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고모의 이야기
페르시아 시인 사아디 글리스탄은 말했다. “그대가 가진 것이 많거든 대추야자처럼 아낌없이 주라. 그러나 가진 것이 없거든 삼나무처럼 자유인이 될 지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월든> 중
고모가 군인이었음을 가늠케하는 것은 그녀의 결단력이었다. 자녀들을 내버려두고 새 삶을 살러 떠났다가 모든 걸 잃은 아버지를 거둔 그녀. 남편을 잃고 혼자 된 여동생을 같이 살자고 거두고 늦게 결혼한 막내 동생의 큰 아이를 당분간 맡아주기로 한 것 까지 그녀는 결단력의 사람이었다.
이 언덕에 집을 지을 때도 그녀의 추진력이 아니었다면 없었을 집. 공사를 주고 돈을 떼일 뻔 했다가도 따지기도 잘 하고 인부들을 챙기고 밥을 해줬다고도 했다.
가정 예배를 드릴 때에도 그녀는 ‘모두 집합’이라고 그랬다. 작은 고모는 부엌일을 하다말고 궁시렁 궁시렁 거리며 할아버지 방으로 향하고 지희는 마당에서 놀다가 휙 뛰어들어간다. 할아버지 방에 어른 셋과 아이가 집합해서 모이는 예배시간. 그녀는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아마도 그녀의 큰 목소리를 들으면 군가도 이렇게 크게 불렀을 것 같다.
그녀는 군인시절 미국에 갔다. 그녀가 영어를 하는 것을 보는 것은 본 적은 없지만 1년간 경험했던 미국 시절의 추억을 그녀는 간간히 이야기했다. 누가 듣든 듣지 않든. 그녀의 책꽂이의 영어책들. 그녀가 영어를 하는 모습을 싱상해보지만 머리 속에 그려지질 않았다. 지희가 좀 컸을 때 TV를 틀면 나오는 AFKN에서 나오는 미군들과 한국군인들이 섞여서 일하는 모습을 보면 지희는 미국에서의 고모가 저러했을까를 생각해보곤 했다. 지희가 오기 몇 년 전 그녀는 피아노를 장만했다. 그녀를 초대해 준 군인 가족의 친절과 그녀의 미국 시절의 추억을 갈무리해주는 추억의 도구. 피아노선생님을 고용해서 몇 번 레슨을 받다가 포기했더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희는 부엌에 가도 되고 마당에도 놀 수 있으며 창고방에 들어가도 되지만 지희가 절대로 만져서는 안 될 것이 있었다. 피아노였다. 피아노를 만졌다가는 불호령이 떨어졌다. 피아노 위에는 이 집과는 어울리지 않는 노란색 피아노 커버가 씌워져있었다. 지희가 집으로 돌아가고 몇 해가 흘러도 지희나 윤희가 명절에 가서 조금이라도 만질려고 치면 불같이 화를 냈다. 작은 고모가 들리는 둥 마는 둥 넋두리처럼 “들여놓고 몇 번도 안 칠거면서 애들 좀 치게 냅두지. 아주 보물단지네.” 했다.
가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과 아름다움과 평화의 상징이 그녀에게는 피아노가 아니었을까.
일제치하의 빼앗긴 나라에서 태어나 해방을 맞이했지만 이듬해의 그녀의 엄마는 막내 동생을 낳고 얼마 안 있다 세상을 떠났다. 나라를 되찾았을 때 그녀는 엄마를 잃었다. 새 정부가 새워졌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 뒤 그들이 아버지의 임지를 따라 갔던 개성의 분위기는 험악해져있었다. 사람들의 분위기는 어두워졌고 38선이 그어졌다. 새로운 나라를 꿈꾸던 그녀는 다시 전쟁을 겪는 나라를 보아야만 했다. 전쟁이 터질 것 같다는 소식을 접한 아버지는 부산으로 피난을 가자고 했다. 온 가족이 이주했던 개성에서 그녀는 동생들을 데리고 아버지와 함께 온 식구를 데리고 부산으로 떠났다.
유독 소녀에게 가혹했던 역사는 그녀의 감정을 마비시키기 시작했다. 가족을 책임지는 것이 힘들어진 아버지는 늘 불안해보였고 그녀는 약해지는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내가 무너지면 다 무너진다.' 그 때 부터였을까. 아니면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후였을까. 그녀는 감정을 붙잡았다. 슬픈 감정이 툭 치고 나와 그녀를 주저 앉게 만들려고 할 때마다 그녀는 슬픔이라는 친구를 끌어내려 나오지 못하도록 가두고 외면하고 그저 묵묵히 주어진 하루하루를 살며 앞을 가려고 노력했다. 그녀는 동생들을 대할 때도 어미없는 자식이라는 소리를 듣게 하지 않으려고 아버지보다도 더 엄하게 대했다.
