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롤모델> 1

ep01

by 가람

1


동기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알고 있었다. 그제 오후 내선 전화를 받고 종종걸음으로 대표님 방으로 들어가던 뒷모습과 퇴근길에 짐을 하나씩 챙겨가는 걸 보고 짐작하고 있었다.


금요일 점심시간이 되자 그녀에게서 날아온 카톡 하나.


‘오늘 점심 뭐 드세욤?’


맞춤법까지 파괴해가면서 담백하게 물어보는 그 태도가 싫었지만, ‘아직 안 정했어여’라고 담백하게 받아치며 대답이 돌아오기도 전에 ‘같이 먹을까요??’라고 연달아 카톡을 보낸다. 1이 사라지자마자 그녀는 롱패딩을 걸치면서 내 자리로 걸어온다. 잠깐만 기다리라고 싱긋 웃어 보인 뒤 재빨리 컴퓨터를 절전 모드로 돌리고 지갑과 마스크, 핸드폰을 챙겨 코트에 팔을 욱여넣는다.


3월이라고 해도 아직 날씨가 차다. 업무를 보다 열이 오른 몸을 이끌고 나오면 이 찬 공기가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다. 얇은 코트 차림을 한 나를 보며 동기는 춥지도 않냐며 타박을 했고, 시답잖은 얘기를 하다 보니 회사에서 한 블록 떨어진 일본식 가정집에 다다랐다. 점심시간보다 조금 일찍 나왔음에도 가게 안은 주변 회사원들로 북적거렸다. 마침 창가에 이인용 테이블이 비어 있어 우린 의자 뒤에 외투를 걸치고 앉았다. 메뉴는 언제나처럼 닭튀김 카레 순한 맛. 수저를 놓고 물을 따라 목을 축이자 동기가 입을 열었다.


“수진님, 실은 저 곧 퇴사해요.”


드디어 본론이 나왔구나. 나는 방금 전 카톡에 답장을 보내던 담백한 말투로, 그러니까 대충 알고 있었는데 빨리 헤어지게 돼서 아쉽고 직접 얘기해줘서 고맙다는 감정을 담아 대답했다.

“그 말 할 줄 알았어. 너무 축하해요.”






두 번째 취직이었지만 다른 업종, 다른 분위기에 얼어붙어 있던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준 건 동기였다. 그때도 그녀가 먼저 점심 식사 제안을 했고, 우리는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를 유지하며 유대감을 쌓아갔다. 동기는 나와 동갑이었는데, 여기가 첫 회사라고 말했다. 처음 같이 점심을 먹던 날 스타트업에서는 같은 달 입사했으면 다 동기라고 웃으며 먼저 말을 건네주던 그녀가 떠나간다니, 놀랍지는 않다.


다른 테이블에서는 당장 내일이 발행인데 클라이언트가 피드백을 안 줘서 죽겠다, 일주일 내내 야근을 했더니 몸이 부서지겠다, 상사 혹은 후임 때문에 못 살겠다 등 앓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그 일대 포진한 스타트업 사원이 겪을 만한 일들을 떠드는 소리가 시끄럽게 섞여 시장바닥에 와 있는 듯했다. 이런 분위기에 정적을 유지하고 있자니 마치 내가 퇴사 소식에 삐쳐 있는 것처럼 보일 테고, 다시 목을 축인 뒤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래서 그때 대표님한테 면담 요청한 거구나? 대표님은 뭐래요?”


“뭐, 당장 비딩 들어가는 것도 없고, 신입 들어온 지 한 달 넘어가니까 인수인계하고 나가면 될 것 같다, 우리 팀 팀장님이랑 일정 의논해보겠다. 이런 식으로 말씀하셨죠.”


“그렇구나. 떠나는 날 정해지면 알려줘요. 인사라도 제대로 하게.”


“아유 뭘 그렇게 벌써 떠날 사람처럼 대해요~ 그래도 나가려면 아직 꽤 남았어요.”



‘우빈 팀장님 때문에 그만두는 거죠?’


