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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on Jun 30. 2019

위대한 신발

동화

 깊은 산속에 커다란 신발공장이 있었어요. 그곳에서는 매일 수 만 켤레의 흰색 신발들이 만들어졌죠.


 오늘도 새로운 신발들이 나오고 있네요. 한 신발이 공장의 직원 손에서 새롭게 태어나며 외쳤어요.
“나는 위대한 신발이 될 거야!” 그 신발은 기계에서 나오자마자 여러 신발들이 쌓여있는 수레에 ‘툭’하고 던져졌어요. 그러자, 그 수레 속에 미리 누워있던 신발이 말했어요. “멍청하기는, 우리는 모두 똑같이 생긴 신발이라고. 위대한 신발 같은 건 없어.” 위대한 신발이 되겠다고 한 친구의 이름을 우리는 흰순이라고 부르기로 해요. 흰순이가 말했어요. “아니야, 나는 정말 위대한 신발이 될 거야!”

 

그 순간 이번에는 새로운 신발이 수레 속에 ‘툭’하고 또 던져졌어요. “그래? 그렇다면 나는 세상에서 제일 비싼 신발이 될 거야.” 이 친구를 우리는 명품이라고 부르기로 해요. 흰순이를 혼낸 다른 신발 친구가 이번에는 명품이를 나무랐어요. “여기 또 다른 멍청이가 새로 왔군.” 수레 속의 다른 신발들은 흰순이와 명품이를 비웃었어요.

 흰순이가 명품이에게 말했어요. “너 정말 멋진 꿈을 가졌구나! 우리는 다 똑같은 신발이 아니야.” 명품이는 흰순이에게 대꾸하지 않고 속으로 생각했어요. ‘자수도 엉망이고, 모양도 투박하게 생긴 게. 너랑 나랑은 급이 다르다고!’ 갑자기 수레가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모든 신발들은 웅성웅성 소란스러워졌어요.

 

“우리들은 모두 어디로 가는 걸까?” “어디로 가기는. 신발은 주인 따라가는 거야. 네가 가고 싶은 곳에 가는 게 아니라고.” 속닥속닥. 사람들이 들을까 조심스럽게 귓속말로 신발들이 웅성댔어요. 수레를 밀던 아저씨가 갑자기 멈춰 수레 속 모든 신발들을 쏟아 엎었어요. 그리고는 신발들을 손으로 들어 올려 하나하나 분류하기 시작했어요. “이 신발은 너무 모양이 투박하군.” 흰순이는 오른쪽으로 던져졌어요. 이번에는 명품이를 살피며 말했어요. “이 신발은 자수가 아주 훌륭하고 세련되게 나왔군.” 명품이는 왼쪽으로 던져졌어요.


 아저씨는 그렇게 수레 안의 모든 신발들을 오른쪽과 왼쪽으로 나눴어요. 신발을 모두 나눈 아저씨는 흰순이가 있는 오른쪽의 신발들을 들어 다시 수레에 담았어요. 그리고는 다가오는 아저씨에게 수레를 밀며 외치기를 “김형! 이 신발들은 모두 저 바깥에 납품 차량에 싣도록 해. 나머지는 내가 로고 구역으로 가지고 갈 테니!” “알겠어, 박형.” 박 씨 아저씨가 든 명품이 수레는 그렇게 공장 안쪽으로, 김 씨 아저씨가 든 흰순이 수레는 차량으로 옮겨졌어요. 신발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요? 먼저 흰순이를 따라가 보도록 해요.

 

김 씨 아저씨는 수레 속의 신발들을 상자에 담고, 차에 하나하나 싣기 시작했어요. 신발들이 모두 실리고 자동차에서 시동소리가 들리자, 흰순이가 외쳤어요. “드디어 나의 위대한 여정이 시작되는군!” 김 씨 아저씨의 차는 그렇게 몇 날 며칠을 쉬지도 않고 계속 움직였어요. 작은 상자에 갇힌 신발들을 답답해서 소리를 질렀어요. “어디까지 가는 거야!” “날 어서 꺼내죠!” 신발들이 화가 잔뜩 나있었어요. 하지만 흰순이는 설레는 마음을 억누르며 조용히 밖으로 나갈 날만을 기다렸어요.

