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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on Sep 30. 2020

늦은 밤, 나는 계획을 실행하기로 한다.

<단국, 추계예대 문창/극작>


나는 우주에 가기로 결심했다.
이것은 아주 오래된 계획이며, 나는 그것을 위해 많은 준비를 했다.
반드시 우주에 가야만 한다.

늦은 밤, 나는 계획을 실행하기로 한다. 

*유의사항*   

분량 : 2000자 (극작 : 2500자) 

위 내용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완성하시오


이 작문 시험은 상상력, 구성력, 표현력을 테스트하려는 것입니다. (전사 및 회상 최소화)





 굳이 늦은 밤을 택한 이유는 누구도 내가 우주로 떠났다는 것을 알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우리 우주인들은 한심한 지구인들이 섣불리 우주로 오는 것을 허락지 않기 때문에 지구에서 우주로 복귀하는 과정을 그 어떤 지구인에게도 들켜서는 안 된다. 만일 이 복귀의 과정에서 방법이나 정체가 조금이라도 의심을 사게 된다면, 우리는 지구로 추방된다.


 우선 우주로 향하는 첫 번째 관건은 내 방문의 경첩에서 들리는 나사음이었다. 이를 위해 나는 이미 전부터 내 방에 쟁여둔 참기름 통과 컨실러 브러쉬를 비장하게 꺼내 들었다. 전 남친놈이 생일 선물로 주고 간 알 수 없는 붓이 이리도 유용하게 쓰일 줄이야. 나는 조심스럽게 참기름을 브러쉬에 묻혀 경첩을 고소하게 적셔갔다. 참기름 내를 맡고 있자니 초등학교 소풍에서 먹던 김밥과 나사에 들어가겠다는 내 당찬 장래희망 그리고 내 꿈을 비웃던 담임의 면상이 뒤섞여 떠올라 속이 메슥거렸다. 어서 지구를 벗어나야 한다.


 문을 조심스럽게 열자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성공이다. 이제 문제는 마루에서 자고 있는 엄마였다. 공기가 탁하다며 엄마가 마루에서 자기 시작한 지 벌써 5년이 넘었다. 발끝을 세워 기척 없이 현관문까지 이동하는 건 이제 내게 더 이상의 일도 아니다. 다만, 문제는 엄마 곁에 함께 자는 ‘똘이’ 녀석 때문이다. 이전의 시도가 실패했을 때도 내 몸에서 나는 고소한 참기름 냄새에 똘이가 움직이며 짖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나오자마자 내 몸에 교배기간의 암컷 개의 체취와 유사하다는 페로몬 향수를 뿌렸다. 그러자 기척을 보임과 동시에 짖으려던 똘이는 내 다리로 다가와 몸을 세우고 마치 인간처럼 두 다리로 일어서 엉덩이를 사정없이 흔들기 시작했다. 똘이의 침이 바닥을 흥건히 적셨으나 소리가 나지 않아, 이 역시 성공이었다. 이 향수를 구하기 위해 돌아본 성인 사이트의 장면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얼마나 많은 남성들에게 수간녀라는 오명을 받아야만 했는지. 제길, 어서 지구를 벗어나야 한다. 


 자, 이제 얼추 막바지에 이르렀다. 이제 큰방에서 자고 있는 아빠를 지나 현관문을 열고 나가면 나는 우주로 떠날 수 있다. 나는 내 정강이를 헐떡거리며 따라오는 똘이를 끌고 전장의 외발 장군처럼 힘겹지만 비장한 한 걸음을 떼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이 걸음은 감히 지구인의 몸으로 달 위에 첫발을 내디뎠던 암스트롱의 그것과 더 가까웠다. 


 그때였다. 내 앞을 가로막은 것은 우아한 하얀 털의 암고양이 샤넬이었다. 녀석은 나를 보며 가소롭다는 듯 웃고 있었다. 이 지점에 이르면 샤넬은 방문이 열린 큰방으로 들어가 아빠의 앞섶을 솜방망이질 하며 깨우고는 나를 난처한 상황에 빠트리고 비열하게 야옹 댔다. 하지만 인간이 동물보다 진화할 수 있었던 것은 학습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초저녁 잠들어버린 아빠의 방문을 미리 닫아두었다. 늘 열려있던 문이 열리지 않자, 샤넬은 분노의 스크래치질을 시전 했으나, 잠귀가 어두운 아빠가 깰 리 없었다. 그러자 샤넬은 마루에 잠든 엄마의 얼굴을 할퀴는 것이 아닌가. 엄마는 소리를 지르며 잠에서 깼고, 어둠 속에 서 있는 날 보고 더 큰 괴성을 질렀다. 


 기지배가 새벽에 또 술 처먹으러 간다며 나무라는 엄마를 보고 샤넬은 신이 난 듯 이곳저곳을 뛰어다녔고, 똘이는 여전히 헉헉대고 있었다. 소란스러움에 깨어난 아빠는 날 보고는 이내 엄마에게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시집을 보내자는 걸 멍청한 년 공무원 공부를 시켜 또 이 사단을 냈다는 진부한 레파토리. 네가 뭘 잘했다고 큰 소리를 내냐는 엄마의 고함소리, 헐떡거리는 똘이, 정말 개판이었다. 


 유유히 큰방으로 들어간 샤넬은 잠시 후 유리병을 깨트리는 소리를 냈다. 오늘도 나는 지구를 떠날 수 없는 건가? 한숨을 쉬고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챙겨 큰방으로 들어갔다. 방문을 열자 머리가 아플 정도로 진한 향수 냄새가 진동을 하고 있었다. 똘이가 내 다리에서 드디어 떨어져 그 깨진 유리병을 향해 침을 흘리며 다가갔다. 샤넬은 에르메스 향수병을 깨트린 것이다. 이내 사색이 된 아빠가 뒤따라 들어와 내 손에 빗자루를 낚아채 바닥을 쓸기 시작했다. 그리고 엄마는 또다시 괴성을 지르며 ‘이 미친놈이 아직도 안 헤어진 거야?’라며 나를 방 밖으로 밀쳐내고 문을 닫아버렸다. 오늘도 글렀다. 


 나는 내 방으로 들어가 숨겨놓은 담배를 챙겨 현관문을 열고 나왔다. 하늘이 칠흑 같은 걸 보아 곧 해가 뜨기 전에 아지트에 도착해야 한다. 피던 담배를 황급히 깊게 들이마시자 안정이 찾아왔다. 나는 반드시 우주에 가야만 한다. 하늘을 올려다봤다. 저 우주에 내 동료들과 보금자리가 날 기다리고 있다. 점차 교신이 약해지고 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서둘러야 한다. 담배꽁초를 발로 비벼 끄고는 내 아지트가 있는 지하로 내려갔다. 우리 우주인들은 빛을 좋아하지 않는다. 침침한 눈 사이로 빛이 들어와 머리가 지끈거렸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우주로 향할 다른 방도를 생각해봐야겠다. 그렇게 눈을 감은 지 채 5분도 흐르지 않은 것 같았다. 누군가 나를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학생, 자꾸 불 끄고 자면 안 돼. 공용 독서실에서.”


 내일 밤, 나는 계획을 다시 실행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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