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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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님은 멀고도 먼 존재였다.
자리배치 탓인지, 입사 시기 탓인지는 몰라도 팀 내부에서 이분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들만의 리그에 끼기 어렵다는 사실을. 다른 팀 사람들에게는 한 없이 상냥하게 대하면서, 나와 진성 선배에게만 엄하게 대하는 이유를 도저히 헤아릴 수 없었다. 이런 분위기는 내가 알고 주위가 알고 있었지만 본인이 나와 진성 선배가 아니라는 사실에 감사해하는 듯, 아무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동기에게 상담하면 ‘수진님네 팀장님이 쫌 워딩이 세긴 하죠. 그래도 우빈 팀장님 보다는 나아요. 어제는……” 이런 식으로 별 일 아니라는 듯 넘어가곤 했다. 그럼 나는 ‘내 능력 부족 탓인가 보다’하고 원인을 나로 귀속시킬 수밖에 없었다.
나와 진성 선배가 아침에 출근해 일을 하고 있을 때 나머지 팀원들과 커피를 사러 자리를 비우거나 한참 있다 돌아와 우리가 만든 결과물을 보고 ‘디벨롭’ ‘디벨롭’ ‘디벨롭’을 외치는 모습에 가끔 숨이 턱턱 막히곤 했다. 팀장님이 내 뒤를 지나가면 컨트롤과 시프트 위치를 헷갈려 바보 같은 짓을 하기도 했다. 혹시나 무슨 소리를 들을까 개인 카톡은 엄두도 못 내었다.
“수진님 쫌 쉬면서 해요~ 우리 커피 사러 갈 건데 같이 가실래요?”
“아, 아뇨 저는 이거 구상 좀 하느라고. 다녀오세요!”
내가 뭘 한 게 있다고 업무 시간에 바람을 쐬러 나가는가? 눈치가 보여 거절하고 팀장님이 만족할 만한 결과물을 끌어내기 위해 촬영 레퍼런스 사진 몇 장 배열하는 데도 엄청난 신경을 쏟아부어야 했다.
힘이 되어주는 것은 대표님과 다른 팀 선배들뿐이었다. 팀 내부에서 나 홀로 무인도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 때면 동기가 그랬던 것처럼, 다른 팀 선배들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계속되는 퇴짜로 자존감이 0으로 떨어질 때면 지나가면서 선배들이 해준 칭찬, 그리고 전체 회의 중 내 기획안을 채택해 진행하라던 대표님의 말씀을 가슴속에서 반복 재생하며 힘을 내었다.
전체 회식 후 2차에 갔을 때였던가? 아마 그때가 내 노력을 조금이나마 인정받은 처음이자 마지막 자리였다. 좁아터진 전집 구석에 대표님과 다른 팀 선배들 몇 명, 그리고 나와 진성 선배가 다닥다닥 붙어 앉아 술잔을 기울이던 중이었다.
“내가 수진이를 왜 뽑은 지 알아?”
대표님이 갑자기 나를 가리키며 말씀을 시작하셨다.
“잘 모르겠습니다. 광고 전공이라서요?”
“아니, 그런 것도 있는데 무엇보다 글을 참 잘 써. 포트폴리오로 올린 것만 봐도 그렇고, 비딩할 때 카피 작성하는 것도 그렇고. 그래서 내가 수진이한테 카피라이터도 해보면 어떻겠냐고 권한 거야.”
입사 이래 처음 들어보는 직접적인 칭찬에 벙 쪄있는 채로 술잔만 만지작거렸다. 그래도 이런 말씀을 해주시는 분이 있으니 그간 있었던 일들은 내 기분 탓으로 돌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해도 되겠다는 일말의 희망도 보였다. 한편으로는 무엇이 더 부족해서 팀장님에게 그렇게 매일 한 소리를 듣고 있는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술에 거나하게 취한 진성 선배는 얘기를 듣고 있다가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수진님 들어오고 나서 아이디어도 다채로워지고, 일도 빨라져서 다행이에요. 수진님이 찾아온 레퍼런스 보면 저런 건 어디서 찾나 싶을 정도로 놀랄 때도 많고……”
나는 멋쩍어져서 괜히 공을 진성 선배에게 돌렸다.
“아니, 그건 진성님이 옆자리에서 도와주시고 그래서 그런 거죠. 그리고 다른 분들은 다른 일도 많아서 아이디어 짜거나 레퍼런스 찾을 짬이 없잖아요. 할 거 없는 제가 해야죠.”
“그래. 열심히 해야지. 그래야 빨리 커서 후배들 들어오면 가르쳐주고.”라는 대표님의 말씀에 눈물도 나고 마음도 따스워지는 그런 자리였다. 모자란 점도 있지만 남들이 인정해줄 만큼 열심히 하고 있으니, 앞으로 더 정신 차려서 팀장님에게도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에 꺼져가던 자존감이 다시 타올랐다.