이 말이 혀끝에서 맴돌았지만 그녀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은 사정이 있을 테니 꼬치꼬치 캐묻는 짓은 하지 않기로 한다. 대신 나는 오늘 오전에 있었던 일로 화제를 돌리며 여느 테이블처럼 그 일대 포진한 스타트업 사원이 할 만할 이야기를 떠들어댔다. 머지않아 나온 음식을 보고 난 ‘최후의 만찬이니 맛있게 들거라’라며 농담조로 이야기했고, 식사 중 우린 퇴사에 관한 말은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식사를 마친 뒤 입안에는 카레향이 진하게 남아 있었다. 밖으로 나와 코트를 입고 마스크를 쓰니 카레 냄새와 속 쓰림으로 인한 숨 냄새가 섞여 역겨웠다. 입가심이나 하자는 나의 권유에 끄덕인 그녀와 커피 한 잔씩 테이크 아웃해서 사무실로 향했다. 마스크를 슬쩍 내리고 한 모금 빨아들이자 마음속에 있던 질투, 동조, 두려움의 감정까지 따라 올라와 입 안은 더욱 끈적해졌다.






동기가 그만두는 건 우빈 팀장님과의 불화 때문이다. 아니, 불화라고 하기에는 그녀 혼자 불편한 점이 많았겠지.


우리는 같은 달 서로 다른 주에 입사했다. ‘수평 호칭제와 자유로운 업무 분위기를 지향하는 오픈된 기업’인 척하는 채용 공고를 보고 비슷한 시기에 속아 넘어간 것이다. 창립 3년밖에 지나지 않은 신생 광고 대행사였는데, 서로 팀은 달라도 각자 맡은 업무가 비슷해 의지를 하곤 했다. 연차 상관없이 ‘ㅇㅇ님’으로 통일된 호칭을 사용했지만, 몇몇 이들의 언행이 수평 속의 수직을 낳았다. 동기네 팀 팀장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입사한 지 일주일도 안 됐을 때인가, 비딩 준비 때문에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이었던 나도 저녁 열 두 시까지 남아 기획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몇 미터 뒤에 위치한 우빈 팀장님의 자리에서 물건을 던지듯이 놓는 소리와 사소한 실수로 시비를 거는 소리가 이어졌지만 뒤돌아보지 않았다. 눈이 맞으면 나까지 찍혀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새벽 한 시가 다 되어가자 한숨을 푹 쉬더니


“오늘은 그만 들어가고 내일 현수가 문서 취합하면 회의 한 번 하죠.”


라고 말하곤 혼자 나가버렸다. 마음에 들진 않지만 붙잡고 있어 봤자 더 나올 것 같지 않으니 일단 퇴근하라는 말투였다. 나머지 팀원들도 한숨을 쉬며 사무실을 나섰다. 그때 동기의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어떤 표정이었을지 짐작이 간다.






스타트업의 문제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이른바 ‘고인물’의 존재다. 오랜 기간 한 곳에 몸 담고 있어 고여 버린 존재. 설립 멤버로서 일궈온 포트폴리오와 실력, 그리고 거기에 자존심까지 더해지면 텃세가 시작된다. 입사 햇수가 3년 이상과 1년 미만으로 극명히 나뉘는 이분화 현상이 괜히 일어나는 게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말도 안 되는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폰트 굵기 하나, 영상 색감 하나 정성스레 보답하기 위해 고인물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비딩이나 월간 기획이 끝나면 그들은 한결 누그러진 표정으로 ‘수고했어요.’라고 말하는 게 전부지만, 인간은 반복과 적응의 동물이라 하지 않는가. 고인물의 세계에 물들면 이 한마디에 감격을 받고 그동안 당한 수모는 ‘한 단계 성장하기 위한 수련의 일부’로 치부하며 잊을 수 있게 된다. 동기네 팀 팀장도 설립 멤버 중 한 명이었다. 그의 풍부한 인사이트와 일사불란한 스케줄 조정 능력은 인정하는 바이나 사람을 아우를 줄 아는 능력이 없다는 건 입사 며칠 만에 누구나 깨닫는 사실이었다.


동기는 몇 번이고 우리 팀과 함께 식사하며 우빈 팀장님 문제를 의논했다. 그분의 언행은 회사 내에서 누구나 알고 있는 문제였기에 이야기를 들은 사람은 모두 위로의 말을 건넸다. 우리 팀 팀장도


“나도 일할 때는 기분파인데 우빈 팀장님만큼은 아니다.”


라고 말하며 동기에게 대안을 제시했다. 힘들면 대표님과 의논해서 팀을 바꾸는 게 어떻겠냐고. 우리 회사가 그 정도 유도리는 있는 곳이라고. 하지만 동기는 이 제안 대신 퇴사를 선택했다.






커피를 들고 회사로 향하며 십 분 남짓한 자유를 즐겼다. 누군가의 짜증을 듣지 않아도 될 자유, 누군가의 욕받이가 되지 않아도 될 자유를 즐기며 홀가분한 동기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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