 

차가 멈추고, 김 씨 아저씨가 트럭 문을 열자, 상자의 틈새로 햇빛이 들어왔어요. 드디어 도착했는지 김 씨 아저씨는 신발 상자들을 꺼내 옮겼어요. 신발들은 조용히 상자에서 나오기만을 기다렸죠. 차 소리가 사라지고 상자를 연 사람은 인자하게 생긴 할머니였어요. 상자에서 흰순이를 옮기시던 할머니가 말했어요. “아이고, 고놈 참 하얗게 예쁘게도 생겼구나.” 흰순이는 할머니가 주인이 된 것이 너무 좋았어요. ‘이 할머니라면 나를 좋은 곳에만 데려다주실 거야.’ 할머니는 흰순이와 상자 속에 꺼낸 신발들을 선반에 진열하기 시작했어요. 흰순이 앞으로는 세 켤레의 신발이 더 놓였어요. 깊은 산속에 위치한 동네 신발 가게에는 손님이 자주 찾지 않는 탓에 흰순이는 친구들에게 가려 하얀 먼지가 쌓여갔어요. ‘조금만 기다리면, 이제 내 차례야. 그때를 기다리자.’ 그 시각 명품이는 어디에 있을까요?

 

한편, 명품이는 박 씨 아저씨 손에 이끌려 공장의 안쪽으로 들어갔어요. 그곳은 신발들 위에 멋진 로고를 새기는 곳이었어요. 주변의 신발들은 흰순이처럼 삐뚤빼뚤한 자수도 없고 모두 멋진 자태를 뽐내고 있었어요. 명품이는 생각했어요. ‘이제 좀 겨룰만한 친구들이 보이는군.’ 하얗고 매끈한 신발들은 기계를 통과하자 더 멋진 모습으로 나왔어요. 명품이도 멋진 로고를 갖게 됐어요. 로고를 가진 신발들은 다시 또 수레 속에 ‘툭’하고 던져졌어요. 수레 속에 있는 신발들은 모두 콧대가 하늘 높이 솟아있었어요. 아무도 서로에게 말을 걸거나 하지 않았죠. 다만 서로 곁눈질로 누가 더 멋진지를 재고 있었어요. 수레가 움직이고 명품이도 박 씨 아저씨 차량에 올라탔어요.


 명품이가 내린 곳은 멋진 백화점이었어요. 바닥에는 대리석이 있고 천장에는 멋진 조명이 내리쬈어요. 명품이를 꺼낸 종업원은 조심스럽게 명품이를 진열장 위에 올렸어요. “이렇게 비싼 신발은 도대체 누가 사가려나.” 명품이는 그 이야기를 듣고 으스댔어요. ‘역시 나는 아무나 살 수 없는 비싼 몸이라고.’ 그 순간 젊은 여자 손님이 들어왔어요. 높은 하이힐에 멋진 머리를 하고 모피코트를 입고 있었어요. 여자 손님이 명품이를 가리키자, 종업원은 고개를 숙이며 명품이를 대리석 바닥에 내려놓았어요. 깔끔하고 미끈한 이 감촉! 명품이는 앞으로 이런 대리석 바닥만을 걸어 다닐 생각을 하니 기분이 절로 좋아졌어요. 그때 종업원이 말했어요. “손님, 이 제품은 방금 들어온 신상입니다요, 신상.” 그러자 여자 손님의 눈이 반짝였어요. 명품이를 신고 거울 앞에 선 여자 손님의 모습은 완벽했어요. 명품이는 이렇게 멋진 분이 자신의 주인이 될 생각에 콧노래가 절로 나왔어요. 여자 손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카드를 꺼내자, 종업원은 명품이를 데려가 화려한 상자에 담았어요. 상자에서는 향기로운 냄새가 났어요. “감사합니다, 고객님. 예쁘게 신으세요.”


