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롤모델> 8

ep08

by 가람

8


볶음밥을 먹고 나오자 그동안 쌓아온 화가 분출된 탓인지, 극심한 근육통이 찾아왔다. 가만히 있어도 온 몸에서 젖산이 분비되는 느낌이었다. 혼난 다음에 잠시 자리를 비우겠다고 양해를 구하는 것도 웃겼지만, 수액을 맞지 않으면 정말로 쓰러질 것만 같은 느낌이었기에 병원으로 향하는 길에 ‘이래이래 해서 병원에 다녀와야 할 것 같다. 점심시간 지나고 한 시간 정도 자리를 비울 수 있을 것 같다.’는 카톡을 보냈는데 바로 ‘네. 다녀오세요.’라고 답장이 왔다.


코로나 때문에 병원 한 번 들어가는 것도 힘들었다. 입구에서 열을 재고, 증상을 얘기하고, 최근 2주간 해외 방문 이력이 있는지, 코로나 감염자와 접촉한 적 있는지를 물어보는 문진표를 작성하고 나서야 들어갈 수 있었다.


번호표를 뽑고 대기를 하자 가정의학과실로 올라가라는 안내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또 대기를 했다.


십 분 정도 기다렸을까, 간호사가 내 이름을 불러 방으로 안내했다. 의사는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내 상태를 진단했다.


“작성해주신 거 보니까 근육통이 심하다고 하셨는데 또 불편하신 데는 없으신가요?”


“속쓰림도 심해서 식사를 제대로 못해요.”


“잠은 잘 주무세요?”


“네. 일 끝나면 거의 기절하다시피.”


이후에도 간단한 문진이 이어졌고, 의사는 위로하듯 말했다.


“스트레스 때문인 거 같으니까 푹 쉬는 것 밖에는 치료법이 없을 것 같네요. 위 보호해주는 약이랑 소염제 처방해드릴게요. 오늘 영양 주사라도 맞고 가실래요?”


스트레스라는 의사의 말에 또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참고서 “네. 그렇게 할게요.”라고 말하고 방을 나섰다.






한 시간 못 되게 링거를 맞으며 단잠을 자고 사무실로 복귀했다. 조용히 들어가 다시 업무를 보기 시작하는데, 동기와 다른 팀 사람들이 카톡으로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병원은 왜 갔다 왔어요?’ ‘팔에 그거 링거 자국이에요?’ 난 별거 아니라는 듯이 ‘요즘 야근을 하도 많이 해서 병 나기 전에 맞고 온 거다, 걱정 말라’고 답장했다.


저녁까지 영상 피드백이 오질 않아 기다리다 보니 일곱 시가 넘었다. 그제야 광고주 컨펌 메일을 받고 부랴부랴 발행안을 작성해놓고서야 우리 팀은 퇴근할 수 있었다. 두 시간 가까이 콩나물처럼 빽빽하게 들어선 사람들에게 치이며 집으로 오니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였다. 샤워를 하고 나오자 엄마가 간단한 저녁밥을 차려놓았다.


“안 먹어. 속 안 좋아서 그냥 잘 거야.”


“그래도 이거 먹고 약 먹어. 그래야 건강하게 회사 잘 다니지.”


식탁에 앉은 나는 혼잣말처럼 물었다.


“나 여기 그만둘까?”


엄마는 근심 가득한 얼굴로 “다닌 지 얼마 안 됐잖아. 그리고 요즘 집안 사정도 안 좋은 거 너도 잘 알고. 이제 너도 네 생각만 하지 말고 책임지는 법도 배워야지.” 말하고 “정 힘들면 다음 회사 정해지고, 그 뭐냐, 실업 급여받을 수 있게 몇 개월만 더 버티고 나가. 응?”이렇게 덧붙였다.


엄마가 차려 놓은 카레를 두 숟가락 먹었을 참이었나, 신물이 올라와 변기로 달려갔고, 속에 있는 걸 다 뱉어낸 뒤 곧바로 방으로 들어와 잠을 청했다.






내가 이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매번 나를 찾아와 팀장 때문에 못 살겠다는 동기를 보면 부러웠다. 우빈 팀장님은 그야말로 회사 전체가 알아주는 또라이니까. 그리고 괜한 사내 정치질은 일으키지 않는 개인주의자니까. 동기의 고민은 만인이 공감하는 고민이 되었지만 나의 경우 어떠한가?


동기는 내게 “말이 심할 땐 있어도 수진님네 팀장님은 고민도 잘 들어주시고, 팀 분위기도 되게 화기애애하던데요?”라며 팀장님을 좋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아람 선배도 팀장님을 잘 도와야겠다는 생각뿐이지, 나나 진성 선배가 겪는 일은 모르는 척하는 것 같았다.


진성 선배는 인수인계서 마지막에 ‘수진님이라면 잘 해내실 수 있을 거예요.’라고 적고 다른 팀으로 가 우리 팀과는 말도 섞지 않는다. 이게 무슨 뜻일까? 진성 선배 업무라면 나도 어깨너머로 보고 배워서 알고 있다. 그리 어렵지 않은 단순 업무뿐이다. 진성 선배도 내가 업무가 아닌 다른 문제 때문에 힘들어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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