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이의 가슴에 한 편의 인생 영화를
영화 리뷰에도 관련 콘텐츠에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문구가 있다.
인생 영화
언제부턴가 미디어에서 쓰이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흔한 문구로 자리 잡았다. 그렇다면 과연 인생 영화란 어떤 작품을 칭하는 것일까? 클리셰이긴 하지만 사전적 정의부터 보고 시작하자. 다음 검색창에 ‘인생 영화’라고 치니 제일 먼저 나오는 정의는 다음과 같았다.
1. 자신의 인생에 영향을 준 영화.
2. 인생에 있어 길이 남을 만큼 최고의 작품이라 생각되는 영화.
이 외에도 내가 생각한 정의는,
3. 콘텐츠 사이트에 올라오는 장르별 명작 모음
4. 영화제, 유명인이 주목한 영화
5. 영화 잡지 ≪씨네 21≫ <내 인생의 영화>에 소개된 작품
등이 있다.
하지만 어떤 콘텐츠를 뒤져 봐도 모든 사람들에게 인생 영화로 인정받는 작품은 없었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보고 미장셴에만 신경 쓴 작품이라 말하는 이도 있고, <타이타닉>이 긴 러닝타임 때문에 지루하다는 사람도 있다. 나는 <아바타>나 <해리포터> 시리즈가 그렇게 대단한지 잘 모르겠다. 이렇듯 대부분의 관객들에게 칭송받는 작품은 있어도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작품은 없다.
굳이 대다수의 사람들이 인생 영화로 꼽는 작품을 봐야 할 이유는 없다. 아무도 모르는 영화라도 내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준 작품이라면 그게 바로 인생 영화가 아닐까. 어릴 적 추억이 힘이 되어 주듯이 인생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영화 한 편쯤 만나는 것도 삶의 좋은 비료가 된다. 나의 경우 <오페라의 유령>을 본 후 엔터 업계에 동경을 품었으며, 삭막한 일본 살이에 지친 마음을 <마카담 스토리>로 달래고, 레이첼 맥아담스의 작품을 보며 동기 부여를 얻었다.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도 한 편 정도 인생 영화를 만날 기회를 선사하고 싶다는 마음에 영화 업계에 관심을 갖게 됐다.
1. 이래 봬도 관종입니다.
영화 업계에서 일할 수 있는 방법은 배우, 촬영, 편집, 배급 등 여러 가지다. 나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조용한 관종 (관심 종자)인데, 나대는 성격은 아니지만 주목받는 것을 좋아한다. 어렸을 때는 배우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서 샴푸병을 들고 영화제 수상 소감을 연습하기도 했었다. (하나도 안 부끄럽다. 케이트 윈슬렛도 그랬다고 오스카에서 말했다.) 철이 들고 내 피지컬과 발성이 배우 하긴 글러먹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여전히 기회가 있으면 나의 관종기가 스멀스멀 기어 올라온다. 고등학교 2학년 때는 문화제 연극 여주인공을 하겠다고 나서서 최우수 연기상도 타보고 며칠 전에는 친구가 한 번만 도와달라고 해서 영상도 찍고 왔다. 최종 결재에서 막혀 업로드되진 못 했지만 카메라 앞에 설 수 있는 것만으로도 두근거렸다.
먹고살기 위한 직업으로 배우는 글러먹었고, 촬영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고, 뭘 어떻게 하면 영화 업계에서 일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찾아낸 길이 영화 홍보였다. 영화를 보며 내가 느꼈던 감동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달하고 싶은 나의 욕구와도 잘 들어맞았다.
2. 모든 이의 가슴에 한 편의 인생 영화를!
내가 영화 홍보, 배급사의 문을 두드린 이유는 대부분의 관객들에게 칭송받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다. 물론 자소서에는 그렇게 썼지만 진짜 이유는 모든 이들의 마음속에 인생 영화 한 편쯤 간직하게 하고 싶어서였다. 내가 영화를 보며 꿈을 키우고, 힘들 때 위로받았던 좋은 경험을 더 많은 사람들이 경험했으면 하는 이유에서 진로를 결정했다.
