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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on Apr 23. 2019

소외된 농촌과 전통의 가치

신경림 시평론

 1970년대 이후 정치적 현실에 적극 저항하면서 민중의 삶과 진실을 시로 표현하고자 했던 한국 현대시의 한 경향이 바로 민중시다. 이들은 정치적 폭력과 사회문화의 폐쇄성에 저항하면서 급격한 산업화의 물결에 주변부로 밀려나고 있는 민중의 삶을 시의 중심 영역을 끌어들인다. 신경림은 이러한 민중시인의 한 사람으로서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된 농민들의 삶의 현장을 담아냈다. 그의 시에 등장했던 농민들은 정부 주도하에 이뤄진 서울 중심의 개발정책들로 인해 밀려나듯 도시로 터전을 옮기게 된다. 농촌에서 농사를 업으로 살던 이들에게 도시에서 주어진 일들이란 낮은 보수의 고되고, 초라한 것들뿐이었다. 자연스레 그들은 도시의 빈곤계층으로 전락하게 된다.


 거리의 민중들의 고통과 동떨어진 자신의 서정시에 회의를 느꼈던 신경림은 시에 소홀했었다고 고백한다. 그런 그에게 시의 가치를 다시금 부여해준 것은 카와카미 하지메의 「가난 이야기」였다. 이 책은 일본 자본주의의 발전에 따라 나타나기 시작한 사회악, 빈곤문제를 정면에서 다루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작품으로 이 책을 접한 이후 신경림의 작품 경향은 변모하기 시작한다. 그의 첫 번째 시집인 『농무』에서 그 변화 양상을 확인할 수 있으며, 가난은 그의 시에서 중요한 화두로 자리 잡는데, 그것은 대표작이자 시집의 제목이기도 한 「가난한 사랑노래」에서 알 수 있다. 70년대 신경림 시의 중심인물이었던 농민들이 삶이 후기시에서는 어떻게 전개되고 있으며, 그들의 가난한 삶이 시사하는 바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국악원에 다니는 잘난 딸이/배불리 먹여준대서/서울로 올라온 지 오 년/소리 좋아하는 진도 과부는/어리굴젓 장수가 되었다/어리굴젓 사랑께 어리굴젓 사랑께/시골길 같은 산동네만 골라 다니며/만만한 단칸방집을 기웃대다가/때로는 비집고 들어가 앉아/진도 아리랑 한 대목을 뽑는데/세월은 구부야구부야/문경 새재만큼이나 험하고/세상은 왔다나 갈 길 한도 스럽지만/우리끼리 퍼지르고 앉으면 삶은 편하고/더러는 훈훈하기도 해서/새우젓 사랑께 새우젓 사랑께/시골 사람 모여 사는 산동네만 다니며/어리굴젓 새우젓도 팔고/진도 아리랑도 부른다                「진도 아리랑」, 『가난한 사랑노래』, 2006


 국악원에 다니는 딸은 노모의 재능을 물려받은 예술계 종사자인 듯하다. 그러나 어미의 유산으로 생계까지 책임지는 것이 어려운지 노모는 직접 젓갈을 팔러 다닌다. 노모가 시골길 같은 산동네만을 골라 다니는 것을 보아 떠나온 고향을 그리워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고향 외딴섬의 특산물이자 자랑거리인 진도 아리랑 소리와 함께 젓갈을 팔아보지만 쉬이 팔리지 않는 듯하다. 진도 아리랑 가사에는 그녀가 삶을 바라보는 유연한 태도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국악은 노모의 진도 아리랑과 같이 토속성이 잔존된 소리를 보존해야만 그 가치가 빛을 발한다. 그럼에도 노모의 소리는 도시의 산동네에서 떠돌 뿐이다. “국악원에 다니는 잘난 딸”이라는 표현을 통해 노모는 자신의 지닌 전통과 세월의 깊이만큼 대우를 받지 못함을 알 수 있다. 농촌과 전통으로 상징되는 노모는 도시에서 주변적인 인물로만 존재한다. 


다리를 저는 이발사는/바닷가 작은 동네/화통방앗집 아들이었다는 것이 자랑이다/세 파수째 궂으면서도/비는 오는 듯 멎는 듯 먼지잼으로나 선뵈고/젖은 수건 냄새로만 골목을 채운다//새참만 겨우면 이발소에는/일 없는 동네 사람들이 모여들어/방앗간 달개방에서처럼/술추렴을 하고/라면도 끓이고 고스톱도 치고//구질구질한 고향 타령이 싫대서/한 나달 집에 들어오지 않는 딸애는/오늘도 또 전화뿐이라고/다리를 저는 이발사는 풀이 죽었다//이제 남의 얘기가 돼버린 농사걱정에/짐즛 맥이 빠지다가도/고향까지 고속도로가 뚫린다는 새 소문에/새삼 신바람들이 나는 중복//내후년에 봉고차 빌려 타고 가자꾸나/고향 학교 운동장에서 한바탕 치자꾸나/그래서 술추렴이 길어지고/다시 먼지잼이 지나갈 때쯤이면/안개비 속에서인 듯 도새 속에서인 듯/통통통 화통방아 소리도 들리고/어허라 달구야 멀리서 달구질 소리도 들린다          「중복」, 2006