스타트업에서 입지를 다지기 위해서는 일단 업무량이 많아야 한다. 하지만 대표님과의 회식 이후, 수습 기간이 끝나가도 별다른 지시는 내려오지 않았고 대신 스튜디오 서치, 소품실 정리, 택배 받기, 프리랜서 작가님들 선물 주문 등 기타 잡일로 여겨지는 것들이 내 일이 되어가고 있었다.
몇 번의 기획 회의가 내 입지를 다지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다. ‘노잼’에서 ‘유잼’을 창조해 인정받고야 말겠다는 칼을 가는 의지 하나로 쉬지 않고 경쟁사 사이트를 뒤지고 세상의 모든 언어를 끌어다가 기획서를 작성했다.
회의 중 내 아이디어가 나올 때마다 감탄하는 팀원들과, 그걸 채택해 광고주에게 보내는 팀장님과, ‘잘했네. 수고했어요.’라는 그녀의 한마디 덕분에 그나마 버틸 수 있었다. 팀장님도 슬슬 나에게 대본 작성이나 기획안 최종 정리 등 일다운 일을 주시 시작했고 나도 두 어깨 피고 일하는 기분을 만끽했다.
서서히 인정을 받는가 싶었지만, 팀장님과의 거리는 쉽사리 좁혀지지 않았다. 오히려 수습 기간이 끝나고 업무량이 많아지면서 진성 선배를 향하던 지적이 나를 향해 날아오기 시작했다.
‘띠링’
‘우리홀딩스_최종시안_200204.pptx’
디자이너 분이 시안을 정리해 단체 카톡방에 올리면 팀장님을 포함한 우리는 디벨롭할 곳이 있나 파일을 함께 살펴본다. 오타가 났거나 색감 조정이 필요하면 팀장님은 친근한 말투로 지적하곤 했다.
“여기 채도 쫌 쨍하게 하면 좋을 것 같다.”
“아람! 여기 또 안 고쳤지?”
하지만 그 실수를 나나 진성 선배가 했을 때는 달랐다. 수습 기간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수진님 잠깐만요.”
“네.”
자리에서 일어나 팀장님 책상으로 가니 모니터에는 내가 방금 만들어 보낸 제작 시안이 띄워져 있었다. 오타 확인도 몇 번씩이나 했고, 맞춤법 검사기도 돌렸다. 레퍼런스가 될만한 이미지와 제작 가이드도 함께 첨부했는데 뭐 더 추가할 게 있으신가 보다 하고 모니터를 들여다봤다.
“이게 광고주한테 보낼 만한 퀄리티인가요?”
갑작스럽게 날아든 날카로운 워딩에 말문이 턱 막히고 낯짝이 뜨거워졌다. 침착하게 “차주 수요일 발행 예정인 콘텐츠 시안 회의 방향성에 맞게 작성한 건데, 어디……”라고 운을 떼니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마우스 커서를 내가 만든 시안 위에서 빙글빙글 돌리며 생각에 잠기는 그녀.
“이거 레이아웃도 별로고 글씨체도 별로예요. 글씨는 또 왜 이렇게 크게 박았대?”
“아, 그럼 폰트랑 사이즈 조절해서 다시 보내드리겠습니다! 레퍼런스도 더 찾아볼까요?”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니라…….”
사무실 사람들의 두 눈은 모니터를 향해 있었지만 두 귀는 우리를 향하고 있었다. 얼굴색이 그 날 입고 있던 빨간 스웨터처럼 RGB (255,0,0)에 수렴할 무렵, 팀장님은 좀 더 디벨롭해서 오후 중에 보내달라고 하고 그만 자리로 돌아가라고 손짓했다. 화장실로 가 찬물 한 번 끼얹고 싶었지만 눈치가 보여 그럴 수가 없었다. 엉덩이 밑에 깔린 담요를 빼낼 새도 없이 자리에 앉은 나에게 한 마디 더 날아왔다.
“던지기 전에 보낼만한 퀄리틴가 생각하고 보내요. 뭐 하자는 거야?”
속으로 ‘1절만 하시면 안 될까요?’라고 외치고 싶은 욱하는 감정이 치솟아 올랐지만 참았다. 팀장님의 입장에서 보면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물이었을 테니까. 아람 선배에게 SOS를 청해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고 나서야 ver. 2를 완성할 수 있었다. 그 파일을 다시 팀 톡방에 올릴 때 내 손이 얼마나 떨렸는지 아무도 몰랐을 거다. 그날 야근 중, 회의실을 정리하던 나에게 넌지시 다가와 “촉박한 콘텐츠도 아니고, 퀄리티 있게 만들어서 보내려고 욕심 내서 그런 거예요.”라고 말하는 팀장님의 모습에 고맙기도 했지만, 모두에게 들리게 면박을 주던 모습을 잊을 수 없어 “네, 괜찮습니다.”라고 대답하고 마저 정리를 끝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