전쟁 후 휴전 협상이 되고 안정을 찾아가는 나라에서 그녀는 새로운 삶을 꿈꾸었다. 그녀는 군인으로 입대를 했다. 자신의 아픔을 잊고 군인으로서의 생을 살아내는 데 힘을 다했다. 자유라는 바람을 타고 그녀는 날개를 뻗어 자신만의 세상을 향해 날아가고 싶었다. 그녀가 부러진 날개를 가다듬고 펴보려하던 그 때 연약했던 아버지는 동생들의 곁을 떠았다. 아버지는 새로운 여자를 들여 재혼을 했고 그나마 남아있던 재산마저 다 날려버렸다. 그녀가 끝까지 돌보려고 했던 동생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그녀 옆에 남아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새 삶을 꾸리려했지만 펴보려고 했던 한 때 부러졌던 날개는 바닥으로 치달았다. 묶어버리고 묶어버렸던 그녀의 마비된 감정 표현은 어렵게 만나 사랑했던 사람을 떠나보내게 만들었다.
군인으로서의 삶을 다하고 있을 때 그녀에게 유일하게 찾아온 한 줄기 빛은 1년간의 미국연수생활이었다. 유독 군생활에 열심이었던 그녀에게 주어진 1년간의 생활. 서툰 영어임에도 주변 사람들은 그녀를 친절하게 대해주었고 부대에서 같이 근무하던 상사 가족이 그녀와 동료들에게 저녁 식사 초대를 했다. 그녀가 동료들과 식사를 마치고 거실에 나왔을 때 상사의 딸은 피아노를 연주했다.
그녀는 그 곡을 몰랐는데 나중에 알게 된 곡의 제목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월광'이라고 했다. 그녀는 그 곡을 들으며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고, 눈물이라는 것을 보일 것 같지 않은 그녀가 눈물을 보였을 때 가장 의아했던 것은 그녀 자신이었다. 잘 막아두었다고 생각했는데 눈물이 앞을 가리고 있었다. 쏟아져내리고 있었다. 그녀의 눈물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아름다운 것을 동경하던 소녀의 감성이 터져나온 것이었을까.
실패한 결혼 생활에 대한 회한.
아니면 그녀 자신에 대한 동정과 슬픔.
얼마 지나지 않아 식사에 초대했던 가족은 그녀를 가까운 교회에 데리고 나갔고 그녀는 피아노를 통해 한 줄기 흘러나온 감정을 교회에서 되살릴 수 있었다. 그 후로 그녀는 교회에서 자신의 거칠었던 삶을 기댈 수 있는 거대한 언덕을 만났고 유독 가혹한 역사 속에서 짐을 짊어졌던 그녀는 한 쪽 어깨를 예수라는 언덕에 기대어 살 수 있게 되었다.
지희의 어린 시절의 심곡동 아니 깊고 깊은 언덕의 끝 집에서의 기억은 무채색이었다. 간간히 작은 고모와 큰 고모를 통한 작은 친절들이 지희를 버텨주는 힘이었지만 그 누구도 아이를 따스하게 안아주지 못했다. 그들은 따뜻함을 주고 싶었지만 주지 못했다. 피아노를 볼 수는 있지만 피아노를 만지지 못했던 지희에게 피아노는 절대로 넘어설 수 없는 선이었다. 가까이 갈 수 없는 세계. 너를 받아 키워주지만 미안하지만 너에게 줄 더 이상의 사랑은 우리에게도 없어.
아마도 그녀들은 지희를 안아주고 싶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비뚤어진 세계에서 엄마 없이 커가던 소녀들은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알지 못했고 안아주는 것을 알지 못했다. 지희에게 비를 피할 지붕을 내어주고 따스한 집을 마련해주고 보호해주었지만 정작 지희의 가슴에는 구멍이 숭숭 뚫리고 있었음을 알 수가 없었다. 아마도 그녀들의 가슴에는 지희보다도 더 큰 구멍들이 존재했을 것이다. 전쟁과 뒤틀어진 나라의 역사, 깨어진 가정이라는 총알들이 그녀들의 가슴에 박혀 짓눌러 구멍들을 냈을 것이다.
지희가 집에 돌아갔을 때, 지희의 머릿 속에서 그렸던 엄마에 대한 환상은 처절하게 깨졌다. 지희가 미용실에 도착했을 때 엄마는 눈물을 흘리지 않고 '왔구나.' 했다. 지희의 마음 속에서 몇 번 이고 그렸던 엄마와의 재회. 엄마는 반가워했지만 엄마는 손님의 머리를 해야 했고 데리고 온 고모를 맞이하며 경직되어 있었다. 하지만 밤에 이불을 깔고 지희를 따뜻하게 안아주고 자는 엄마의 품에서 지희는 드디어 집에 왔음을 실감했다.
