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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on Jun 30. 2019

똑똑한 세헤라자데,
대중들이 원하는 이야기를 하다.

방탄소년단을 중심으로

 광고 즉 advertising은 라틴어 ‘advertere’에서 유래됐다. 이는 ‘마음을 향하게 하다’라는 뜻으로, 독일어로는 ‘Die Reklame’ 즉 ‘부르짖다’라는 뜻을 지닌다. 다시 말해 광고는 반복해 부르짖음으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향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카피는 당연히 이러한 광고의 정의에 부합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카피가 사람들의 마음을 향하게 할 수 있을까?


 과거 매스마켓의 시대는 카피에 대해 깊이 고찰할 필요가 없었다. 적당히 광고만 해도 제품이 팔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제품의 선택지가 다양화된 것은 물론 이를 광고할 플랫폼조차 넘쳐나기 때문이다. 초연결 시대에 성공적인 플랫폼 마케팅으로 세계적인 보이밴드로 자리매김한 ‘방탄소년단’이라는 브랜드가 만들어지기까지를 살펴봄으로써 카피의 갖춰야 할 3가지 속성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출처 : 방탄소년단, [MAP OF THE SOUL : PERSONA]

 첫째, 카피는 타켓이 명확해야 한다. 데뷔 초 방탄소년단은 경쟁자인 엑소와는 달리 초기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다. 초창기곡들의 유튜브 조회수는 해외 팬을 많이 확보한 지금도 높지 않다. 이들의 초기 전략은 top-down 방식이었다. 일반적으로 아이돌을 소비하는 10대층의 특징을 파악해 구매패턴을 예측하고 제작/판매되었다. 이미 이전 1세대 아이돌이 보여줬던 ‘청소년의 반항’이라는 콘셉을 답습한 것이다. 이전의 것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은 더 이상 NEWS(Need + Wants)가 없었다. 하지만 그 속에서 이들은 멤버 모두가 서울이 아닌 지방출신 즉 '촌놈'을 부각시키며, 중소기업 아이돌이라는 타이틀을 도리어 그들의 정체성을 잡아간다. 음악 산업에서 비주류였던 방탄소년단은 앨범 컨셉을 변화하며 메인타켓을 10/20대 그중에서도 ‘사회적 약자’를 타켓으로 구체화시킨다. 세월호 유가족의 기부나 동성애를 지지하는 발언을 함으로써 한국사회의 금기를 계속 건드렸다. 점차 bottom-up 형식의 마케팅으로 변모하면서 방탄소년단은 시장에서 반응을 얻기 시작한다. 전 세계적으로 장기화된 경제 불황 속에 무기력한 청년들을 대변할 가능성이 시작된 것이다. 

'청소년의 반항'을 다룬 1집

 둘째로 카피는 타켓의 취향 즉 세계관을 대변할 수 있어야 한다. 부르디외는 <구별 짓기>에서 취향은 곧 계급을 보여준다고 했다. 그만큼 문화적 취향만큼 개인이 표방하기 좋은 것은 없다. 방탄소년단의 메인 타켓층인 밀레니얼 세대는 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 출생한 이들을 일컫는다. 이들은 IT기술에 능하며, 08년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고용감소와 일자리 질 저하를 겪은 세대이기도 하다. 방탄소년단의 앨범은 10대 학교 시리즈에 이어 20대의 젊음과 방황을 다룬 '화양연화'시리즈 이후 '피땀눈물' 앨범까지 멤버들이 타깃 고객과 함께 나이 들며, 그 연령대의 고민을 가사로 풀어낸다. 밀레니어 세대는 브랜드로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것에 익숙하다. 방탄소년단의 음악은 타켓 고객의 세계관에 그대로 부합되면서 소비자들로 하여금 경험을 공유하고 소속감을 느끼게 했다. 그 결과 시장의 침체기 즉 캐즘을 지나 방탄소년단은 해외시장에서도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이처럼 카피는 그저 시장에 부응하는 것이기에, 카피라이터는 늘 세대를 지배할 취향을 찾아 나서야 한다. 또한, 오늘날의 소비는 자랑할 수 있는 소비만 살아남고 자랑할 수 없는 소비는 외면받는다. 따라서 브랜드/제품을 선택하는 소비자가 자신의 취향에 자부심을 느끼도록 브랜드는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좋다. 방탄소년단은 ‘사회의 비주류’를 대변함과 동시에 UNICEF와 함께 폭력 근절 캠페인을 진행함으로써 소비자로 하여금 착한 소비/가치소비로 이어진다 믿게 한다. 


