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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on Apr 23. 2019

매미가 날개 잃어버린 날

사람들이 매미의 날개를 뜯어버린 여름은 기록적인 폭염이 지구에 계속되던 해였다

더 이상 인간이 마실 물을 찾기 어려웠고, 인류는 모두 오아시스를 찾아 돌아다녔다

여름의 폭염 속에서 인간들은 아스팔트 아지랑이 위를 계속 걸어가야 했다

함께 이동하던 인파 모두의 분노가 극에 달해 있었다


길을 걷던 군중 속에서 작은 목소리 하나가 들렸다

“매미다. 저들이 하는 것 없이 울어 우리를 덥게 만들고 있다!”

그 외침을 들은 몇몇이 갑자기 매미의 날개를 뜯어내기 시작했다

함께 길을 걷던 사람들은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고 지켜보고 만 있었다


그들을 지나치던 차 한 대가 멈추더니 그 기괴한 장면을 잠시 구경했다

그리고는 “그래. 매미가 시끄럽기는 하지” 하고는 제 갈 길을 갔다

그러자 망설이던 나머지 사람들도 매미의 날개를 잡아 뜯기 시작했다


매미의 날개를 잡아 뜯는 것은 곧 법이 되었다. 모두가 길을 걷다 가도,

어디선가 매미 소리가 들리기만 하면 행군을 멈추고는 날개를 뜯어내기 바빴다

한 마리, 두 마리, 수 백, 수천 마리의 날개를 뜯어내니 매미의 울음소리가 잦아들었다

그들은 언제 울었냐는 듯 고요해졌다

사람들은 그제야 편히 걸을 수 있게 되었다며 좋아했다


날개가 뜯긴 매미들은 곧잘 고목나무 매달려 있었으나 이내 떨어져 죽어 나갔다

그다음 해부터 매미 새끼들은 날개 없이 태어나기 시작했다

상아 없는 코끼리, 꼬리 없는 악어처럼 도처에 살아있되, 살아있지 못한 생명체만이 넘쳐났다

그렇게 자연스럽지 못한 모양새를 갖춰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매미가 날개를 잃어버린 덕에 해를 거듭할수록 여름이라는 계절은 정적과 침묵만이 감돌았다

날개를 잃어 슬픈 매미는 야멸차게 울지 못하고 어두운 밤 불빛 아래 쯧쯧거릴 뿐이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여름의 소리를 기억하지 못했다. 혹자는 소음이 사라진 계절을 반겼다


이제 모든 사람들은 듣지 않고, 조용히 오아시스를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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