  명품이는 상자 속에서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어요. 명품이를 든 손님은 멋진 차에 올라타 집으로 향했어요. 주인님이 집에 도착해 명품이를 상자에서 꺼냈어요. 명품이는 주변을 둘러보자 탄성이 나왔어요. 바닥은 대리석이 펼쳐져있었고, 방안에는 천장까지 닿아있는 진열장 위로 멋진 신발들이 가득했어요. 명품이는 조금 위축됐어요. 잠시 후 운동복으로 갈아입은 주인님이 명품이를 신고 문밖으로 나섰어요. 도착한 곳은 헬스장이었어요. 그곳에는 예쁘고 멋진 사람들이 비싼 운동화를 신고 런닝머신을 뛰고 있었어요. 하지만 명품이 눈에는 우리 주인님이 가장 멋졌어요. 그곳의 신발들은 모두 반짝반짝 빛이 났어요. ‘이런 곳에 오는 주인님이 나를 선택해주시다니!’ 명품이는 절로 콧대가 높아졌어요. 명품이는 강이 보이는 헬스장에서 주인님과 함께 땀을 흘리며 런닝머신 위를 뛰었어요. 어두운 밤하늘 아래 반짝이는 강은 정말 멋졌어요. 명품이는 이런 광경을 주인님과 함께하는 것이 너무나 기뻤어요.

 

 한편, 신발가게 진열장에 놓여있던 흰순이는 지쳐가고 있었어요. 위대한 신발이 되겠다는 생각은 온데간데없고 이제는 누구든 자신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 맘껏 뛰어주기만을 바라고 있었어요. 자신과 함께 온 친구들은 모두 떠나가고 홀로 남겨진 흰순이는 너무 외로웠어요. ‘나는 언제쯤 저 너머 산과 들판 위를 뛸 수 있을까? 내가 이곳을 벗어나는 날이 오기는 할까.’ 점점 위축되며 자책하는 날들이 반복됐어요. 흰순이는 생각했어요. ‘내 자수가 엉망이어서 아직도 나는 주인님을 만나지 못한 걸까? 나도 명품이처럼 멋진 모습이었다면 더 빨리 넓은 세상에서 뛸 수 있었을 텐데. 왜 나는 이렇게 태어난 걸까.’ 그때였어요.

 

수더분한 인상의 한 아저씨가 작은 꼬마 소년과 손을 잡고 가게 안으로 들어왔어요. 아저씨는 조금 위축된 모습으로 할머니에게 물었어요. “여기, 조금 저렴하면서 튼튼한 신발이 있을까요?” 할머니는 인자하게 웃으며 흰순이를 꺼내왔어요. 흰순이는 심장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어요. ‘드디어 나도 밖으로 나갈 수 있을까! 하지만 내가 못생겨서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어떡하지?’ 흰순이를 본 소년은 얼굴이 붉게 물들고 눈이 커졌어요. 신발을 신은 소년은 그 자리에서 깡충깡충 뛰었어요. 소년의 발과 흰순이는 딱 맞아떨어졌어요. “아버지, 저는 이 신발이 마음에 들어요. 이걸로 할래요.” 아저씨는 할머니에게 물었어요. “이 신발은 얼만가요? 저희가 돈이 많지가 않아서...” 할머니가 웃으며 말씀하셨어요. “이 신발은 자수가 틀어져서 불량품이에요. 그래서 조금 더 싸게 드릴 수 있다우. 하지만 보는 것과 달리 아주 튼튼해.” 아저씨와 소년의 얼굴이 밝아졌어요. 흰순이는 자신이 자수가 틀어진 불량품인 게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소년은 흰순이를 신은 채 아버지의 손을 잡고 밖을 나섰어요. 흰순이는 바깥의 공기를 들이마셨어요. 시골의 공기는 너무나도 상쾌하고 맑았어요.

‘시골에서 작은 주인님을 만나서 정말 기뻐! 앞으로 오래오래 주인님과 함께 뛰어다닐 수 있을 것 같아!’

 흰순이의 예상대로 작은 주인님은 늘 흰순이와 함께였어요. 주인님의 집에는 흰순이 말고는 어떤 신발도 없었어요. 그래서 흰순이는 매일매일 주인님과 함께 밖을 나설 수 있었어요. 비가 오는 등교날 아침도, 물웅덩이로 진흙탕이 된 운동장 위도, 하굣길 시냇가 위에 돌담길 위도. 주인님은 흰순이가 갈색 빛이 될 때까지 달리고 또 달렸어요. 주인님은 거침없이 뛰고 달리면서 흰순이에게 이 세상이 얼마나 넓은 지를 보여줬어요. 흰순이는 자신이 얼룩덜룩해지는 것은 조금도 개의치 않았어요. 주인님과 이 넓은 곳들을 함께 달릴 수 있어 기쁘고 감사했어요. 신발가게 진열장 위에서 깨끗한 채로 먼지가 쌓여가던 그때에 비하면 지금이 훨씬 행복했기 때문이죠.

