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생, <할머니와 맥고모자>
할머니와 맥고모자
권정생
유월 첫 장날
모르는 할머니가 맥고모자 쓰고 간다
할머니는 맥고모자 샀나 봐
손에 들고 가기 귀찮아서 머리에 얹었지
누구 걸까?
할아버지 드리려고 샀나?
아니야 할아버진 안 계셔
그러길래 할머니가 장에 가셨지
그럼 누구 거야?
아들 거겠지
할머닌 커다란 아들이 있나 봐
집에서 바쁜 일 하는 모양이지
할머니네 아들은 군대에 갔다 왔을까?
그래그래 군대에도 갔다 왔고
몸도 튼튼하고 일도 잘하고
그러길래 할머니 발걸음이
빨랑빨랑 디뎌지지.
⟪나만 알래⟫ (문학동네 2012)
유월 첫 장날이니까 막 여름이 시작되는 때일 겁니다. 모르는 할머니가 안 어울리게 맥고모자를 쓰고 갑니다. 지금이야 여성용 맥고모자도 흔하지만 예전이나 시골에선 맥고모자는 보통 남자 모자니까 맥고모자를 쓰고 가는 할머니는 호기심을 발동시키지요. 할머니는 왜 맥고모자를 쓰고 가나? 들고 가기 귀찮아서. 누구 모자일까? 할아버지? 아니, 할아버지는 안 계셔. 할아버지가 계셨다면 할머니가 장에 오지 않으셨을 거야. 지금이야 여자도 장에 다니고 하지만 예전엔 남자가 바깥일 다 봤으니까. 그래서 아내를 안사람, 남편을 바깥사람, 이렇게 불렀고. 그럼 누구 모자일까? 아 그래서 발걸음이 ... 이런 화자의 상상을 다 따라가고 나면 길 가는 "모르는" 사람이 그저 '남' 같지가 않습니다. "모르는" 사람이 누군가의 식구라는 생각은 '저 모르는 사람은 누구의 누구의 아내고 엄마고 이웃이고 딸이고 그 딸의 친구의 친구의 친구의 엄마의 언니의...' 누군가로 가지를 뻗으며 나에게로 와 닿습니다. 뭐 연줄이 닿지 않아도 상관은 없지만요.
모르는 아주머니
가네코 미스즈
혼자서 삼나무울타리
내다보고 있었더니,
모르는 아주머니
울타리 밖을 지나갔다.
아주머니, 하고 불렀더니
아는 척 웃었다,
내가 웃었더니
더 많이 웃었다.
모르는 아주머니,
좋은 아주머니구나,
꽃 핀 석류에게
모올래 갔지요.
서승주 역, ⟪억새와 해님⟫ (소화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