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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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니 우리 팀 팀장이 떠오른다.
그녀도 진급 전까지는 우빈 팀장님 밑에서 일했었다고 한다. 불과 일 이년 전 일이지만 우리 회사에서는 전설처럼 떠도는 이야기다. 좁아터진 이전 사무실에서 대표님과 이사님, 현재 팀장 급 몇 명, 지금은 회사를 떠나간 이들 몇 명이 근무하던 시절. 지금 팀장을 달고 있는 이들에게도 처음이 있었을 터이다. 업계 용어를 몰라 회의 내용을 따라가지 못하거나 레퍼런스를 어떻게 찾아야 할지 몰라 무료 이미지 사이트에 들어가 하염없이 스크롤만 내리는 그런 시절 말이다.
물론 나에게도 처음이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몇 개월 전, 첫 출근을 하던 날, 그러니까 팀장님과 처음으로 만난 날. 사원증이 없어 사무실 앞에 서서 유리문을 똑똑 두들기니 잠시 후 누군가가 퉁명스러운 얼굴로 문을 열어주었다. 문이 열리자 대여섯 명이 일제히 나를 훑어보았다. 나름 깔끔하게 꾸미고 갔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스캐닝당하니 멋쩍어져 괜히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던 기억이 난다.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기획자로 근무하게 된 최수진입니다.”라는 첫인사에
“네.”
“아, 안녕하세요.”
“오늘 신입 오는 날인가?” 같은 짧고 형식적인 인사가 돌아왔다.
미지근한 반응에 혹시 내가 뭐 실수한 건 아닌가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함께 일하게 되어서 반갑다며 이쪽으로 오라고 손짓했다. 스타일리쉬하고 똑 부러지게 생긴 그녀는 내 자리를 안내해주었고, 처음 보자마자 내가 들어갈 팀의 리더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녀는 나보다 두 살 밖에 많지 않았다. 일 잘하는 사람의 아우라를 뿜어대는 그녀 밑에서 배우면서 꼭 닮고 싶다고 생각했다.
스무 명 남짓한 작은 회사였기 때문에 그 흔한 파티션 따위는 없었다. 대신 대표실과 이사실을 사이에 두고 팀 별로 책상이 삼삼오오 모여 있을 뿐. 초등학생 때 모둠 활동을 하던 때처럼 말이다. 우리 팀은 팀장님과 디자이너, 그리고 나를 포함한 기획자 셋, 총 다섯 명이었다. 팀장님과 디자이너 자리가 등을 맞대고 있고 그 옆으로 나머지 팀원들의 책상이 붙어 있었다. 팀장님은 자기 자리와 하나 떨어진 가장자리 책상을 가리키며 여기가 내가 일할 자리라고 말했다.
가방을 놓기 전, 우리 둘 사이에 앉아 있는 기획자 선배에게 인사를 했다. 그는 자신을 ‘진성‘이라고 소개하며 본인도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잘 부탁한다고 했다. 다른 팀 분들한테도 인사를 하러 가야 하나?’ ‘다들 업무 보는데 뭘 하면 되지?’ ‘사수는 없는 건가?’ 마인드컨트롤을 해도 긴장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법. 숨 막히는 분위기 속에서 컴퓨터를 켜 메일 주소를 받고, 업무에 필요한 사이트를 정리해두고 있는데 내 뒤에 앉은 디자이너와 다른 기획자 한 분은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그렇게 잘 못한 것도 없는데 붕 뜨고 위축된 채 입사 첫날의 절반이 지나갔다.
내 뒷자리에 앉은 선배는 점심시간에 명함을 건네며 옆자리 디자이너 분과 함께 자신을 소개했다.
“아침엔 너무 바빠서 인사도 제대로 못했어요. 저는 기획자구요, 이쪽은 우리 팀 디자이너 분이에요.”
명함에는 ‘이아람’이라고 적혀있었다. 나는 아직 명함이 없어 “아, 저는 최수진이라고 해요. 제가 광고 쪽은 처음이라 모르는 게 많은데, 잘 부탁드립니다.” 자기소개를 하고 꾸벅 고개를 숙였다.
