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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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님이 회식을 잡은 건 우리 팀에 신입이 들어와서였다. 팀장님은 내가 처음 왔을 때처럼 한우 고깃집으로 우리를 데려갔다. 고기가 불판 위에서 익어가는 사이 그녀는 “실은 소민님 환영하는 의미도 있는데, 진성님이 우빈 팀장님네 팀으로 이동하게 돼서 오늘 팀 회식 잡았어요.”라고 이야기를 시작하며 ‘오늘 점심 뭐 먹을까’ 정도의 가벼운 뉘앙스로 인사이동 소식을 전했다. 놀란 나는 다른 팀원들을 쳐다봤지만 모두 알고 있었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팀장님은 등받이에 푹 기댄 채 집게로 나를 가리키며 덧붙였다.
“진성님 인수인계는 수진님이 확실하게 받아놓고.”
분명 진성 선배 업무에는 같은 실수를 해도 그녀의 모진 비난을 들어야 하는 것과, 팀장님이 쓰고 남은 종이를 파쇄기에 넣고 돌린다든지, 경품 배송을 위해 택배 박스를 만든다든지 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 소식을 들은 나는 한우가 목구멍으로 넘어갈 리 없었다. 아무리 체계가 없다 하더라도 노티 하나 없이 한우를 구우며 이런 사실을 알려오는 팀장님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우빈 팀장님이라면 회사가 알아주는 기분파인데, 웬일인지 진성 선배의 표정은 홀가분해 보였다.
체계가 없는 곳답게 인사 이동은 일주일 만에 끝났고, 진성 선배의 인수인계도 달랑 워드 한 페이지로 휘뚜루마뚜루 이뤄졌다. 나를 향한 지적이 심해진 것도 그때쯤 일 것이다. 롤모델로 삼고자 했던 사람에게서 계속해서 지적당하고, 절대로 닮고 싶지 않았던 이의 전처를 밟는 내 모습에, 더 이상은 웃으면서 회사를 다닐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신입이 들어오고 나서 처음으로 우리 팀 커피 머신 청소 주간이 돌아왔다. 이때도 매일 이어지는 야근에 다들 제정신이 아니었을 터였다. 저녁 열 한시까지 야근을 하고 정시 출근을 해 머리가 돌아가질 않았다. 찌뿌둥한 뇌를 깨우기 위해 컵을 들고 커피 머신으로 향했더니 다른 팀 선배가 “이번 주 커피 머신 청소 수진님네 팀 아니에요?”라고 쏘아붙였다.
‘어제는 신입 순서였는데?’ 의아해하며 살펴보니 찌꺼기며 커피 튄 흔적이며 하나도 청소가 되어있지 않았다.
“어제 소민님 순서였는데 정신없어서 까먹고 갔나 봐요. 제가 빨리 할게요.”
평소보다 일찍 도착해 아직 아무도 없었기에 내가 할 수밖에 없었다. 얼마 후 출근한 팀장님과 신입도 이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팀장님은 “어제 바빠서 그랬나 보다.”라고 신입의 실수를 웃어넘겼다. 신입이 들어오기 얼마 전 팀 단톡방에서 나에게 면박을 주던 모습은 어디로 간 걸까?
여초 회사 경력으로 다져진 내 촉에 의하면 그때 내 기분이 더러웠던 건 결코 컨디션 난조 때문은 아니다. 팀장은 내가 신입이어서가 아니라 그냥 내가 나이기 때문에 그렇게 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팀장이 동기에게 얘기했었지. 사람 천성은 바뀌지 않는다고. 내가 어떤 행동을 취하던지 간에 우리 둘 사이의 톱니바퀴는 결코 부드럽게 돌아가지 못했다.
이어지는, 그러나 피할 수 없는 화살에 마음이 푹푹 찔리다 보면 무뎌질 줄 알았으나 마음만 곪아갈 뿐이었다. 같은 사무실에 앉아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긴장이 되어 어깨에 벽돌 열 개씩은 올려놓은 느낌이 들었다. 후임 앞에서 쪽을 당하고 싶지 않다는 강한 의지로 두 눈 빠져라 문서 오와 열 체크하랴, 보고서 수치 더블 체크하랴 멘탈은 바싹바싹 말라갔다.
