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꿈은 내가 꾸는 거다
삶이란 크고 작은 도전들이 엮이고 엮여서 만들어낸 한 권의 책이 아닐까 해요. 큰 강을 만나 나룻배를 찾기도 하고 실개천을 퐁당퐁당 뛰기도 하면서 망망대해를 항해하기도 하지요. 때로는 보물섬에서 노다지를 캐는 날도 있고 때로는 배가 난파해 허둥대는 날도 있으니 세상만사가 기이한 것 같아요.
작은 바람이 불 때는 작은 파도로 큰 바람이 불 때는 큰 파도로 끊임없이 줄다리기를 하다 보니
여기저기 옹이가 생겼어요. 그 옹이들 덕분에 제법 그늘을 드리우는 나무가 된 것 같아 자랑스러운 걸 보니 그 자국들이 억울하지마는 않네요. 그중에 제 삶의 분기점이 된 가장 큰 옹이는 넉넉하지 않은 가정 형편에 대학원 진학을 감행한 일이 아닐까 해요. 직장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에 세 아이를 두고 저의 꿈을 찾겠다는 도전은 그야말로 엄청난 모험이었죠?
어린 시절 가난했던 형편 때문에 마음껏 공부를 하지 못했던 저의 최대 목표는요. ‘아들딸들이 하고 싶어 하는 공부를 뒷바라지해주지 못해 가슴 치지 않는 거’였어요. 좋은 학원과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 모든 경제력을 총동원해도 부족하다고 생각하던 때라 저를 위한 투자를 감히 입 밖으로 꺼내놓기가 두려웠어요. 하지만, 어느 날부턴가 깊숙이 묻어두었던 실타래가 한 가닥씩 피어오르기 시작했어요. 처음 아지랑이처럼 하늘거릴 땐 말도 안 되다며 꾹꾹 눌러 담았지요. 하지만 가느다랗던 실이 점점 굵어져 회오리바람처럼 휘몰아쳐 오자 결국 마음의 둑이 무너졌어요.
공부하는 걸 좋아하고, 결혼하기 전 본인 때문에 대학원 진학을 포기한 걸 아는 남편은 적극적으로 응원해 주었어요. 하지만, “공부도 제대로 못 시킬 자식을 뭐 하러 낳았냐?”며 부모님 가슴에 대못을 박았던 저의 목소리가 들리는 해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어요. 아이들에겐 등록금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던 가난한 학창 시절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저 때문에 아이들이 하고 싶은 공부 실컷 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를 못 해 줄 것 같아 몇 년을 망설이고 망설였어요.
간절함은 모든 걸 뛰어넘는 마력이 있는 걸까요. 2007년 8월, 마흔이 다 돼가는 나이에 결국 저의 꿈을 향한 화살을 쏘아 올렸어요. 하지만, 변하는 건 하나도 없는데 돈만 낭비하고 있는 것 같아 많이 힘들었어요. 눈앞에 보이는 게 전부인 것 같아 안절부절못하던 때이지요. 다급한 마음에 투자가 아니라 투기를 하고 싶었나 봐요. 석사학위를 취득해도 번듯하게 취업을 할 수도 없을 것 같은데 괜한 짓을 하는 건 아닌가 하는 마음이 컸거든요.
한 학기를 다니고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제 석사학위 취득이 자기 목표라며 몰래 등록금을 납부한 남편 덕에 무사히 졸업을 했어요. 그때부터 제 삶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한 것 같아요. 제가 공부하며 준비했던 길과 다른 길을 걷게 되었지만, 좀 더 자신감이 생기고 당당해졌어요. 무엇보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저희 집 경제도 쪼그라들거나 허덕이지 않았고요. 아이들도 스스로 공부하며 제가 안달복달할 때보다 더 잘 자랐어요. ‘숲의 시간은 언제나 갓 태어난 것 같은 시간이다.‘는 김훈 작가의 말처럼 새로운 도전을 계속 시도한 결과 더 풍요로운 가정이 된 것 같아요.
그 이후로 경제적인 이유로 제 꿈을 위한 투자를 망설이지 않게 되었어요. 자식에게 저의 꿈을 대신 강요하고, 힘든 짐을 지어 줄 때보다, 내 꿈은 내가 꿀 때 더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어리석게도 그때 알았거든요. 그 꿈에 대한 투자가 가져다준 기회의 발판 덕에 센터장이란 '성공'도 맛보고, 나를 사랑하는 법, 내가 잘 사는 법도 배웠어요. 덕분에, 나이 들어감을 탓하기보단 내일은 또 어떤 도전으로 나를 성장시킬까를 궁리하며 신나게 살고 있답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세 번째 스무 살을 위한 자격증 준비 중이에요. 매일 밤 온라인으로 4시간씩 교육을 받느라 눈이 빠질 것 같고 몸이 천근만근이지만 마음만은 풍요롭고 행복해요. ’ 나무의 늙음은 낡음이나 쇠퇴가 아니라 완성’이라는 김훈 작가의 말처럼, 저의 나이 듦도 아름다운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노력을 해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