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비인가 나비가 나인가
영화관은 나에게 현실 도피의 존재였다. 관객을 향한 거대한 스크린을 뚫고 들어가 그네들의 삶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일은 하기 싫지만 주머니에 1500엔 정도의 여유가 있을 때 나는 영화관 의자에 앉아 상영관 불빛이 꺼지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영화가 시작되면 내가 배우라도 된 듯 영화에만 집중하고 망상에 빠져 현실 따윈 잊어버린다. 영화가 끝나고 다시 불빛이 들어오면 영화가 나인지 내가 영화인지 잠시 구분이 가지 않지만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직원이 들어온다. 그러면 ‘아, 현실이구나!’하고 상영관을 나선다.
일본 영화관과 한국 영화관의 가장 큰 차이점은 영화가 끝난 후에 있다. 한국의 경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불이 켜지고 관객들은 자리를 떠나며 관내는 한순간에 어수선해진다. 하지만 일본은 엔딩 크레딧이 끝까지 올라가고 배급사 마크가 나올 때까지 불이 켜지지 않는다. 덕분에 2~3분 정도 더 앉아서 망상에 빠져있을 수 있다.
이렇듯 내가 굳이 영화관을 찾는 이유는 임장감(臨場感) 때문이다. 방구석에서 홀로 보는 영화도 매력적이지만 스마트 폰 알람, 식구들 소리, 기타 생활 잡음으로부터는 해방될 수 없다. 러닝 타임 내내 오롯이 스크린만 바라보며 상상의 나래에 빠질 수 있는 장소로서 영화관의 의미는 크다.
영화 <카이로의 붉은 장미> (우디 앨런, 1985)
힘들 때 현실 도피를 하고 싶은 마음은 만국 공통인가 보다. 영화 <카이로의 붉은 장미> 속 주인공 ‘세실리아’는 대공황 시대를 살고 있다. 남편은 말이 일용직이지, 반백수인 데다가 신경질적이고 알코올 중독이다. 마음 기댈 수 있는 곳이라곤 스크린을 통해 보는 영화 속 남자 주인공뿐. 그래서 세실리아는 <카이로의 붉은 장미> n차 관람을 찍으며 잠시나마 마음을 달랜다.
<카이로의 붉은 장미>는 극중극 형식을 빌려 영화 속 주인공이 제4의 벽(연극에서 객석을 향한 가상의 벽)을 뚫고 나와 벌어지는 소동을 그린다. 말도 안 되는 스토리지만 영화이기에 가능하고 우리는 그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 빠져든다. 극 중 내제극인 세실리아가 매일 관람하는 영화의 제목도 <카이로의 붉은 장미>이며 퍽퍽한 현실을 사는 세실리아에게 보석을 찾아 헤매는 탐험가 ‘톰’은 낭만 그 자체이자 도피처다. 그래서 현실 감각도 없고 어벙해 보이는 톰에게 빠져버린 걸지도 모르겠다. 남편에게선 들을 수 없었던 낯간지러운 사랑 고백과 오글거리는 데이트에 세실리아는 행복해 보인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현실 도피를 하며 살 수는 없는 법. 남자 주인공이 스크린 밖으로 사라져 버린 탓에 스크린 속 사람들은 난리가 나고 영화 제작사와 톰을 연기한 배우, '길'이 직접 나서 톰을 포획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엉망진창인 상황 속에서도 세실리아는 톰을 숨겨주려 하지만 서서히 그녀도 톰이 현실 세상에서 살아갈 수 없다는 존재임을 깨닫는다. 영화 속에서나 멋진 남자 주인공이었지, 현실에서 톰은 부질없는 낭만에 빠진 집도 직업도 없는 무능력자이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함께 지낼 수 없을 바에 작품 속에서 같이 살자는 톰의 고백에 세실리아는 스크린 속으로 들어가지만 그녀를 스크린 밖으로 빼내기 위한 길의 거짓 사랑 고백에 뒤통수를 맞는다. 길과 함께 떠나기 위해 짐 싸서 가출을 하나 영화 제작사 크루는 모두 할리우드로 떠난 뒤였다.
톰은 스크린 속으로 다시 들어갔으며 길은 할리우드로 떠났다. 이게 현실이다. 영화가 현실인지 현실이 영화인지 구별가지 않는 꿈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언제까지나 환상 속에서 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세실리아는 꿈에서 깬다. 허탈한 마음에 세실리아는 영화관으로 터덜터덜 들어가 앉는다. 무표정이었던 그녀의 얼굴이 영화에 집중할수록 미소가 피어오른다. 한바탕 소동을 겪고도 또다시 영화 속으로 도피하는 세실리아의 모습이 남 일 같지 않다. 영화 속 세상을 동경하는 것이 덧없다는 걸 알면서도 각박한 현실에 치여 다시 영화관을 찾는 우리네를 향한 우디 앨런 감독의 달콤 쌉싸름한 냉소주의가 돋보인다.
취업 준비로 멘탈이 너덜너덜해졌던 대학 3학년 시절, 나는 고전 애니메이션 <환상 게임> (TV Tokyo, 1995)에 빠져 지냈다. 여주인공 ‘미아카’가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가 고대 중국으로 떨어져 남자 주인공들과 힘을 합쳐 주작 신을 찾아 나선다는 동양 판타지 역하렘 애니인데, 잠들기 전 핸드폰으로 20분 동안 환상 게임을 보는 일이 그렇게 설렐 수가 없었다. 불안한 현실에 살 바에야 나도 미아카처럼 책 속으로 들어가 잘생긴 남정네들과 모험을 떠나고 싶었다.
새벽 6시까지 질질 짜며 정주행을 끝내고 나니 나를 반기는 것은 오후에 있을 시험과 밤샘으로 인한 피로였다. 옛날 애니나 보면서 울고 불고 추억 팔이하는 게 부질없는 짓이라는 것은 잘 안다. 끝나고 나면 현실을 자각하고 환멸감이 들기도 하지만 나는 또 다른 도피처를 찾아 헤맸다.
잠시 다른 이야기로 샜지만, 요는 이런 것들 덕분에 내가 잠깐이나마 현실을 잊고 달콤한 망상에 젖을 수 있었다는 거다. 작품 속 주인공이 내가 사는 세상으로 나오는 게 불가능하다면 나는 기꺼이 미아카나 세실리아처럼 작품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나 같은 사람이 잠시나마 머리 아픈 현생에서 벗어나 스크린 속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영화관이 계속 존재해 주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