“여기 수치는 또 왜 안 고쳤어요?”
그런 와중에 실수를 지적받으면 처음 혼이 났을 때처럼 얼굴이 벌게지면서 손이 떨렸다. 목소리도 나오질 않아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빨리 수정하겠습니다.” 외치고 방금 보낸 파일을 열어 재빨리 수치를 수정한다. 제목을 ver2.로 고쳐서 보내려는 찰나,
“제 말 안 들려요?”
그 말이 날아와 심장에 꽂혔다.
신입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지만 난 모른 척했다. 나는 강하니까, 그리고 신입이 들어왔을 때 팀장님처럼 스마트한 모습을 보여주기로 결심했으니까. 단전에서 힘을 끌어 모아 “지금 수정 완료했습니다!” 외치고 단톡방에 파일을 공유한다. 오 분이 지나지 않아 팀장님은 받는 이에 광고주, 참조인에 우리 팀을 넣어 내가 작성한 리포트를 발송했고, 받은 메일함에 그 메일이 떴다. 그제야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내가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진성 선배가 혼나는 모습을 보고 저렇겐 되지 말아야지 몇 번이고 다짐했는데 내가 그 역할을 고스란히 물려받고 앉아 있는 꼴이라니. 어디서부터 꼬인 건지 아무리 되짚어 봐도 근본적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저 매일 낭떠러지에 서 있는 기분으로 업무를 보아야 했다.
그날은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팀장님은 지인과 점심 약속이 있다고 먼저 나갔고, 신입은 남자 친구를 만나러 가는 것 같았다. 디자이너 분도 속이 안 좋아 죽을 싸왔다고 해 난 아람 선배와 회사 앞 쌀국수 집으로 향했다.
아까 전부터 벌렁거리던 심장이 멎지를 않아 입안에는 단내가 가득했다. 물을 마셔도 씻겨 내려가질 않았다. 아람 선배는 속 없게 연차가 차서 오른 월급으로 아이패드를 살까 폰을 바꿀까 고민이라고 말한다. 모처럼 둘이서만 밥을 먹을 기회가 없어서 나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 실은 너무 힘들어요. 그만둘까 봐요. 적성에 맞는 거 같지도 않고”
야근 때문에 몸이 망가져 가는 것도 있었지만, 팀장님의 알 수 없는 온도 차 때문에 너무 힘들다,라고는 말하지 못했다. 아람 선배는 팀장님과 친했으니까.
“아까 지적받은 것 때문에 그래요?
눈치 빠른 선배가 나에게 물었다.
“네. 아니, 뭐 꼭 오늘 일 때문은 아니고요. 그건 캐치 못한 제 실수니까요. 그런데 저나 몇몇 분들께 유독 워딩이 날카롭달까…… 그런 느낌을 받아서요.”
“음, 저는 잘 모르겠는데, 수진님이 힘들다면 그만두는 것도 하나의 방법 아닐까요? 수진님한테도 맞는 일이 있을 거예요. 근데 저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도 너무 짜릿하고, 야근도 퀄리티를 올리려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팀장님 혼자 다 처리하기에는 업무량이 많으니까 ‘내가 최대한 도와드려야겠다!’ 이 생각으로 일 하다 보면 즐겁더라구요.”
선배는 침울해하는 나를 보고 아차 싶었는지 말을 또 이어갔다.
“요즘에 비딩 끝난 지가 언제라고 바로 운영 두 건 들어가다 보니 다들 예민하잖아요. 저도 이번 달 견적서 쓰다가 틀려서 멘탈 나갈 뻔했어요. 어제 촬영할 때 자꾸 견적서 실수한 거 생각나서 삐꺽 대고 있는데 팀장님이 와서 다음 달로 넘기면 되니깐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해서 좀 진정됐지만.”
여기서 나는 무슨 말을 해야 옳을까? ‘아이고 그래서 정말 좋으시겠구나’ 맞장구를 쳤어야 하는지, ‘실수했는데 팀장님이 그냥 넘어갔다고요?’ 반박을 했어야 하는지 아직도 그 정답을 모르겠다. 내가 택한 행동은 ‘역시 내가 못해서 이렇게 까이는 건가?’라는 자괴감을 베트남식 볶음밥과 함께 삼키는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