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박하사탕>
영화 <박하사탕>에서는 총 7개의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1999년 봄>, <사흘 전 1999년, ‘사진기’>, <1994년 여름, ‘삶은 아름답다’>, <1987년 봄, ‘고백’>, <1984년 가을, ‘기도’>, <1980년 5월, ‘면회’>, <1979년 가을, ‘소풍’>이 그것이다. 이창동 감독은 이 영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민주화의 희망이 생기고 밀레니엄을 겪으며 1999년에 끝난다. 그 20년 간 격변이 있었다. 가장 정점이 1987년이다. 20년의 역사를 보여주는 영화를 만들려는 것이 아니었다. 김영호라는 한 개인을 통해, 20년을 살아온 한국인의 시간을 의인화했다." 따라서 민주화라는 역사적 사실보다 역행하는 플롯과 캐릭터에 중점을 두어 영화를 살펴보고자 한다.
1. 플롯
플롯이란 허구의 사건들을 개연성과 필연성이라는 인과관계 속에서 결합시켜 즐거움과 감동을 주는 동시에 실제 속에 숨어 있는 보편적인 진실을 명료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잘 구축된 플롯은 관객들로 하여금 감정을 배설할 수 있는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영화는 가장 유명한 대사인 “나 다시 돌아갈래.”라는 영호의 대사와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 느끼는 ‘과거로의 회귀’라는 욕구는 관객의 것과 일치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극적인 이야기는 관객들이 그 이야기에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과 동일시할 수 있는 실재를 반드시 드러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은 특별한 것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원형 경험에 바탕을 둔다. 시간여행이라는 모두가 바라는 욕구를 기반으로 관객은 주인공 영호에게 동일시하게 되고 이는 관객들의 작품 몰입도를 높여준다. 스토리의 본질은 꿈이자 욕구라고 할 수 있다. 주인공이 간절히 원하는 무엇인가를 성취할 수 있느냐가 스토리의 줄거리다. 따라서 ‘영호가 간절히 돌아가고자 했던 순간은 언제인가?’ 그리고 ‘그 순간으로 돌아가는 것은 그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가 <박하사탕>의 줄거리로 채택된다.
또한, <박하사탕>은 행동보다 인물을 중심에 둔 마음의 플롯이다. 마음의 플롯은 액션과 모험에 집중하는 몸의 플롯과는 달리, 인물의 내면적 세계와 인간의 본질을 집중 조명한다. 관객으로 하여금 생각할 시간과 여유를 제공하고 도덕적·지적 질문이 개입된다. 따라서 이는 20년의 한국사 의인화하고자 했던 감독의 의도에 부합되는 플롯이라 할 수 있다. 김영호의 개인사를 역행하며 우리는 그가 몰락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확인하고 근현대사에 내재돼있던 트라우마를 복구시킨다.
상승의 플롯은 인간의 긍정적 가치에 몰락의 플롯은 부정적 가치에 집중한다면, 이 영화는 시간을 역행하는 방식을 택함으로써 상승과 하강의 플롯을 동시에 체험케 한다. 20살 영호의 순수했던 시절로 끝을 맺어 주인공에 대한 연민을 극대화시키고 과거로의 회귀를 성공한 영호와 같이 관객들도 타임슬립에 성공한 느낌을 갖게 만든다. 영화관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부터 관객은 20살 영호의 순수함으로 인생을 선택한다는 충만함을 갖기에 당연히 플롯도 캐릭터도 사랑할 수밖에 없다. 스토리가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이처럼 대중의 꿈과 욕망을 대리 충족시켜야 한다.
2. 영호는 왜 자신에게 총을 겨눌 수밖에 없었나?
<사흘 전 1999년 ‘사진기’> 에피소드에서 영호는 순임의 남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 혼자 죽기엔 너무너무 억울하니까 딱 한 놈만 내 저승길에 같이 동행하자. 내 인생을 이렇게 망쳐 놓은 놈들 중에 딱 한 놈. (···중략···) 그런데 죽일 놈이 없더라고. 내 인생 요 모양 요 꼴로 만든 죽일 놈들이 너무 많아서 한 놈을 못 고르겠더라고.”
