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홀로 울고 있을
깊숙이 숨어 있는 슬픔도
이젠 함께 떠나보자꾸나
여행을 떠나자
(내 기억속의 소년, 홍이삭)
이번 여름 나는 베트남에 다녀왔다. 베트남은 개발되어가고 있었고 숙소들, 거리들이 깨끗하고 화려했다. 우리나라 관광객들과 여러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로 붐볐다. 그곳에서 가족들과 함께 케이블카를 타다가 멀리 바닷가 마을의 판자집들이 보였다. 판자집들 앞으로 예닐곱살로 보이는 아이들이 까만 얼굴과 웃통을 벗으며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았다.
그러다 나의 어린시절이 생각났고 멀리서 보이는 케이블카와 워터파크들을 바라보는 아이들은 어떤 마음일까 생각했다. 여행 마지막 날, 큰 슈퍼에 들렀는데 슈퍼 바로 맞은 편에 판자촌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들이 해맑게 웃고 있는 뒤로 플라스틱 더미들이 보였고 내가 서 있는 슈퍼에 가득 찬 물건들과 아이들의 앙상한 몸통이 상반되게 보였다.
한국에 돌아와서 베트남에서 본 장면들이 마음에 남았다. 나의 마음이 그 아이들이 마음이 쓰이는 것은 아마도 나의 어린시절 때문이리라 생각해보았다.
시장을 온통 쏘다니며 무청과 시레기를 주머니에 그득그득 담던 그 당시의 우리. 고모네 집에서 장난감 하나없이 바라보는 하늘과 놀 것이라고는 돌멩이 밖에 없던 심곡동에서의 모습들. 아파트와 시장 사이를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들과 아이들의 모습들.
캐나다의 외로운 한 소녀의 이야기가 나의 삶의 버팀목이 되어 주었듯. 한국에서 어려운 시절을 보낸 한 아이의 이야기가. 다른 아이의 삶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기를.
그렇게 막연한 생각에 사로잡혀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16년 전 습작해두었던 글을 고치면서 새로 덧붙이기 시작했고 어린 시절의 나, 16년 전의 젊은 나, 그리고 현재의 나가 서로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글을 막 쓰고 싶었던 것도 아니고, 그간 블로그같은 곳에다가 글을 써왔고 간간히 습작 같은 걸 했었는데 브런치의 연재라는 기능은 규칙적으로 글을 쓰게 해서 결국 연재의 끝 완결을 하게 되었다. 생각나는 것을 적다보니, 이야기가 완결된 서사구조라기보다는 각각 하나의 이야기가 이야기속 안에서 간결한 완성이 있는 옴니버스 형식의 글이 되었다. 자전적 소설이라 어린 시절 기억에 덧붙여 그 기억에 어울리는 서사를 붙이거나 나의 해석을 덧붙였다.
글을 쓰다보니, 나의 기억이기도 하지만 한 사람을 둘러쌌던 사람들과 그 공간의 이야기가 되었다.한 아이가 커가는 과정은 아이의 내면의 자람을 영향을 주는 환경과의 상호작용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꼭지를 써갈 때마다 그간 내가 읽어왔던 책을 갈무리해두었던 독서노트에서 나의 이야기와 어울리는 부분을 찾아내는 것은 또다른 새로운 경험이었다. 어른인 나라는 사람을 만들어왔던 그간의 독서노트는 글쓰는 이로서의 나를 만들어준 또다른 시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희는 시장 속에서 살아갔고 커갔고 버텨왔듯 나라는 사람도 글을 쓰면서 나의 생활을 하고, 또 커가고, 나의 일상을 버텨왔다. 짧지만 짧지 않았던 2개월동안의 글쓰는 과정은 새롭고 또 새로웠다.
하나의 작품을 완결하는 이 과정을 함께해 준 가족과 글을 읽어준 이들에게 고맙다. 브런치 글쓰기를 통해 글을 쓰는 것은 함께함임을 다시 한 번 알게 되었다. 또다시 글을 쓰게 되겠지만, 이렇게 새로운 경험을 다시 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처음이었고 새로웠고 생경했기 때문에 그렇게 이 브런치 플랫폼에서 어린 지희였던 나는 글쓰는 사람이 되어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