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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선미 Nov 23. 2018

아이와 노년

윤제림, <철수와 영희> + <둘이서 손 잡고>

철수와 영희

윤제림



철수와 영희가 손 붙잡고 간다

철수는 회색 모자를 썼고, 영희는 빨간 조끼를 입었다

바둑이는 보이지 않는다

분수대 옆에서 맨손체조를 하고 있는

창식이 앞을 지날 때

영희가 철수의 팔짱을 낀다

창식이는 철수가 부럽다


철수와 영희가 벤치에 앉아

가져온 김밥을 먹는다

철수가 자꾸 흘리니까 영희가 엄마처럼

철수의 입에 김밥을 넣어준다

공원 매점 파라솔 그늘 아래 우유를 마시던

숙자가 철수와 영희를 바라본다

숙자는 영희가 부럽다


일흔두엇쯤 됐을까

철수와 영희는 동갑내기일 것 같고

창식은 좀 아래로 보인다

물론, 영희와 철수는 부부다.


⟪그는 걸어서 온다⟫ (문학동네 2008)



<거북이는 오늘도 지각이다>가 '동시'라는 장르를 들었다 놓으며 웃음을 만들어 내고 있다면, <철수와 영희>는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 1학년 1학기 국어 교과서를 들었다 놓으며 잔잔한 웃음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철수야 놀자 영희야 놀자 바둑이도 같이 가자, 1학년 철수와 영희가 20대 철수와 영희인가 싶었다가 일흔두엇쯤 된 철수와 영희가 되어가는 모습은 사람의 한 생을 빠르게 감아 보여주는 느낌까지 들게 합니다. 그들을 바라보는 창식이와 숙자는 시인의 위치일지도, 저의 위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은 '평범'이 가장 어렵다는 생각과 함께, 우리들 모든 지금 모습이 '평범'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평범'은 할 수 있는 능력(힘, 지위, 재물)이 적은 아이들의 단순한 생활을 닮았습니다. 아름다운 노년의 영희와 철수의 모습을 보며 그 모습 이면에 있었을 두 부부의 아픔도 함께 생각하게 되는 이유도 그래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잘 늙고 싶습니다. 잘 늙어 잘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것이 제 생이 도달해야 할 목표가 아닐까 싶습니다.



다섯 살 내 동생처럼

윤제림



할아버지 할머니가 두 손 꼭 잡고

한 손은 하늘 높이 치켜들고

길을 건너신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다섯 살 내 동생처럼


⟪거북이는 오늘도 지각이다⟫(문학동네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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