 

 한편, 명품이도 주인님과 매일 헬스장을 찾았어요. 늘 같은 곳만 가는 것이 아쉬웠지만, 깨끗한 바닥과 멋진 강이 보이는 런닝머신 위의 광경은 언제 봐도 아름다웠어요. 이 순간이 영원할 것 같았죠. 그러던 어느 날 헬스장에서 명품이는 자신과 똑같이 생긴 친구를 마주쳤어요. ‘어? 나와 같은 공장에서 나온 친구인가?’ 명품이는 반가워 인사를 하려다 아차 싶었어요. ‘주인님의 체면이 있는데 이런 곳에서 함부로 저런 신발과 말을 섞을 수 없지.’ 주인님의 표정은 볼 수 없었지만 맞은편 친구의 주인님 표정이 작게 일그러졌어요. 명품이는 생각했죠. ‘저 친구는 조금 험하게 다뤄졌나 봐. 나와는 다르게 조금 더러운 걸?’ 명품이와 친구는 서로 곁눈질할 뿐 아는 체하지 않았죠. 그날 밤 헬스장에서 돌아온 주인님은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어요. 운동이 다녀온 후면, 자신의 바닥을 깨끗이 닦아내고 진열장 위에 올려주셨지만 그날은 신발장에서 명품이를 벗어던져놓으셨기 때문이죠. 명품이는 주인님이 걱정됐어요.


 며칠이 지나도 주인님은 자신을 데리고 헬스장에 가지 않으셨어요. ‘주인님이 어디가 아프신가? 몸이 안 좋으셔서 밖을 나갈 수 없으신가 봐. 어서 주인님이 건강해지셔서 런닝머신 위를 달리면 좋겠다.’ 주인님이 문밖을 나설 때마다 명품이는 주인님을 향해 소리쳤어요. “주인님! 저 여기 있어요! 저도 데리고 나가주세요!” “주인님! 안녕히 다녀오셨어요? 내일은 저와 함께 밖을 걸어요! 그러면 기분이 한결 나아지실 거예요!” 하지만 주인님은 명품이를 보지 않고 쌩하고 지나가실 뿐이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주인님은 새로운 운동화를 데려왔어요. 명품이보다 더 화려한 로고가 들어가고 다양한 색깔이 들어있는 친구였어요. 밝은 표정으로 거울 앞에서 그 친구를 신고 뱅그르르 한 바퀴를 도셨어요. 그 모습이 너무 완벽해서 명품이는 못내 서운했어요. 하지만, 명품이는 주인님이 건강하셔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죠. 그날 밤 주인님은 운동복을 입고 자신이 아닌 새로 산 운동화와 함께 문밖을 나섰어요. 명품이는 불 꺼진 신발장에서 눈물이 왈칵 올라왔어요. ‘주인님은 멋쟁이라 다른 친구들과 나가실 수도 있어. 하지만, 곧 나를 찾아주실 거야.’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주인님은 명품이를 진열장에 넣어주지 않았어요. 밤마다 불 꺼진 신발장에서 홀로 명품이는 주인님의 손길만을 기다렸어요.

 

며칠이 지났는지도 알 수 없는 어느 대낮에 드디어 주인님은 명품이를 들어 올렸어요. ‘드디어 나를 데리고 나가주시는구나! 이 날만을 기다렸어! 어서 밖을 달리고 싶어!’ 명품이는 헬스장에서 멋진 로고를 뽐낼 생각에 몸이 근질근질했죠. 하지만 주인님은 명품이를 바구니에게 거칠게 넣으셨어요. ‘툭’ 바구니 속으로 던져진 명품이는 주위를 둘러보자 자기같이 새하얀 운동화들이 가득했어요. 어딜 봐도 때 묻지 않은 멋진 친구들이었어요. ‘이렇게 멋진 친구들이 많다니... 그런데 어딜 가시는 거지?’ 바구니 속 운동화들은 서로 말을 걸진 않았지만 모두 초조한 표정이었어요. 잠시 후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가 들리고 지하실의 눅눅한 냄새가 명품이의 코를 찔렀어요. ‘뭐지 이곳은 어딜까? 퀴퀴한 냄새가 나는걸. 주인님이 오실 곳이 아닌데.’ 바구니가 기울고 운동화들은 모두 와르르 쏟아졌어요. 주위를 둘러보니 낡고 오래된 운동화, 찢어진 옷들이 가득했어요. 명품이는 당황하며 소리쳤어요. “주인님! 저 여기 있어요! 저 이상한 곳에 들어온 것 같아요! 주인님, 저 좀 꺼내 주세요!” 하지만 곧 어두워지고 빛이 사라졌어요.