 셋째, 카피는 진정성 있는 스토리여야 한다. 카피의 최초 소비자는 카피라이터 자기 자신이다. 카피라이터가 이야기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스토리만이 소비자를 설득시킨다. ‘방탄소년단’이라는 카피는 “청년들이 겪는 고난 및 사회적 편견과 억압을 받는 것을 막아내어, 당당히 자신들의 음악과 가치를 지켜내겠다”는 의미를 지녔다. 이들은 데뷔 이래 줄곧 앨범 제작에 참여하며 자신들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또한, 음악시장의 비주류인 중소기업 아이돌이 세계적인 보이밴드로 거듭나는 과정을 자체 제작 다큐멘터리로 보여주어 소비자들을 설득시킨다. 자신의 꿈에 몰입해 예상치 못한 형태의 성공을 마주한 이들의 스토리는 불안감에 방황하는 청년세대에게 열렬한 응원을 받으며 소비자들이 감정 이입하고 대리만족을 얻도록 했다. 설득된 소수의 얼리어답터는 다시 방탄 소년단의 콘텐츠를 재생산해 자발적인 시너지와 광고효과를 낳았다. 이 과정에서 도리어 중소 기획사인 빅히트의 단점이 장점으로 작용했다. 

자체 제작된 인터넷 컨텐츠

 중소 기획사는 상업성 있는 비즈니스를 할 여력이 적다. 따라서 국내 방송활동의 한계를 느낀 BTS는 활동무대를 인터넷으로 옮겼다. 저가의 컨텐츠를 다량으로 제작해 인터넷으로 배포한 것이다. 기존 아이돌들과 달리 리얼 버라이어티 형식의 예능은 팬들과의 거리감을 줄이고 인간미를 느끼게 했다. 중소 기획사의 한계가 역설적으로 해외 팬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든 것이다. 대형 기획사는 음원의 저작권에 민감하기에 팬들의 2차 장작에 많은 제한을 받는다. 그에 반해 빅히트는 이러한 제한을 모두 풀어줌으로써 팬들의 자유로운 창작활동이 가능케 했다. 이로 인해 BTS 관련 컨텐츠가 소셜 플랫폼들에 쌓이며 신규 소비자의 진입장벽을 낮추는 결과를 낳았다. 2018년도 빅히트의 재무제표에 따르면 1년 동안 회사에서 지출한 광고비는 단돈 400만 원에 불과했다. 그만큼 팬들이 재생산한 컨텐츠의 광고효과가 막대하다고 볼 수 있다.


 카피는 이처럼 브랜드/제품과 일체화되어야 진정성을 부여받는다. 이러한 카피의 진정성은 나아가 일관성으로까지 획득한다. BTS는 현재 Bulletproof boy에서 beyond the scene 즉 ‘보이는 것 너머’라는 카피 명칭을 확장시키면서 스토리와 일치된 아티스트의 삶을 통해 멈추지 않고 꿈을 좇는 스토리를 유지하고 있다. 에펠탑 효과와 같이 불편한 카피도 계속 보면 끌림이 온다. 데뷔 초 비아냥을 사던 자신들의 카피를 버리지 않고 되려 확장시키는 모습은 카피의 진정성을 한층 강화시킨다. 


 작은 기획사라는 핸디캡과 국내에서의 인지도 높지 않았던 데뷔 초반의 상황이 방탄소년단으로 하여금 선진 팝 문화를 공부하고 음악적 실력을 갖추는데 집중하도록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데뷔 초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는 다량의 SNS 콘텐츠가 쌓이는 여유를 주어 그 결과 해외시장의 비타켓 고객조차 설득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제 더 이상 카피는 카피라이터 1인에 의해 창작되는 시대가 아니다. 천일야화의 이야기꾼인 세헤라자데가 무서운 독자인 왕을 실시간으로 만족시키지 못하면 죽음을 면치 못했던 상황처럼 카피는 소비자들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반영하고 흥미를 유발시켜야 한다. 현대경제연구원은 방탄소년단으로 인해 2023년까지 발생할 경제적 효과는 41조 8,600억 원, 부가가치 유발효과는 약 14조 3,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초연결시대인 오늘날 잘 만든 카피와 브랜드의 경제적 가치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에 이른다. 혹시 누가 알까, 똑똑한 세헤라자데처럼 자신의 카피가 살아남는다면 방탄소년단과 같은 성공신화를 다시 한번 이룩할지.



<단행본>

- 한혜원, 디지털 시대의 신인류 호모나랜스, 살림, 2010

- 박형준, BTS마케팅, 21세기북스, 2018

- 이랑주, 오래가는 것들의 비밀, 지와인, 2019

- 세스 고딘, 마케터는 새빨간 거짓말쟁이, 재인, 2007
 

<논문>

- 정윤미, 진정성 개념에 의한 방탄소년단의 성공요인 연구, 상명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9 

- 현대경제연구원, 방탄소년단(BTS)의 경제적 효과, 이슈리포트 15호,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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