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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선미 Nov 23. 2018

모르는 할머니가

권정생, <할머니와 맥고모자>

할머니와 맥고모자

권정생



유월 첫 장날

모르는 할머니가 맥고모자 쓰고 간다

할머니는 맥고모자 샀나 봐

손에 들고 가기 귀찮아서 머리에 얹었지

누구 걸까?

할아버지 드리려고 샀나?

아니야 할아버진 안 계셔

그러길래 할머니가 장에 가셨지

그럼 누구 거야?

아들 거겠지

할머닌 커다란 아들이 있나 봐

집에서 바쁜 일 하는 모양이지

할머니네 아들은 군대에 갔다 왔을까?

그래그래 군대에도 갔다 왔고

몸도 튼튼하고 일도 잘하고

그러길래 할머니 발걸음이

빨랑빨랑 디뎌지지.


⟪나만 알래⟫ (문학동네 2012)



유월 첫 장날이니까 막 여름이 시작되는 때일 겁니다. 모르는 할머니가 안 어울리게 맥고모자를 쓰고 갑니다. 지금이야 여성용 맥고모자도 흔하지만 예전이나 시골에선 맥고모자는 보통 남자 모자니까 맥고모자를 쓰고 가는 할머니는 호기심을 발동시키지요. 할머니는 왜 맥고모자를 쓰고 가나? 들고 가기 귀찮아서. 누구 모자일까? 할아버지? 아니, 할아버지는 안 계셔. 할아버지가 계셨다면 할머니가 장에 오지 않으셨을 거야. 지금이야 여자도 장에 다니고 하지만 예전엔 남자가 바깥일 다 봤으니까. 그래서 아내를 안사람, 남편을 바깥사람, 이렇게 불렀고. 그럼 누구 모자일까? 아 그래서 발걸음이 ... 이런 화자의 상상을 다 따라가고 나면 길 가는 "모르는" 사람이 그저 '남' 같지가 않습니다. "모르는" 사람이 누군가의 식구라는 생각은 '저 모르는 사람은 누구의 누구의 아내고 엄마고 이웃이고 딸이고 그 딸의 친구의 친구의 친구의 엄마의 언니의...' 누군가로 가지를 뻗으며 나에게로 와 닿습니다. 뭐 연줄이 닿지 않아도 상관은 없지만요.



모르는 아주머니

가네코 미스즈


혼자서 삼나무울타리

내다보고 있었더니,

모르는 아주머니

울타리 밖을 지나갔다.


아주머니, 하고 불렀더니

아는 척 웃었다,

내가 웃었더니

더 많이 웃었다.


모르는 아주머니,

좋은 아주머니구나,

꽃 핀 석류에게

모올래 갔지요.


서승주 역, ⟪억새와 해님⟫ (소화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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