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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온슬기 Oct 26. 2024

학교에서

비류에게 말걸기

학교는 한 사람이 인생에도 중요하지만 해당 지역의 얼굴이 되는 소중한 장소이다. 한 번 지어지면 노후하여 사라질 때까지 인간과 오래도록 관계를 맺는 사회적, 문화적 산물이다.

(공간이 아이를 바꾼다, 김경인)




학교에 처음 갔을 때 1학년인 지희가 연습해야 했던 것은 줄서기였다. 차렷, 열중 쉬어, 차렷을 무수히 반복. 옆으로 나란히 앞으로 나란히를 하면서 서로 옆 줄을 맞추고 조금이라도 틀리면 선생님들이 나와서 줄을 맞추도록 한다. 그리고 교실로 들어갈 때 선생님들의 지시에 맞추어서 들어가는 데 수많은 아이들이 반듯하게 줄을 맞추어 행진곡에 맞추어 들어가는 모습은 그야 말로 장관이었다. 지희는 학교가 딱딱하게 느껴졌다. 유치원과는 다른 딱딱하게 규율에 맞추어야 하는 삶.


지희가 학교에서 가장 싫어한 것은 토요일이었다. 어느 토요일에 반공영화를 본다고 아이들에게 500원씩을 가져오라고 했었다. 500원이면 꽤 큰 돈이었는데 무슨 영화를 본다길래 그런 것인지 지희는 호기심이 생겼다. 토요일, 학교에 가서 선생님께 한 명씩 돈을 내고 운동장에 쳐진 큰 천막 속으로 들어갔다. 학교 운동장 전체가 뒤덮일 만큼의 큰 천막 속으로 들어가니 앞이 깜깜했다.


천막 속에서는 반공에 관한 영화를 하고 있었다. 간첩에게 잡힌 아이가 끝까지 간첩에게 잡히지 않으려고 했던 이야기들이 영화 속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가뜩이나 무서움도 있고 겁도 많은 지희인데, 깜깜한 곳에서 그것도 아주 큰 소리라 쩌렁쩌렁 울리는 그 공간에서 아이들이 죽는 장면을 나타내는 것을 제대로도 보지 못했다. 눈을 감았는데 문제는 눈을 감으니 소리가 더 크게 느껴지고 몸의 감각까지 예민해지면서 소리가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무언가를 쑤시는 소리들, 둔탁한 것들이 부딪히는 소리, 아이들의 비명 소리, 군화 소리, 총쏘는 소리. 그야말로 무서움의 극치였다.


1학년 때는 두 번 , 한 학기에 한 번씩 반공영화를 봐야했다. 지희도 공산당은 싫은데, 이렇게 꼭 무서운 영화를 봐야만 공산당이 싫어지는 것인지 알지 못했다. 반공 영화의 효과라면 정말 무서워서 밤마다 기도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엄마가 깔아준 이불 밑으로 들어가서 기도를 하며 '우리집에는 간첩이 오지 않게 해주세요.'

그리고 2학년이 되었을 때 반공 영화를 보는 것은 사라졌다. 지희는 올림픽 성화가 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선생님과 함께 학교 뒤 도로로 나갔는데 학교 아이들이 많고 성화는 빨리 지나가서 성화를 제대로 보지는 못했다.  올림픽 이후로는 학교에서는 반공 영화를 보란 말이 없었다. 어린 지희로서는 무서운 영화를 억지로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나서 글짓기 시간. 1학년에서는 아이들이 글짓기를 하고 반공 웅변대회를 했는데 웬일인지 선생님이 2학년부터는 반공에 대한 주제 말고 통일에 대한 주제를 쓰라고 하셨다. 그러고 보면 아이들은 자신이 쓴 글을 읽고 웅변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통일이 자세하게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폭력적이지고 무섭지 않은 것만으로도 지희에게는 좋은 것이었다. 억지로 천막에 들거가서 무서움에 떨며 반공 영화를 보지 않아도 되고, 지희는 한 번도 배워보지 못한 억지 웃음의 웅변을 하지도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어린 아이들과 어울리지 않은 큰 소리로 눈을 크게 굴리는 어떤 남자가이가 상을 받아 조회 시간에 가슴을 두드리며 하는 웅변을 듣지 않아도 되서 좋았다.


반공에서 통일로 단 두 글자만 바뀌는 것이었는데도 그 두 글자에 뒤에 숨어있던 여러가지 의미와 활동들은 지희의 학교에 경험하는 일상들을 완전히 바꿀 만한 거대한 움직임이었다.


 지희가 학교에서 제일 좋아하는 과목은 사회였다. 지희가 아빠를 통해서 읽는 신문이나 위인전을 읽으면서 알게 된 내용들이 거의 사회교과서에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 아빠가 보는 신문에는 한자들이 많이 나왔고 한자들을 물어보자 아빠는 귀찮은듯이 서점에 가서 따개비 한문숙어라는 한자가 나와있는 만화책을 사주었다. 만화를 심심할 때마다 읽으면 읽을 수록 한자를 잘 읽게 되었는데 한자를 잘 읽으니 국어교과서에 나오는 어려운 낱말들이 이해가 잘 되었다. 위인전을 읽다보니 역사에 대한 사실들을 이미 많이 알고 있었고 선생님이 사회 과목이나 역사에 관한 어떤 질문을 하면 아이들은 거의 대답을 주저하는 데 이미 지희의 머릿속에는 답이 나와있었다.