 

새침한 표정을 짓던 운동화들은 모두 소리치지기 시작했어요. 그러자 그곳에 있던 낡은 운동화가 외쳤어요. “조용해! 이것들아! 시끄럽게 소리쳐도 너희 주인님은 돌아오지 않아! 우리는 모두 버려진 거라고!” 명품이가 말했어요. “무슨 소리야! 너는 낡고 오래됐을지 몰라도 나는 아니야. 런닝머신 위를 몇 번 달리지도 않았단 말이야! 내 몸의 이 멋진 로고를 봐! 나는 아주 비싼 몸이라고.” 그러자 낡은 운동화가 비웃었어요. “멍청하기는. 이곳에 버려진 친구들 중에 멋진 로고가 없는 아이는 아무도 없어. 다들 새하얀 상태로 버려졌다고. 너희가 새것이었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그렇다면 주인님은 나를 왜 버리신 거야?” “글쎄다. 너의 주인님 마음은 내가 알 수 없지. 하지만, 언제부터 주인님이 너를 신지 않았는지 생각해봐.” 명품이는 곰곰이 생각하다 외쳤어요. “아! 헬스장에서 나와 똑같이 생긴 아이를 만났어. 그 이후부터는 주인님이 나를 찾지 않으셨어.” 그러자 낡은 운동화가 웃었어요. “하하하! 네 밑에 깔린 녀석과 똑같은 소리를 하는군. 여기 있는 대부분이 다 그래. 똑같은 모습을 한 친구를 만나고 버려졌지. 그래도 나는 낡을 때까지 밖이라도 많이 다녀봤지만, 너희들은 뭐냐. 이렇게 하얀데도 버려지고. 한심하기는.” 명품이는 울면서 소리쳤어요. “주인님 죄송해요! 똑같이 생긴 아이들을 부딪히지 않도록 조심할게요! 주인님 저를 다시 데려가 주세요!” 명품이는 계속 울고 또 울었지만 빛은 들어오지 않았어요. 명품이는 지쳐 잠이 들었어요.

 

 명품이는 갑작스러운 흔들림에 눈을 떴어요. ‘뭐지? 주인님이 돌아오신 건가?’ 신발과 옷들은 커다란 천 가방에 옮겨 담아졌어요. 차의 시동소리가 들리고 덜컹거림이 계속됐어요. 울퉁불퉁한 길들을 지나 차는 깊고 깊은 산골짜기로 들어갔어요. 명품이는 기다림은 계속됐어요. ‘언제쯤 차가 멈출까? 나는 새로운 주인님을 만나서 달릴 수 있을까?’ 차가 멈추고 명품이가 눈을 뜬 곳은 작은 초등학교의 운동장이었어요. 눈 앞에는 수십 명의 소년, 소녀들이 보였어요. “얘들아, 이 중에서 필요한 것들만 가져가렴. 다른 친구들도 옷과 신발이 필요하니.” “네!” 아이들은 신이나 신발과 옷을 헤집으며 마음에 드는 것을 들어 올렸어요. 명품이는 설레는 마음에 주변을 두리번댔어요. 그때였어요.