지희는 작은 고모의 예쁜 달걀 지단을 볼 수 없다. 지희의 엄마는 지단을 부치기 위해 달걀을 흰색과 노란색으로 나누지 않았다. 달걀을 그저 톡톡깨서 후라이팬에 올려 달걀 프라이를 주었다. 모양이 울퉁불퉁, 한쪽은 타고 한 쪽은 설익은 달걀. 그러나 동생들과 장난치며 밥을 먹는 이 곳에서는 지희는 밥상머리에서 장난을 칠 수도, 소리를 지를 수도 있고, 밥을 흘려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었다.
지희가 돌아가고 얼마 안 있다 가끔 작은 고모와 큰 고모는 머리를 한다는 이유를 자주 엄마의 미용실에 왔다. 지희의 틀어지고 더러워진 옷매무새나 머리 매무새를 보면서 그녀들의 눈빛은 엄마를 지적했고 엄마는 그 눈빛에 머리를 조아렸다. 아이를 키워준 고마운 시누이들에게 그녀는 주스를 대접하기 위해 지희는 심부름을 보냈고 작은 고모는 슈퍼에 가는 지희를 따라나섰다. 슈퍼 아저씨가 작은 고모를 보고 "지희, 할머니이시구나."라고 하자 지희는 작은 목소리로 "고모에요."했다. 슈퍼 아저씨는 "큰 고모시구나 했다."
지희는 작은 고모를 보면서 한 번도 할머니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는 데 지희가 작은 고모를 자세히 보니 작은 고모는 흰 머리가 많은 할머니들의 나이였다. 아빠와의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고모는 언제까지나 지희에게는 고모일 뿐이었다. 엄마가 고모들의 머리를 끝내면 큰 고모는 "모두 집합" 이라고 아이들을 불렀다. 지희는 밖에서 놀던 동생들을 부른다. 아이 셋은 고모 앞에서 경직된 표정으로 차렷을 하고 있다. 그녀는 아이 셋의 키를 재고 이것 저것 말도 하고 혼도 내고 큰 고모는 작은 고모와 함께 용돈을 주고 심곡동으로 돌아갔다.
큰 고모의 마비된 감정은 투박하고 기울어진 표현으로 이어졌다. 지희를 키운 정때문인지 지희에게는 따스하게는 아니지만 엄마나 윤희에게 경직된 말투로 할 때보다는 낫게 대했고 막내동생 윤성이는 남자였기 때문에 투박한 말투로 격려를 했다. 엄마 옆에서 자유롭게 자란 윤희는 고모들의 눈엣가시였고 늘 윤희는 혼나기 바빴다. 혼내는 눈빛을 버겁게 느낀 지희는 기울어진 사랑을 받지도 못하고 거부하지 못했고, 그녀들이 집으로 가기가 무섭게 지희는 크게 한숨을 쉬곤 했다. 고마운 마음과 버거운 마음이 교차하는 고모들에 대한 지희의 감정의 가방은 상상이상으로 무거웠다.
이후로 지희가 고학년이 되어서도 지희가 마음이 무거운 일이 생기거나 두려운 일이 생기는 날에는 늘 밤에 꿈을 꾸었고 그 꿈은 시장 골목을 뛰어다니다 보면 어느샌가 부천 심곡동의 계단 아래로 가는 거였다. 지희는 시장의 골목을 아무리 뛰어다녀도 결국 언덕 위의 집으로 돌아가는 꿈을 꾸고는 놀라서 꿈에서 깨곤했다.
시장에 피아노 학원이 생기고 동생 윤희가 피아노학원에 가고 싶다고 조를 때 지희는 과연 피아노학원을 다닐 수 있을까 의심했지만 엄마는 의외로 흔쾌히 아이들을 피아노학원에 보냈다. 없는 형편에 피아노가 가당키나 하냐고 아빠는 엄마를 나무라려고 했지만 명절 때마다 피아노 앞에서 움찔대는 지희와 윤희를 보던 엄마의 마음은 피아노를 꼭 보내야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한쪽 선을 넘을 수 없게 해도 다른 선을 넘게 하면 되는 것.
지희가 처음 피아노에 앉아 건반을 두드렸을 때 지희는 선을 넘었다. 지희가 절대로 넘을 수 없을 것만 같았던 교양의 세계가 지희의 세계로 쏟아져 내려왔다. 지희였다면 피아노학원을 보내달라고 할 수 없었을텐데 동생 윤희는 넘어가지 못하도록 그어 버린 선을 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선을 넘어서 새로운 세상을 열었다.
지희에게는 윤희와 엄마를 통해 쏟아져내려 온 피아노의 세계가 사실은 지희가 스스로는 열 수 없었던 문. 그것은 자유로움의 세계였다.
https://www.youtube.com/watch?v=QzL4Agd5ux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