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찬호, <초록 토끼를 만났다>
초록 토끼를 만났다
송찬호
초록 토끼를 만났다
거짓말 아니다
너한테만 얘기 하는 건데
전에 난 초록 호랑이도 만난 적 있다니까
난 늘 이상하고
신기한 세상을 기다렸어
'초록 토끼를 만났다'고
또박또박 써 본다
내 비밀을 기억해 둬야 하니까
그게 나에게 힘이 되니까
⟪초록 토끼를 만났다⟫(문학동네 2017)
시는 경이로운 사건으로 시작된다. "초록 토끼를 만났다"! 이어지는 "거짓말 아니다"는 이 만남이 사실임을 강조하고 있지만, 동시에 사건의 성격이 현실에서는 좀체 일어날 수 없는, 그래서 도무지 믿을 수 없는 것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비밀 하나를 더 펄어 놓는다. 전에 난 초록 호랑이도 만난 적 있다는 것. 그리고 나는 오늘의 만남을 적어 둔다. 기억해 둬야 하니까, 그게 나에게 힘이 되니까.
일생에 단 한 번 일어날까 말까 한 사건이 누군가에게는 두 번씩이나 일어났다. 루이스 캐럴의 앨리스는 주머니 조끼를 입을 시계 토끼를 우연히 만났지만, '나'는 초록 토끼를 기억의 힘으로 만났음에 주목하자. 그러니까 오늘의 초록 토끼는 과거의 내가 '초록 호랑이를 만났다'라고 기록하고 기억하였기에 가능한 만남이었다고 말이다. 그리고 지금 내가 적고 잊지 않을 '초록 토끼를 만났다'는 문장은 미래의 어느 날 다시 초록의 무언가를 만나게 할 것이다.
초록의 존재는 또박또박 걸어 반드시 내게 올 것이다! 나는 늘 "이상하고/ 신기한 세상"을 기다리는 존재이니까. 나는 소망하는 것을 잊지 않고, 그것이 올 때까지 그것을 기억하는 존재이니까. 소망을 잊지 않는 것, 그것이 나의 힘이고, 나라는 존재이니까. (백창우와 굴렁쇠 아이들이 부른 <초록 토끼를 만났어>는 시 만큼이나 아름다운 마법의 주문이다. 꼭 들어보시길.)
[⟪도서관이야기⟫ 2017년 09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