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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선미 Nov 23. 2018

설탕 두 숟갈의 몸무게

임복순, <몸무게는 설탕 두 숟갈>

몸무게는 설탕 두 숟갈

임복순



설탕 두 숟갈처럼 

몸무게가 25그램밖에 나가지 않는 

작은 북방사막딱새는 


남아프리카에서 북극까지 

3만 킬로미터, 

지구 한 바퀴를 난다고 한다. 


살다가 가끔 

내 몸무게보다 마음의 무게가 

몇 백 배 더 무거워 

힘들고 괴로울 때 


나는, 

설탕 두 숟갈의 몸무게로 

지구 한 바퀴를 날고 있을 

아주 작은 새 한 마리 

떠올리겠다. 


⟪몸무게는 설탕 두 숟갈⟫ (창비 2016)



렝켄은 착한데도 엄마 아빠가 자신의 의견을 존중해 주지 않아 속상하기만 하다. 손가락이 여섯 개 달린 요정이 렝켄에게 해결책으로 건넨 것은 다름 아닌 마법의 설탕 두 조각. 미하엘 엔데의 동화 『마법의 설탕 두 조각』 이야기다. 미하엘 엔데의 설탕은 고민을 해결해 주는 마법의 설탕이지만, 현대 사회에서 설탕은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백색 공포로 꺼려지기도 한다.

「몸무게는 설탕 두 숟갈」은 남아프리카에서 북극까지 3만 킬로미터, 지구 한 바퀴를 난다는 작은 북방사막딱새에 관한 이야기다. 북방사막딱새의 몸무게는 25그램, 달걀 반 개 정도의 무게다. 몸무게는 몸무게인데 손바닥 위에 올려놓을 수 있을 만큼 참 ‘가벼운 몸무게’다. 마음의 무게가 손바닥 위에 올려놓을 수 없을 만큼, 몸의 무게보다 몇 백 배 더 무겁고 괴롭게 느껴질 때, 시인은 지구 한 바퀴를 날고 있을 아주 작은 한 마리 새를 떠올리겠다고 한다. 설탕 두 숟갈 무게의 이 작은 새를 떠올리는 일은 백색의 공포처럼 힘겨운 순간을 두 조각의 설탕으로 바꾸어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잠시 바라보는 일이다. 손바닥 위에 있는 달콤한 슬픔 같은 설탕을, 혀 위에 올리거나 따듯한 차 속에 넣고 살살 다독이며 녹여 보는 일이다.



⟪도서관이야기⟫ 2018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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