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적 소설을 쓰는 이유(5)
<빨강 머리 앤>의 앤 셜리
<작은 아씨들>의 네 딸들
<앵무새 죽이기>의 진 루이스 핀치
<리딩 프라미스>의 앨리스 오즈마
이 네 권의 책의 주인공들의 공통점은?
나에게 없는 것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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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나는 외모가 나의 열등감이라 생각했다.
사춘기 시절에는 삐그덕대는
친밀감을 잘 표현 못 하는 그런 나의 내향적인
성향이 열등감인 줄 알았다.
그게 아니었다.
최근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장례를 치르는
친구의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결혼하고 아이 낳고 몇 안 되게 연락하는 친구.
이 친구와 돌아가신 이 친구의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이 친구가 말했다.
"언니, 언니네 아빠 언제 돌아가셨지?"
"아니 안 돌아가셨는데."
"이혼하셨다고 했나?"
" 아니, 잘 계셔. 엄마랑."
(잘 계시다는 표현이 지금 쓰고 보니 우습지만
그때는 그렇게 말했다.)
" 언니가 거의 아니 한 번도 아버지 이야기를
한 적이 없어서 나는 언니네 아빠가
아주 일찍 돌아가신 줄 알았어."
아.. 내가 아빠 이야기를 한 적이 없구나.
그러고 보니 친구들에게 아빠 이야기를
제대로 한 적이 없다는 걸 이때 알았다.
(나에 대한 결정적인 사실은 이렇게
누군가에게 정말 기대하지 못하는 순간에
발견될 때가 많다)
존재는 있으나 존재감이 없는 존재,
나의 아버지가 그랬다.
늘 방아퉁수라고 엄마에게 혼나는 그
고치는 재주가 없다고 아내에게 혼이 나는 그가
나의 아버지였다.
책 읽는 걸 좋아하는 그
나에게 아버지가 물려준 건 책읽기였다.
아버지는 책을 사랑했다.
책읽기를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마치 <리딩 프라미스>의 앨리스 오즈마의
책읽기에 열정적인 아버지처럼
나의 아버지도 책읽기를 사랑했다.
하지만 그는 앨리스의 아버지처럼
책에 대해 아이와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읽어주지 않았다.
<리딩 프라미스> 앨리스 오즈마, 문학동네
그는 책 속에서 자신의 피난처를 만들었다.
책의 숲에서 살았다.
월남전에서 보았던 수많은 참상들
그 장면들이 그의 말문을 막았는지 오른다.
외로워서 무작정 떠난 그 곳에서의
힘들었던 그의 여정들
그 속에서 받았던 수 많은 상처들을
그는 책의 숲에서 스스로 치유할 수 있었다.
그의 책 속 세상으로의 도피는
그의 아내와 아이들을 힘들게 만들었다.
엄마의 돌봄으로 잘 자랐고
아버지도 나름의 가장의 자리를
잘 지키고 있었으므로
나는 큰 상처가 없는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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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교회공동체에서 다른 사람들이
안 좋아하는 친구들을 만난 적이 있다.
사람들은 그 친구들의 행동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데
나는 그 아이들에 잘못을 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직접적으로 피해를 주는 아이들은 아니었다)
그 아이들을 탓하지 않았다.
아니, 그러질 못했다.
나중에 오랜 시간에 지나고 나서야
내가 잘 못 되었다는 걸 알았다.
그 아이들은 좋은 아버지들을 둔 아이들이었는데
나도 모르게 그 아이들이 나보다 나을 거라는
후한 점수를 주고 있던 거였다.
나도 모르게 편견에 사로잡혀있었다.
'좋은 아버지 밑에서 자랐으니 좋은 아이들일거야.'
'나보다는 나은 아이들이겠지.'
내가 결국 자전적인 소설을 쓰는 나의 심연을
들여다보면 나의 열등감을 직면하고 싶었던 것 같다.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던 나의 뿌리
나의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를 이해하고 싶어서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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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 머리 앤>의 앤 셜리
(매튜 커스버트는 앤의 친 아버지는 아니다. 그렇지만 다른 문학작품에서 나오는 그 어떤 훌륭한 아버지에 뒤지지 않는 아버지다.)
<작은 아씨들>의 네 딸들
(정의를 위해 목숨을 걸고 전쟁터에 있는 아버지.
진지에 있는 아버지를 동경하던 아이들의 모습이 마치 내 모습 같았다. 또한 둘째 조의 글쓰기에 나의 마음이 움직였다.)
<앵무새 죽이기>의 진 루이스 핀치
(흑인을 위해 당당히 변호하는 진의 아버지, 애티커스
애티커스는 어쩌면 내가 동경하던 남성상)
<리딩 프라미스>의 앨리스 오즈마의 아버지들을 읽으며
(앨리스 오즈마의 아버지는 사실,
내가 바라는 내 자아상이다.
내 아이들에게)
나도 모르게 나의 부재를 치유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내 글들엔 그런 아버지들을 없지만
좋은 아버지상의 부재에 대한 이 깨달음이
같은 일을 겪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작은 힘이 되길,
위로가 되길
내가 이 책들을 읽으며 그러하였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