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과거란 없다, 솔직하면 되는 것

자전적 소설을 쓰는 이유(1)

by 가온슬기

아버지는 늘 내가 아버지의 어린 시절을 물으면 화를 내곤 했다. “그런 거 알거 없어.”

엄마에게 엄마의 가정사를 물어도 돌아오는 것은 회피였다. “나중에 이야기해줄게.”


외로운 시절을 통과했던 나에게 내 질문에 대한 회피형의 대답은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나중에 책을 통해 안 사실이지만 자신의 뿌리를 아는 것은 한 사람의 자아를 형성하는 데는 중요한 일인데 말이다.


나의 뿌리를 나중에서야 조각조각 알게 되었다.

어린 시절 나 자신의 뿌리에 대해 잘 듣지 못했던 나는 늘 나의 존재에 대한 부끄러움이 있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나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이 자라갔다.

좋은 사람을 만나 가정을 꾸렸다.

아이들을 낳았다. 아이들이 커갔다.


아이들이 나에게 내가 했던 똑같은 질문을 해왔다.

나는 내 부모님과는 다르게 회피하지는 않았다.

아이들에게 나름의 대답을 해준다 . 그러다 깨달았다. 나의 어린 시절에 대한 나의 렌즈가 중요하구나.

비록 나의 어린시절이 그렇게 아름답지 못하고 자랑스러운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솔직하게 이야기해주는 것이 아이들에게 큰 도움이 되는구나.


나의 자전적인 소설을 20대에 습작노트를 썼던 것을 왜 이제와서 고치고 브런치에 올리는가에 대한 나 스스로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어린이였던 나 자신에게와 새로운 세대인 나의 아이들 때문이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면서 아이들이 너무 좋아했다.

남편이 첫 독자였다면 아이들은 열혈 독자였다.

엄마가 소설에 빗대어 자신의 이야기를 써내려간 것에 흥분했다. 물론 소설이기에 모든 것이 다 사실이 아니고 글에 덧붙여진 부분들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은 자전적인 소설이기에 아이들은 더없이 흥분했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젊은 시절의 이야기를 읽는 것에 즐거워한다. 엄마가 이야기 속에서는 자기들보다 꼬마아이인 것에 킥킥대며 읽어내려갔다.


아이들이 재미있어하니까 신기했다.

그래, 부끄러운 과거가 아니구나.

나의 과거이기도 하지만 늘 자신들을 부끄럽게 여기던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야기이기도 하기에 기뻤다. 새로운 세대는 부끄러워하지 않기에, 그저 그들이 어떤 젊은 시절을 살았는지를 알고 싶어하기에 너무 흥미진진했다.


소설 속의 젊은이들인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 이야기 속에서는 영원히 젊은이이다.


중학시절에 대한 새로운 브런치 연재를 해놓고 글쓰기를 멈췄다. 글을 연재하다보니 정말 잘 쓰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러다 보니 욕심이 나서 글을 썼다가 지우다가 썼다 지우다가 한다.


진도가 안 나간다.


나 자신도 내 글이 때로 작게 느껴지고 부끄럽게 느껴져서 일지 모른다. 그러나 잘하려고만 하면 결과물이 나오지 않으니 성실하게 미약하더라도 조금씩 써보자고 다짐하며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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