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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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정리 왜 이렇게 했어요?”
“……”
“어?”
“그 먼슬리 인터렉션 자료 기반으로 해서…….”
“자료요? 어떤 거? 나한테 보내줘 봐 봐.”
마우스 클릭음이 몇 번 울린다. 살벌한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게 경쾌하다.
“지금 개인톡으로 보냈습니다.”
팀장님은 그 파일을 열어 확인해보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말한다.
“내가 저번에 월마다 따로 저장해 놓으라고 했잖아. 지금 이거 11월 파일인데 12월 수치 입력돼있는 거 아니에요? 두 번 세 번 말하기 전에 똑바로 하고 나한테 보고하기 전에 체크 좀 해요. 내가 실수 잡아내는 기계도 아니고.”
“……네.”
자유로운 분위기의 회사라고 소개하는 모집 공고는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 체계가 없어 업무 프로세스가 이리저리 날뛰는 건 맞았지만, 결코 수평적인 분위기라곤 할 수 없었다. 입사 후 몇 개월간 수습으로 눈칫밥 먹어가며 내린 결론이다.
혼나는 역할은 주로 나와 팀장님 사이에 앉은 진성 선배였다. 그 선배는 유달리 실수가 잦았는데, 내가 봤을 때 웃으면서 넘어갈 수 있는 사소한 실수도, 경악할 만할 실수도 있었다. 실수가 크냐 작냐를 떠나 팀장님은 사무실 전체에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려 퍼질 정도로 혼을 내곤 했다. 아무도 업무를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누군가가 혼나는 소리를 듣고 그걸 반면교사 삼아 업무 노트에 주의할 점을 적어나갔다.
‘인터렉션 수치 달 별로 정리!’
나 같았으면 후임 앞에서 그런 말을 들으면 수치스러워 고개를 들지 못할 것 같았지만 진성 선배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면서 ‘네.’ ‘죄송합니다.’만 반복할 뿐이었다. 선배에게 괜찮으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되려 자존심을 건드리는 게 아닌가 싶어 꾹 참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날카로운 그 화살촉이 본인을 향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심하며, 한편으로는 언제 날아들지 모르는 화살촉을 피하기 위해 발버둥을 치며 팀장의 히스테리에 모르쇠로 일관했다.
나에게도 가끔 지적이 날아오곤 했다. 진성 선배에 비하면 그 화살촉은 뭉뚝해져서 그리 아프진 않았다. 레퍼런스 톤 앤 매너가 들쭉날쭉하다, 스토리보드가 너무 뻔하다, 소품을 왜 이것밖에 적지 않았냐, 카피가 입에 붙질 않는다……. 뭐가 그리 잘못된진 모르겠지만 나도 ‘네.’와 ‘죄송합니다.’를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같은 실수에도 진성 선배와 나에게만 엄격한 태도를 보고 ‘우리가 부족해서’라고 여기며 정신을 더 바짝 차리는 것 이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팀장님은 아직까지 나에게 단독 오더를 내리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에 입사한 동기들은 미팅도 나가고 광고주 커뮤니케이션도 도맡아 했지만 나는 아직 그럴 레벨이 아니었나 보다. 한심했다. ‘업무 능력이나 센스가 그렇게 부족한가?’라는 생각에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지만 신입이라면 누구나 거쳐가는 통과의례겠거니 하고 인내에 인내를 거듭했다. 아침에 출근해 일이 없어 잡일이라도 시키실 거 없으시냐고 팀장님 자리로 가 물어보면
“어…… 잠깐만요.” 수첩을 넘기며 고민하더니
“일단은 급한 건 없으니까 쫌 쉬고 있어요.” 이런 식이었다.
자리로 돌아온 나는 팀 단톡방에 업로드되는 파일을 정독해 업무 프로세스를 파악하고 눈치껏 다음 주 촬영할 레퍼런스를 찾아 정리하거나 택배가 오면 각자 자리에 갖다 놓는 일을 했다. 다행히 포트폴리오로 제출한 글을 높게 평가하신 대표님 덕분에 오후 시간은 카피나 멘션을 작성하면서 보낼 수 있었다. 같은 팀원들에게 나도 우리가 운영하는 계정에 들어가서 admin 업무를 해보고 싶다, 발행 과정을 익혀보고 싶다 얘기를 해도 ‘수진님 일 없을 때를 즐기세요.’ ‘수진님 욕심쟁이네’하고 웃어넘겼다.