팀장님은 웃으며 우리를 보고 있다가 “인사 다 했으면 수진님 온 기념으로 다 같이 점심 먹으러 갈까요?”하고 외투를 챙겼다. 나도 아직은 어색하지만 조금은 긴장이 풀린 표정으로 “네”라고 대답하고 팀원들 뒤를 따라나섰다.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안, 옹기종기 붙은 팀원들끼리 뭘 먹으러 갈지 고민하던 중, 팀장님이 “오늘 뼈다귀 해장국 땡기는 데 거기로 갈까요?” 제안했고 아람 선배는 곧바로 “어? 전 좋아요! 다른 분들은요?” 대답했다. 다른 다른 팀원들도 고개를 끄떡였기에 나도 끄떡일 수밖에 없었다.
점심시간이라 정신없는 식당 안으로 비집고 들어간 우리는 꾸역꾸역 다섯 명이 앉을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메뉴를 주문했다. 아람 선배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여기 뼈다귀 해장국 다섯이요!” 주문을 마치자 시작되는 질문 공세. 전에는 어디에서 근무했냐, 광고를 택한 이유가 뭐냐, 우리 회사는 어떻게 알고 왔냐…… 흡사 면접에서 받을 만한 질문들, 그리고 실제로 이 회사에 들어올 때 받았던 질문들이 이어졌고, 나는 밥 한 숟갈 뜨고 “전에는 무역 회사에서 일했는데, 대학 때 광고를 전공했었어서 전향했어요.” 대답하고 국물 한 숟갈 뜨고 “공고가 되게 세련됐고 면접 보러 왔을 때 분위기도 좋아서 오게 됐어요.” 다시 대답했다.
제대로 먹지 못했지만 ‘아 배부르다.’란 팀장님의 한마디에 다들 숟가락을 내려놓았기에 나도 따라서 계산할 채비를 했다.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 팀장님과 아람 선배는 업무 관련해서 이야기를 나누며 앞서가고 있었다. 다른 팀원들은 각자 핸드폰을 보고 있어서 난 말을 걸까 말까 하다 더부룩한 속이나 진정시키기로 하고 길을 걸었다.
메뉴와 식사가 끝나는 타이밍을 정하는 주도권이 팀장에게 있다는 것은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동태탕은 비린내가 나서 싫다, 햄버거는 위에 부담이 가서 싫다, 저녁 메뉴는 가벼운 걸 먹어야 한다는 등 팀장은 까다로운 식성을 자랑하며 매 번 다른 팀원들이 정해놓은 메뉴에 퇴짜를 놓곤 했다. 함께 식사를 할 때는 몇 입 먹지도 않은 채 숟가락을 내려놓기 부지기수였고, 하는 수 없이 나머지 팀원들도 식사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와 일을 했다. 아무도 반기를 드는 이가 없었기 때문에 나도 조직에 물드는 과정의 하나로 생각하고, 그녀의 습성에 물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회사 생활은 처음이 아니었지만 광고 업계는 처음이었다. 첫 주가 지나갔지만 여전히 모르는 업무, 처음 듣는 용어 투성이었다.
“게재 시안 컨펌받았어요?”
“렙사 연락됐어요?”
“이따가 킥오프 회의 들어갈게요.”
“이거 클린본 전달 주세요.”
내가 할 일은 월간 발행안과 기존 운영 중인 SNS 사이트를 둘러보는 것뿐이었다. 매뉴얼이나 사수 따위 없다는 걸 깨달은 난 팀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했다.
팀장님에게 매번 초보 수준의 질문을 하는 것도 눈치가 보여 팀 단톡방에 공유되는 문서를 분석해 나만의 매뉴얼을 만들었다. 회사가 좋아할 만할 PPT 형식이나 디자인 결, 팀장님이 요구하는 보고서 스타일을 손에 익혔다. 문서를 넘기고 ‘깔끔하게 잘 정리했네?’ ‘바로 제작 들어가도 되겠는데?’란 피드백이 돌아오면 한 건 해낸듯한 짜릿함이 몸을 관통했다. 어서 빨리 풋내 나는 시절을 벗어나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에 그럴듯한 SNS 계정을 찾아 저장해두거나 맘에 드는 글귀를 메모장에 적어두는 등 제법 광고쟁이다운 흉내도 내곤 했었다. 팀장님의 첫인상처럼 스마트한 모습으로 다음 신입을 맞이할 수 있도록 야근도 마다하지 않으며 나의 처음을 불태워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