를 찾아다녔다. 누나의 수술실 앞에서 몇 시간을 기다린 후에야 아버지가 도착했다. 아버지는 울고 계셨다. 아버지에게 다가가자 아버지는 내 품 안의 축구공을 뺏어 복도 저편으로 던져버렸다. 그렇게 한 마디 말없이 우리는 9시간 동안 누나의 수술실 앞에 앉아있었다. 며칠 뒤 누나는 눈을 떴고, 입만 뻐끔거렸다. 누나는 입모양으로 엄마를 찾았다. 곧 의사가 도착했고 안전벨트가 목을 감아죈 탓에 성대에 이상이 생겼음을 알렸다. 나를 살리려던 누나는 목소리를 잃었다. 내년에 누나는 성악 특기생으로 예고에 진학할 예정이었다.


 나는 그 날 이후 내 생일마다 오직 한 가지 소망만을 품게 됐다. 모든 것을 열두 살 내 생일 전으로 돌려달라고. 그렇게 원래대로 돌아가 누나는 노래를 부르고, 엄마는 해장국집에서 적금을 모으고, 아버지는 서울에서 빚을 갚게 해 달라고. 하지만 내 소망은 번번이 무너졌다. 나는 매일 밤 장막 속에 갇혀 엄마와 누나의 비명소리를 들으며 축구공을 안고 우는 열두 살 소년으로 돌아갔다.


  우리 가족의 시간은 그날로 멈춘 줄 알았다. 누나는 그날부로 나의 엄마이자, 아버지의 동반자가 됐다. 악몽에서 깬 나를 다독이며 안아줬고, 알콜 중독에 빠질 뻔한 아버지를 구해냈다. 그리고 수화로 같은 말을 반복하곤 했다.

 "울지 마. 다 괜찮아. 우린 반드시 행복해질 거야."


 나는 누나의 목을 치료하기 위해 죽도록 공부했다. 점심시간에도 군대에서도 축구공 같은 건 절대 차지 않았다. 의사가 되어 누나의 목소리, 엄마의 목숨, 아버지의 꿈. 그 모든 것을 대체할 존재가 되어야만 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우리 가족을 원래대로 되돌리고 싶었다. 시간이 속절없이 흐르는 동안 나와 아버지는 점점 멀어져 갔다. 더 이상 누나 없이는 일 년에 한 번도 보기 어려운 사이가 됐다. 의대에 진학하자마자 누나의 목은 절대 되돌릴 수 없음을 깨달았다. 수술과보다는 비수술과가 적성에 맞았으나 그래도 나는 이비인후과를 지원했다.


 내년에 누나는 결혼을 한다. 그것도 12월 12일에. 그리고 자신이 그린 일러스트로 채워 넣은 단행본 역시 그 날에 출간된다. 먼저 선물로 받은 책의 머리말에는 나를 위한 편지가 쓰여있었다. 앞으로 우리는 어쩔 수 없는 것보다는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고, 타고난 것보다 좋아하는 것을 즐기며 살아가자고. 연속되는 비극에도 우연한 행복을 꿈꾸며 모든 것이 원래대로 혹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아도 서로의 곁을 지켜주자는 약속이 적혀있었다. 책의 제목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다.


 누나는 혼수로 아이를 해간다. 그녀는 그 아이가 축구선수를 꿈꾸는 아들이길 바라지만 나는 꾀꼬리 같던 그녀의 목소리보다 그녀의 부드러운 그림체를 닮은 딸이기를 바란다. 간만에 아버지와의 만남도 퍽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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