팀장님과 친하게 지내는 아람 선배와 디자이너 분의 모습을 내 자리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업무 이야기를 할 때도, 그저 농담 따먹기를 할 때도 있었는데 거기 끼고 싶어도 내 옆에서 묵묵히 앉아 있는 진성 선배 때문에 함부로 다가갈 수가 없었다. 그리고 하는 일도 없는 내가 뭐라고 선배들이 쉬는데 가서 참견을 하는가. 언젠가 내려올 오더에 완벽하게 대응하기 위해 공부하고, 분석하고, 기다렸다.
아무런 지시 없는 나날이 이어지면 가끔 퇴근길에 자괴감이 들어 동창들에게 이런 고민을 털어놨지만
“야 그럼 월급 루팡하고 꿀 빠는 거 아니야?”
“너무 열심히 하려고 하지 마라. 스타트업에 뼈 묻을 것도 아니고.”
“그 시간에 자격증 공부하면 안 되나?”
도움 안 되는 답변만 돌아왔다. 실제로 하는 일은 별로 없어도 쥐꼬리만한 월급만큼은 따박따박 들어왔기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다닐만했으나 나는 하루라도 빨리 제대로 된 일이 하고 싶었다. 일 때문에 스트레스도 받아보고, 팀장님이나 다른 선배 기획자들과 골머리를 썩혀가며 문서를 작성하며 동지애도 키워가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내 롤모델에 가까워지고 싶었다.
비슷한 시기, 동기는 우빈 팀장님의 업무 스타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곤 했다. 점심 식사는 팀 별로 하는 게 암묵적인 규칙이었으나 동기는 가끔 우리 팀과 함께 밥을 먹으며 고충을 털어놓았다. 우리 팀 팀장님이 동기에게 팀 변경을 제안한 것도 이때쯤이었을 거다.
“우빈 팀장님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예요. 실수를 하더라도 더 좋게 타이를 수 있는데 너무 신경질적으로만 대하시고, 저한테 하는 말이 아닌데도 손 떨려서 죽겠어요.”
다 죽어가는 얼굴로 우리 팀에게 밥을 같이 먹자고 제안한 동기가 입을 열고 털어놓은 고민이다. 우리는 음식이 나올 동안 진지하게 들어주었고, 팀장님도 얘기를 듣더니 자기 일처럼 고민에 빠졌다. 잠시 생각을 하더니 입을 뗐다.
“나도 우빈님 밑에서 일한 적 있는데, 그 사람 그거 천성이라 바뀌진 않을 거예요. 옆에 다른 선배들 있는데도 한숨 푹푹 쉬고 키보드에 화풀이하고 그랬다니까? 난 그냥 참다 참다 ‘뭔 일 있어요? 왤케 화가 가득해요?’ 물어본 적 있다니까요? 절대로 혜림님 때문에 그런 거 아니니까 마음에 담아두지 말고, 못 버티겠으면 우리 팀으로 와요. 내가 대표님한테 얘기해볼게요”
때마침 음식이 나왔고 동기는 팀장님의 진심 어린 조언 덕분에 한결 편해진 얼굴로 수저를 들었다. 우리 팀장님이 업무 중 예민해지는 일이 있더라도 속은 따뜻하다는 걸 느꼈다. 남의 팀 일인데도 직접 나서기까지 하고.
밥을 다 먹고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에, 한 번도 나와는 나란히 걷지 않던 팀장님이 동기 옆으로 가서 위로를 해주는 모습을 보았다. 나와 진성 선배를 뺀 나머지 팀원 둘도 짝을 지어 앞서 가는데, 부러우면서 서운하고 언제 저들만의 리그에 낄 수 있을지 막연한 감정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