그는 자살을 택하기 전 몰락의 책임을 물을 사람들을 나열한다. 돈을 날리게 한 증권회사 직원, 사채업자, 사기를 친 친구, 이혼한 홍자. 그들은 모두 영호의 물질적 풍요를 앗아간 이들이다. 하지만 그가 선택한 것은 영호, 자기 자신이다. 영호를 몰락으로 이끈 것은 물질적 풍요의 상실이 아닌 정신과 가치의 상실이며, 그것의 가장 큰 책임은 자신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첫사랑과 꿈으로 상징되는 박하사탕과 사진기는 그가 다른 삶을 선택할 수 있는 변곡점들을 드러낸다. 하지만 그는 현실을 부유하며 번번이 그 순간들을 외면한다. 순임이 죽기 직전 건넨 사진기는 4만 원이라는 헐값에 팔아버리고 그에게는 더 이상 팔아버릴 꿈도 외면할 첫사랑도 이 세상에 없게 된다.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을 수 없게 된 영호는 자연스레 죽음을 택한다.
그의 인생이 달라질 수 있었던 기회는 영화의 엔딩인 79년 가을에만 있던 것은 아니다. 지금의 자신에게 이르게 된 것은 80년, 84년, 87년, 94년, 99년 현재까지. 그 모든 순간을 외면한 자신에게 죄가 있음을 영호도 알고 있었다. 80년대 민주화, 90년대 IMF 시대의 피해자에서 그는 늘 ‘가해자 되기’라는 선지를 골랐다. 자전거를 가르쳐주던 20대 영호를 사랑했던 그녀가 자동차를 가르쳐준 남자와 바람이 날 때까지 그녀와 가정을 방치하고, 자신의 불륜은 지속하는 가부장의 폭력. 군대와 5.18 광주를 겪었음에도 고문경찰이 되어 공단의 노동자와 학생들을 가했던 정치적 폭력.
영호의 몰락은 예견된 것이었으나, 영화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에 삽입된 ‘나 어떡해’라는 가사를 통해 자살도 잘못된 선택이라고 언질을 주고 있다.
나 어떡해, 너 갑자기 떠나가면. 그건 안돼. 정말 안돼. 가지 말아.
영호가 죽음 택한 나이는 고작 마흔이었다. 인생의 절반도 되지 않은 나이에 그는 마지막 도피처로 죽음을 택한다. 영호라는 캐릭터가 내린 자살이라는 선택은 과연 올바른 선택이었을까?
니체는 역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간은 살기 위해 과거를 파괴하거나 해체할 힘을 가져야 하고 때에 따라 실제로 그렇게 해야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 그는 과거를 법정에 세우고 고통스럽게 심문하고 마침내 유죄를 선고해야 한다. (···) 비판적 방식은 과거가 얼마나 부당한지, 어떤 사물의 존재가 얼마나 부당한지를 알아야 하는 것이며, 그것을 비판적으로 고찰하고 그 뿌리에 칼을 대는 것이다.”
영호는 살아있기 위해 자신이 저질렀던 가해의 흐름을 끊어내고, 절름발로 상징되는 트라우마의 뿌리에 대해 돌아봤어야 했다. 그렇다면 그의 최후는 첫 씬의 절망의 눈물이 아닌 마지막 씬의 기쁨과 감사의 눈물로 대체될 수 있었다. 역순행의 플롯을 통해 고문경찰이었던 그는 자신의 가해를 관객들에게 자백하게 되고 그는 꿈속에 와본 적이 있던 꿈 꾸는 순간에 이른다. 과거에 유죄를 선고하지 못했던 영호의 개인사처럼 한국의 역사도 늘 그랬다. 그래서 우리는 영호의 몰락을 마냥 기뻐하지 못하고, 그가 잘못을 반성하고 다시 살아가 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우리 안의 영호에게 자기혐오라는 권총 대신 꿈과 사랑이라는 사진기와 달콤한 박하사탕을 쥐어주고 싶어 진다. 그렇게 관객들은 인생의 모든 순간은 변곡점이 될 수 있음을 깨달으며, 삶은 아름답다고 믿을 수 있다.
<참고문헌>
- 권승태, 「3막의 비밀」, 커뮤니케이션북스, 2012.
- 변학수 「반기억으로서의 문학」, 글누림, 2016.
- 영화진흥위원회, 「한국 시나리오 선집 17」, 집문당, 2000- 마이클 티어노, 「스토리텔링의 비밀」, 아우라, 2008.
- “‘박하사탕' 이창동 감독 “김영호 통해 20년 한국시간 의인화"”, <마이데일리>, 2018.04.24., http://www.mydaily.co.kr/new_yk/html/read.php?newsid=201804242230718433&ext=d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