 “명품아!” 누군가가 명품이를 불렀어요. 소리가 난 곳으로 눈을 돌려보니 갈색 빛의 신발이 명품이를 반겼어요. “나야! 나, 흰순이! 우리 같은 공장에서 태어났잖아!” “흰순이?” “너 그대로구나! 나는 이렇게 새까매졌는데. 한눈에 알아봤어! 너 여전히 멋지구나!” 흰순이는 새까매졌지만 표정만큼은 예전보다 훨씬 밝아 보였어요. “너 어쩌다 그렇게 낡아버렸니?” “우리 주인님 덕분이야! 주인님이 매일 나와 함께 이곳저곳을 거침없이 달리거든. 그 덕에 이렇게 새까매졌지만 가보지 않은 곳이 없어. 세상은 정말 넓고 아름답더라! 네가 있던 곳은 어땠어? 나보다 훨씬 멋진 곳을 많이 다녔을 테지?” “아니야. 우리 주인님은 나 말고도 멋진 친구들이 많았어. 그래서 나는 이렇게 버려지고 말았어.” “저런...” 흰순이와 명품이의 대화가 오가는 와중에 초등학교 친구들은 모두 자신의 운동화와 옷을 하나씩 정했어요. 명품이는 선택받지 못했어요. 아저씨가 흰순이의 주인에게 물었어요. “얘야, 너도 운동화를 하나 골라보렴.” “괜찮아요. 저는 제 운동화가 제일 좋은걸요. 아직도 끄떡없어요!” 소년은 껑충껑충 뛰며 대답했어요. 이 말을 들은 흰순이는 활짝 웃었어요. 명품이는 부러운 듯 흰순이에게 말했어요. “네 말대로 너는 정말 위대한 신발이 된 것 같아.” “명품아! 너도 곧 좋은 주인을 만나서 맘껏 뛸 수 있을 거야. 나도 지금의 주인님을 만나기 위해 먼 길을 돌아 한참을 기다렸는걸. 나 이제 가야 할 것 같아. 명품아 그럼 또 보자!” 소년소녀들이 모두 자리를 떠나고 홀로 남겨진 명품이와 물건을 아저씨는 다시 천 가방에 옮겨 담았어요.


  다시 어둠 속에서 기약 없는 여정이 시작됐어요. ‘그래, 흰순이 말이 맞아. 나도 기다리면 더 넓은 곳에서 달릴 수 있을 거야.’ 명품이를 태운 자동차는 달리고 달려 어느덧 선박장에 이르렀어요. 그 앞으로는 커다란 바다가 펼쳐져 있었고, 명품이는 배 위로 옮겨졌어요. 명품이는 캄캄한 천 가방에 갇혀 자신이 망망대해 위를 지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죠. 하지만 명품이는 더 넓은 세상을 향하고 있다고 굳게 믿으며 기다렸어요. 다시 밝은 햇빛 아래서 끝없이 달릴 수 있는 그 날을 말이죠.


 한편, 흰순이는 몇 년을 함께 소년과 달리며 찢어진 낡은 운동화가 되었어요. 이제는 더 이상 달릴 수 없을 것 같아 무서웠지만, 그동안 자신을 사랑해준 주인님이 너무나 감사했어요. 어느덧 주인님의 발도 훌쩍 자라 흰순이와 맞지 않게 됐어요. 흰순이는 주인님과의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어요. ‘그래. 이만큼 달렸으면 충분해. 명품이처럼 버려진다고 해도 주인님을 원망하지 않을 테야.’ 그러던 어느 날, 주인님은 흰순이를 깨끗하게 빨아 뽀송뽀송한 햇빛 아래 널었어요. 처음 태어났을 때만큼은 아니지만 하얘진 흰순이를 들고 주인님은 옆집을 두드렸어요. 문이 열리고 신발가게에서 처음 봤던 주인님처럼 작은 키의 소녀가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서있었어요. 흰순이의 주인님이 말했어요. “이 신발은 정말 편하고 튼튼해. 이 신발을 신으면 네가 원하는 어디 곳이든 갈 수 있어. 나도 그랬거든.” 흰순이는 눈물이 나려 했지만, 울지 않았어요. 자신을 보고 방긋 웃는 소녀의 웃음을 보았기 때문이죠. 흰순이의 위대한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던 거예요.


 망망대해를 건너 명품이가 도착한 곳은 아프리카였어요. 한국의 작은 공장에서 태어난 명품이가 기나긴 외로움을 견뎌 드디어 새로운 주인을 만났어요. 명품이를 받아 든 주인님의 얼굴은 흰순이처럼 까만색이었어요. 주인님이 사는 곳은 작은 오두막에 바닥은 흙 웅덩이로 가득했어요. 하지만, 명품이는 더 이상 매끈한 대리석 바닥이 그립지 않아요. 이곳의 주인님은 오직 명품이와 함께 뛰어다니기 때문이죠. 명품이는 더 이상 작은 장식장에서 자신을 택해주기만을 기다리지 않아도 돼요. 명품이는 이제야 비로소 값비싼 신발이 된 기분이었어요. 흰순이와 명품이는 지금도 너른 하늘 아래에서 행복하게 마음껏 달리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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