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집도 졸음에 겨운 여름나절
하안거 중인 부처님도 눈꺼풀이 무겁다
풍경도 묵언수행 중이다
그 틈에 산 그림자에 몸을 가리고
더위를 식히는 배롱나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나뭇잎 사이 사심 없는 빛살에 몸을 씻고 있다
햇살 스치는 곳마다 살결 더 윤이 난다
지나던 바람 눈 감고 비켜간다
바스락거리던 다람쥐도 상수리나무 뒤에서 일부러 딴청이다
꾸 꾸욱 꾹ㅡ
참다 참다 가쁘게 내몰아 쉬는 산비둘기 숨비소리
삐거덕, 어긋난 대웅전 문틈을 비집고 나오는 낡은 녹음기의 졸음 깬 독경소리에
화들짝 놀란 배롱나무
몸 가릴 겨를도 없이 먼저 붉어지는 얼굴
금세 화르르 우듬지까지 타오른다
훔쳐보다 꽁지까지 빨개진 고추잠자리
개울에 물수제비 뜨는 한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