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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온슬기 Aug 24. 2024

신기촌 시장, 그 서사의 시작

시장 속 아이, 지희

삶을 견뎌낸 이들에게는 이야기가 있다”

(메리 카, ‘인생은 어떻게 이야기가 되는가’ 중에서)





시장은 그 어디나 바삐 사는 사람들로 분주하다. 물건을 파는 사람들, 물건을 사는 사람들, 도매시장에서 물건을 떼서 배달하는 사람들, 집으로 물건을 들고 가는 사람들, 오가는 돈과 사람들 사이의 말들, 물건들 위로 들려오는 흥정들과 때로 고성들.


시장을 전면적으로 채우는 흥정의 모습들과 돈에 얽힌 사람들이 아닌 시장에서 사는 사람들이 있다. 사고 파는 일과는 직접적으로 관련은 없지만 시장에서 존재하는 이들. 이 거대하다면 거대한 시장 밑에 존재하지만 어른들에게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는 이들.


시장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낳고 키우는

아이, 그리고 아이들.


빠르게 시장을 뛰어다녀도 어른들이 크게 염려하지 않던 그 시절. 어른들 발밑에 떨어진 동전을 주워도 이상하지 않은 그 때, 그 시절을 살아간 많은 아이 중 어른들 눈에는 띄지 않던 별로 중요하지 않던 한 아이.


그 아이가 살아가던 시장의 이름은

‘신기촌시장’


 인천에 다양한 시장이 존재했다. 아이가 아는 이름만 해도 모래네 시장, 신포시장, 용현 시장 등 시장을 이르는 이름들이 많지만 이 시장은 ‘촌’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누가 이 시장에 이름을 불렀는지 모르지만, 도시 안에 ‘촌’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신기한 곳.


 아마도 이 시장은 주변의 아파트촌과는 별개이 섬 같은 존재였기 때문에 그러할지도 모르겠다.


 신기촌 시장은 주안역 부근에 있다. 주안역이라 함은 경인선 철도 중 하나를 이르는 역의 이름이고 이 시장은 주안역의 남쪽으로 지나다보면 나오는 주안7동과 문학산 사이에 형성된 시장이다. 인천의 인구가 서울로 가는 출퇴근 인구를 뒷받침하는 것은 이미 아는 일이고 이러한 인구를 뒷받침해주는 상권이 역 부근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주안동에 살고 있었다. 이 신기촌 시장은 새롭게 인천으로 터를 잡으러 온 수많은 타지역 출신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이었다.


 다시 신기촌시장에 살았던 그 아이에게로 돌아와보면 아이에게는 살아가는 곳의 배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늘 분주한 이 곳도 한가한 시간이 있다. 일요일 아침. 수많은 가게들이 문을 오후 늦게나 열기 때문에 이 날 이 시간은 밤을 제외하곤 유일하게 시장이 조용한 시간.

그런 날, 그런 시간은 두꺼운 이불 속에 콕 박혀 있고 싶다.


하지만 빵을 사오라는 아빠의 심부름에 이부자리에서 몸을 쏙 빼곤 드르르 가게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야 한다. 평소 같으면 사람들에 치여서 절대 달릴 수 없는 이 골목을 유일하게 달릴 수 있는 탓에 아이는 아빠의 귀찮은 심부름을 한다.


 아이의 이름은 지희다. 지희는 자기집 가게 앞 골목을 지나 한참을 달린다. 옆으로는 정육점과 야채 사이로 보이는 초록색 대문을끼고 돌면 시장에서 가장 부지런하다는 할아버지가 하는 88슈퍼가 나온다. 왜 88슈퍼인지 모르겠다. 억척스러운 시장 사람들도 문을 안 여는 일요일 아침에도 일찍 문을 여는 이 가게.

살 게 있는 오늘 같은 날도 교회에 가기 위해 잔돈을 바꾸러 갈 때도 할아버지는 표정없이 말없이 돈을 거슬러주신다. 크림빵과 우유를 봉투에 넣고 다시 집으로 달리는 길. 어린 마음에도 한가로운 겨울의 아침 공기는 상쾌하게 느껴진다.