 다리를 저는 이발사는 화통 방앗 집 아들이었다는 것이 자랑일 만큼 작은 시골의 옛사람임을 알 수 있다. 화통방아는 50년대 물레방아 이후에 디젤을 이용한 방아의 방식으로 당시 방앗간에서는 신식 도구였다. 그러나 더 이상 방앗간도 찾기 어려운 도시에서 그의 자랑은 딸과의 갈등을 유발할 뿐이다. 일거리 없는 이발소에 옛 추억을 기억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술을 마시고 고스톱을 친다. 도시 근대화에 밀려 소외된 이웃끼리 모여 고향 이야기를 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고향에 고속도로가 뚫린다는 소식에 기뻐한다. 이를 통해 농촌과 도시에 대한 복잡한 심리를 알 수 있다. 근대화로 인해 소외받은 자신의 존재와 더불어 화통방아의 달구질소리로 상징되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고향의 근대화를 반길 수밖에 없다. 주변으로만 존재하는 자신의 고향이 도시와 가까워지며 다시 중심부로 놓일 유일한 길은 근대화뿐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따듯한 봄날의 기억이 없다./그저 늘 추웠다./시집가서 아들딸 낳고 키워 시집 장가보내고/서방 잃고/아들딸 따라서 사글셋방 전셋집 떠돌면서/종잇장처럼 가벼워졌다가/마침내 폐지로 버려졌다.//폐지 더미를 실은 수레를/딸이 밀고 언덕을 올라가고 있다./에미를 닮아 허리가 굽고 주름이 깊다./그는 폐지 위에 쓰인 글귀를 입속으로 읽는다./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에미가 평소에 버릇처럼 뇌던 말을 발견하고 그는 반갑다./오늘 아침 집이 헐렸지만/중년의 아들은 직장에서 쫓겨났지만/그는 폐지로 바뀐 에미를 실은 수레를 밀면서/행복하다.//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2014

 1연의 등장인물은 노파이다. 그녀는 남편을 잃고 가난한 아들딸들을 따라 전전하다가 폐지처럼 버려진다. 가난하고 늙은 노모의 존재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폐지처럼 가벼워졌다는 표현을 통해 농촌과 전통의 가치가 경제성으로 재단되고 경시됨을 알 수 있다. 젓갈을 파는 노파와 다리를 저는 이발사, 폐지처럼 버려진 노모가 그러하다. 2연의 딸은 어느덧 버려진 노모의 나이가 되었다. 늙고 가진 것이 없는 노인들이 도시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폐지를 줍는 일이 전부다. 그녀는 폐지에서 자신의 노모가 버릇처럼 말하던 성경의 글귀를 발견하고는 반가워한다. 그녀의 집은 아침에 헐리고 중년의 아들은 직장에서 쫓겨났으나, 그녀는 옛 어미의 글귀를 중얼거리며 위안을 얻는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는 성경의 구절이다. 기독교 사상가에 따르면 마음이 가난한 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더 알려고 하지 않고, 더 가지려고 하지 않기에 욕망, 지식, 소유로부터 자유롭다고 말한다. 자본주의의 끝없는 욕망에 대한 비판과 함께 가난한 농촌 이주민들의 삶이 자식으로까지 대물림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경제성의 논리로 농촌과 전통은 더 이상의 그 존재 가치를 상실하고, 설 자리를 찾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결국 자본주의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사회악인 가난에 대한 위로는 도외시된 농촌과 전통으로 상징되는 부모세대의 지혜에서 발견된다.


 경제학의 가치는 사용가치가 아닌 교환가치다. 교환가치는 팔지 못하면 의미가 없는 상대적 가치이다. 아무리 유용하더라도 팔리지 않으면 상품으로써 가치가 없다. 자본주의의 상품 사회에서 인간의 위상은 교환가치로 매겨지기에 많은 문제들이 발생한다. 현대사회의 가족은 농촌과 전통사회의 가족의 가치와 크게 달라졌다. 결혼이라는 사회적 제도조차 상업성과 자본의 개입에서 자유롭지 않은 현실에서 가족 구성원의 가치가 교환가치로 판단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으며, 교환가치를 획득하지 못한 이들은 그 존재조차 가벼워져 폐지처럼 버려진다. 


 인간의 가치마저 화폐가치로 인식되는 천민자본주의에 대한 통렬한 비판은 농촌 출신 부모세대의 소외현상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상품 사회의 문맥이 보편화되면 인간의 정체성은 소멸된다. 등가물로 대치되고 상대적 가치의 형태로 존재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물건은 상품이 지배하고, 상품은 화폐가 지배한다. 모든 상품은 화폐로 교환되며, 화폐로 교환되지 못한 상품은 ‘가치’가 없다. 그 물건을 생산하는 노동도 가치가 없음은 물론이다. 상품 사회의 문맥은 인간의 정체성뿐만 아니라 미의식조차 왜곡시킨다. 상품 미학은 소비자의 구매를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기에 변화를 끊임없이 탐닉하며 새롭지 않은 것은 아름답지 않다 여긴다. 새로움에 대한 신화로 인해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에 대해 질문을 신경림은 가난한 농촌 이주민들의 삶을 통해 우리들에게 던지고 있다. 아름다움은 ‘앎’이다. 앎의 본질은 숙지성(熟知) 즉 친숙하며 오래되어 잘 아는 것이며, 그것이 곧 진정한 아름다움임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참고문헌>
1. 연수문화원,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리토피아, 2007, 109면
2. 신영복, 「담론」, 돌베개, 2015, 35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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