 

3,4학년에서는 인천에 대해서 배우기 시작했는데 인천의 옛 이름이 미추홀이라는 것이 재미있었고 인천에 얽힌 이야기들을 듣거나 배우는 것이 즐거웠다. 지희는 자기가 살고 있는 인천이라는 도시를 좋아했고 자랑스러워하기 시작했다. 고구려의 왕자 비류가 미추홀에 도읍을 세우고 나라를 세웠지만 땅이 간조하고 농사가 잘 되지 않아서 백성들이 고생을 했고, 비류가 그 사실에 절망하고 일찍 생을 마감했다는 이야기를 배울 수 있었다. 미추홀이 결국 백제에 흡수가 되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만약 인천이 조금 더 비옥한 땅이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하며 아쉬워하기도 했다. 미추홀의 백성들이 위례를 찾아가 자신들을 다스려줄 것은 요청한 내용을 배울 때가 제일 안타까웠다.

 계속해서 인천에 대한 역사를 배우다 보니 인천의 역할이 마치 서울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개항을 제일 먼저 했던 인천의 역사, 서울을 차지 하기 위해 경인천 철도를 만든 역사,  경제개발계획으로 인해 개발되는 인천항, 경인고속도로 등. 역사의 전면에 나서는 서울의 모습과 달리 인천은 서울이라는 주인공을 위한 조연과 같이 보이는 역사들이 어린 지희로서는 아쉬웠다. 미추홀이 굳건한 나라였다면 지금처럼 그림자같은 역할을 하고 있지는 않았을텐데라고 생각했다.

  

 학교에서는 늘 좋은 친구들이 서울로 전학을 많이 갔다. 학교에서 애들을 잘 웃기던 용필이라는 남자 아이도, 같은 반에서 회장을 도맡아하던 지환이라는 아이도, 지희가 처음 친해진 선이도 모두 서울로 떠났다. 지희가 괜찮다 생각하는 친구들은 거의 백발백중 서울로 떠났고 지희의 마음 속에는 어느새인가 자격지심같은 게 생기는 지도 모른다. 블랙홀같이 사람들을 빨아들이는 서울은 과연 어떤 곳일까. 교과서를 보다보면 교과서를 만든 선생님들의 이름과 선생님들이 근무하는 학교가 써있었는데 그 곳에도 역시 서울의 이름이 많이 적혀있었다. 간혹 어떤 선생님의  이름 옆에 인천이라는 지역명이 써있으면 아이들끼리도 여기 인천이다 하며 좋아했고 사회 시간을 거치면서 아이들 마음 속에는 자기 고장에 대한 자랑스러워하는 마음과 자격지심같은 것이 공존하고 있었다.

 

 상상하기를 좋아하는 지희는 늘 비류에게 말을 걸고 싶었다.  지희가 역사 속으로 걸어들어가 절망에 빠진 비류에게 말을 할 수 있다면 당신이 선택한 미추홀은 나쁜 곳이 되지 않았다고. 많은 아이들이 미추홀을 좋아한다고. 지희 자신도 미추홀을 좋아하며 여기 살고 있다고. 미추홀은 위례같은 큰 도읍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고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지희같은 친구들은 미추홀을 아주 자랑스러워하고 있다고. 상상의 세계에서 비류에게 이야기해주었다.  

 

 그렇게 지희는 자라나고 있었고 책의 세상을 통해 배운 내용과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머릿속에서 연결짓고 있었다. 어린 시절 엄마 손에 자라지 못했던 시절의 아픔은 마음속의 구멍이 되었지만 대신 어른들의 말을 귀담아듣고 머릿 속에서 계속 생각을 해야 했던 그 시절의 습관은 학교에서는 도움이 되었다. 선생님들의 말들이 지희의 귓속에 맴돌았고 시험을 보면 선생님들이 했던 말들을 찾아내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늘 말이 없고 조용했던 지희가 선생님들의 눈에 띄기 시작한 것은 옷차림이나 학교에서의 모습이 아니라 시험 이후였다. 옷차림의 모습과는 관련이 없는 점수때문이었다.

 다른 공부들을 잘 들으면 시험을 잘 칠 수 있는데 수학은 어려웠다. 배우는 것이 어렵고 힘들었다. 그러다 피아노를 배우게 되면서 지희는 자기도 모르게 수학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음표들의 길이를 나타내는 표시들이 분수의 개념과 통합이 되고 박자표들이 전체 음표의 길이를 지배하고 전체 조표가 음의 높낮이를 지배하는 그 세계의 법칙은 수학을 배우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음악의 기호가 담고 있는 여러가지 의미들과 정보들이 마치 수학의 기호에 숨어있는 여러가지 정보와 닮아있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고학년이 되자 수학도 잘 하게 되자 지희는 학교가 좋아지기 시작했고 자신이 있어지기 시작했다.  


 어둡고 무서운 곳이었던 학교가 지희에게는 지희라는 사람이 만들어지는 공간으로 서서히 바뀌게 되고 그렇게 지희는 자기도 모르게 학교라는 세계의 일원이 되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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