  지희는 지희가 기억하기 전부터의 어린 시절부터 시장에 살았다. 때로는 시장이 싫을 때도 있지만 이 시장은 태어나고 자라고 있는 고향이다. 88슈퍼 골목을 지나면 과일 가게가 있고 그 옆에는 계란 집 장씨 아저씨네 집이다. 그 옆에는 다리는 저는 전씨 아줌마네 채소가게 집이고 채소가게 옆 정육점 건너편 약국과 생선 골목을 지나면 지희네 집이다.


 지희는 사람들이 일하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할 때가 많다. 아저씨 아줌마들이 일하는 모습이 신기해서이다. 그 누구도 아이들이 자기를 유심히 보는 것을 보고 나무라는 사람들은 없다. 시장 아이들은 늘상 어른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고 관찰하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배우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반죽을 주걱에 펴서 젓가락으로 적당한 양만 기름에 넣고 튀기는 뎀부라 아저씨의 손놀림이나 굵은 목소리로 "뎀부라 있어요"하는 목소리. 고추집 아줌마가 생고추를 생강과 마늘을 기계에 집어넣어 김치에 넣을 양념을 만드는 모습, 만든 생고추 양념을 봉지에 넣어 두 번 돌려서 매듭을 묶는 모습 , 여느 건어물 가게 아줌마가 붓에 참기름을 지그재그로 발라 불에 구어 소금을 뿌리는 묘기 아닌 묘기를 부리는 모습도 있다.

 

 그 중에서도 지희가 제일 신기하게 보는 건 생선가게 아줌마다. “동태 한마리 주세요.” 하는 소리가 무섭게 아줌마는 앞에 놓여 있는 동태 들 중 한마리를 냉큼 집어서 오래된 대로 오래되어 중간이 쩍 갈라진  그 도마에 턱하니 보기 좋게 올려놓는다. 순식간이면 아줌마의 손에 들려있던 칼은 도마에 꽂히고 동태 머리와 꼬리는 어느새 잘려 나간다.  보기 좋은 세 도막으로 나뉜 동태의 모습과 저 멀리 내장이 수북히 쌓여 있는 그릇에 머리가 댕강 잘려나가는 모습은 그냥 지나치고는 못 배긴다.


시장 아줌마들은 앞에 전대를 차고 다닌다. 주로 빨간색하고 갈색 사이의 적갈색 전대인데 장사가 잘 되는 날은 아줌마들 전대가 밑으로 축 처진다. 아줌마들이 움직일 때 마다 동전이 짤랑짤랑 거린다. 장사가 잘 안 되는 날은 동전 소리가 잘 안난다. 추석이나 설날처럼 시장에 젤 사람이 많을 때 장사가 잘 되는 날은 아줌마들은 등을 돌려 전대 밑에 또다른 주머니를 꺼내서 돈을 센다. 아줌마들은 누가 채가기라도 할까봐 센 지폐를 주머니에 넣고 전대 밑으로 감춘다.


시장 아줌마들은 머리가 빠글빠글하다. 하지만 먹고 사느라 바빠 머리 할 시간이 조차 없는 시장 사람들에게는 빠글빠근 파마머리가 제격이다. 그래야 빨리 풀리지 않기 때문이다. 생선 골목 생선 가게 아줌마도 건어물 집 아줌마도 여느 평범한 아줌마처럼 파마를 끼고 미용실에서 눈감고 쉬고 싶지 않겠는가. 그래서인지 파마 굵기만 봐도 아줌마가 시장 사람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 여느 아줌마들은 자연스러운 굵은 파마를 좋아하지만 시장 아줌마들은 빠글 빠글 파마를 좋아한다.  


지희네 미용실은 생선가게 옆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생선 골목 끝에 자세히 목을 빼곡히 내밀고 봐야 파마, 드라이, 고데 라는 말이 쓰여있는 지희네 미용실이 나온다. 생선 골목에 미용실이라니 처음 듣는 사람들은 우습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러한 아줌마들의 필요를 위해, 지희엄마의 생계를 위해, 그리고 지희네 세 남매를 위해 이 미용실은 거기에 있었고 지희가 시장에 존재하는 한 미용실도 거기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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