영화를 관람한 날의 기분, 상황, 나이 등 감상을 좌우하는 요소는 무궁무진하다. 인생 영화란 작품성이 뛰어나다고 해서 (물론 중요한 요소다) 결정되는 게 아닌 것 같다. 옛날에는 보면서 울고 볶고 지지고 했던 작품들이 지금 보면 아무 감흥이 나지 않을 때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인생 영화를 결정하는 중요 요소일까? 그건 바로 영화를 보고 얻는 치유 효과다.
영화 속에는 보편적인 것을 건드리는 힘이 숨어 있다. 작품 속 주인공과 100% 일치하는 삶을 살지 않더라도, 그들의 모습에서 내 과거, 지금의 모습, 미래의 모습이 보이고 내가 사는 곳에서 일어난 일들을 떠올릴 수 있기 때문에 영화를 보고 울고 웃을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영화의 이런 힐링 효과를 믿고 한 편이라도 많은 영화를 한 명이라도 많은 이에게 소개해 그들의 삶이 애틋해지기를 바란다.
영화의 존재 이유, 영화의 사회적 책임
영화 후기 키워드를 보면 #인생영화가 심심치 않게 보인다. 내가 홍보한 영화가 누군가에게 좋은 울림을 줄 수 있다면 얼마나 뿌듯할까! 상황이 잘 안 맞아떨어져 영화 홍보와 전혀 상관없는 일을 했지만, 그 뿌듯함을 내 심장으로 느껴보기 위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노력 중이다. 브런치에서 연재 중인 매거진 <영화로 쓰는 편지>도 마음이 힘든 이들에게 편지로 위로하듯이 영화를 추천해 주기 위해 만든 것이다. 내가 추천한 영화를 보고 위로를 받았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뜨거워진다. 또 매거진에 쓴 글 한 편을 통해 받은 감사한 제안 덕분에 영화 평점 서비스 '키노라이츠'에서 인증 회원으로 활동 중이니 꿈의 삼분의 일 정도는 이뤘다고 하자.
이번 편을 쓰다가 든 생각인데, 나의 경험과 영화를 엮어서 쓰는 것도 나의 인생 영화를 되짚어보는 과정이 아닌가 싶다. 영화 작품이란 단독으로 존재할 때 빛나기보다 관객의 삶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모자란 부분을 채워주고 상처를 치유할 때 비로소 제 역할을 한다. 물론 내가 어떤 영화를 보고 뼈저리게 느꼈던 감동을 내 글을 읽어주시는 다른 분들이 똑같이 느끼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다른 날 다른 곳에서 태어나 다른 사람들과 자랐고 다른 경험을 하며 각자의 가치관을 갖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애초에 만인의 공감을 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글을 쓰는 이유는 한 분이라도 내가 본 영화에 공감하고 비슷한 경험을 하고 계신 분들이 마음의 위안을 얻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번외 2편에서 현실의 고민으로부터 피하는 것은 어리석다! 선글라스를 벗어던지고 현실을 직시하라!라는 메시지를 던졌지만 가끔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 속으로 도피해서 주인공들의 상황에 공감하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시간도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내가 생각하는 영화의 존재 이유이자 사회적 책임이며, 인생 영화를 결정하는 중요 요소다. 켄 로치 감독의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을 보고 한국 전쟁의 상처를 떠올리고, <브루클린> 속 에일리스가 타국에서 고생하는 모습을 보고 내 신입생 시절이 떠오르는 듯이 영화에는 저 멀리 떨어져 있는 이들의 보편적 감성을 건드리고 감동을 주는 효능이 있다. 그리고 내 꿈은 그 효능을 어떤 형식으로든 많은 이들에게 전달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