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나요?

왜 나는 영화 <너의 이름은.>을 보고 눈물이 났을까

by 가람

만약에 말이야...


영화 <너의 이름은.> 신드롬이 터졌던 2016년 여름, 나는 대학 3학년이었고 두 번째로 거지 같았던 기말고사가 끝난 뒤였다. 일본 매스컴이 <너의 이름은.> 흥행 성적을 보도하며 신카이 감독과 OST를 맡은 래드윔프스 (RADWIMPS)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출 때, 한국에서는 ‘세월호 선체 인양’이라는 키워드가 헤드라인을 차지했다. 대학 1학년 티비로 접한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몇 년이 흐른 뒤였지만 여전히 관련 뉴스를 보면 마음 한구석이 아파왔다.


기말고사가 끝나자마자 짐 싸 들고 한국으로 떠나는 바람에 <너의 이름은.>을 보게 된 것은 2016년 10월이었다. 개봉한 지 두 달이 다 지났지만 상영관은 사람들로 꽉 차있었다. 신카이 마코토의 이전 작품 <언어의 정원>과 같은 스타일을 예상하고 봤던 터라 영화는 좋은 의미로 내 뒤통수를 제대로 가격했다. 주인공 ‘타키’와 ‘미츠하’가 혜성 충돌로부터 이토모리 마을 주민을 구하려고 발버둥 치는 시퀀스를 보고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머릿속에서는 계속 ‘만약에… 만약에 우리에게도 운명을 바꿀 기회가 찾아왔더라면 아이들을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안타까운 상상이 떠나질 않았다.






<너의 이름은.> 이전의 신카이 월드

너와 나만의 세계, 세카이계(セカイ系)


빛의 마술사라고 불리며 일본 곳곳을 빛과 함께 사실적으로 포착하는 작풍으로 사랑받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이지만 ‘세카이계’라는 장르로 분류되며 비판을 받기도 했다. 세카이계란 서브컬처 하위 장르를 칭하는 용어로, 인터넷에서 파생되어 현재에도 명확한 정의는 없다.


가장 흔히 알려진 뜻은 마에지마 사토시(前島賢)가 저서 ≪세카이계란 무엇인가-포스트 에바의 오타쿠사≫에서 정의한 ‘나와 너의 관계라는 인간관계에서 가장 조그마한 연결이 구체적 설정이나 과정 없이 '세계의 운명'이나 '세상의 종말'등의 추상적이면서도 거대한 문제와 직결되는 작품군’ (「主人公(ぼく)とヒロイン(きみ)を中心とした小さな関係性(「きみとぼく」)の問題が、具体的な中間項を挟むことなく、『世界の危機』『この世の終わり』など、抽象的な大問題に直結する作品群のこと」)이다.


특히 SF요소를 가진 작품이 많으며


1. 멸망해가는 세계

2. 한 쌍의 커플/두 사람으로 구성된 주연

3. 오로지 그 주연을 중심으로 하여 전개되는 이야기


라는 큰 특징을 갖는다. 이에 더해 신카이 감독의 작품은 관객들이 살아가는 시대상이나 사회 모습을 전혀 담고 있지 않은 일방적이고 관객과의 소통이 부족한 작품이라는 평가도 받아왔다.


10편 <슬럼프를 겪은 적 있나요?>에서도 다뤘듯이, 신카이 마코토 월드를 구축하는 키워드는 SF와 엇갈리는 남녀다. <너의 이름은.> 역시


1. 혜성 충돌로 인해 멸망 예정인 이토모리 마을

2. 타키와 미츠하라는 남녀 주인공

3. 두 주인공이 이야기를 이끄는 중심


이라는 면에서 세카이계의 특징을 띠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너의 이름은.>만큼은 몸이 바뀌는 설정을 사용해 두 주인공의 인간관계와 세계를 확장시켰으며 주인공 이외에 조연의 역할도 크게 늘어났다. 나아가서 자연재해라는 모티프를 착용해 관객이 살아가는 사회와 소통하고 많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성공했다.






신카이 마코토의 세카이계 탈피

1. 3.11 동일본 대지진과 혜성 충돌


‘내가 이 영화를 보고 세월호의 아픔이 떠올랐듯이 일본인들은 동일본 대지진을 떠올리지 않았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신카이 감독의 작품 코멘터리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었는데, 그 답은 YES 였다.


“<별을 좇는 아이> 마무리 작업에 들어가기 직전에 3.11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났는데요, 그때의 ‘기분’과 뗄 수 없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초속 5센티미터>까지는 제 감각이라든지 정서에 기대 작품을 만들어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별을 좇는 아이> 제작에 있어서는 좀 더 제대로 ‘이야기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중략) 작품을 누구에게,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지의 중요성과 처음으로 대면하게 되었달까요. 관객 분들과의 관계성을 보다 진중하고, 보다 진지하게 고민하는 계기가 되어준 작품이기도 합니다.” (「『星を追う子ども』を作り終える直前に3.11があったんですが、今思うと、3.11の時の「気分」と切り離せない作品だなと思います。『秒速5センチメートル』までは、自分の感覚だったり情緒を頼りにし作ってきたと思うんです。でも、『星を追う子ども』の制作にあたって、もっとちゃんと「物語として構築しなければいけない」という気持ちが強くあった。(中略)作品を誰に、どのように届けるのかということの重要性を初めて突きつけられた、というか。お客さんとの関係性をより慎重に、より真剣に考える、その契機となった作品でもあります。」)


그는 2011년 5월에 개봉한 <별을 좇는 아이> 작업 후반부터 3.11 동일본 대지진이 창작 활동에 있어서 변곡점이 되었다고 말한다. ‘작품을 누구에게,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지의 중요성과 처음으로 대면하게 되었달까요. 관객 분들과의 관계성을 보다 진중, 진지하게 고민하는 계기가 되어준 작품이기도 합니다.’라는 말이 <너의 이름은.> 제작의 청사진이 되었다고 사료된다. 많은 이들의 목숨을 빼앗고 생활의 터전을 앗아간 동일본 대지진. 감독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이 사건으로 상처 입은 이들의 마음을 치유하고자 했다. 애니메이션 감독인 그에게 있어서는 이야기를 만들고 영상으로 구현하는 것이 그 방법이었다.






2. 창작 활동과 사회적 사건의 관계


사회적 이슈가 창작 활동에 좋은 영향을 준 예시는 또 있다. 임상심리학자 가와이 하야오(河合隼雄)는 무라카미 하루키와의 대담에서 “병을 치유하는 것으로서 ‘이야기’는 실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중략) 각자 책임감을 가지고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 (「病いを癒すものとして「物語」というのは、実に大切なことだと思っている。(中略)各人はそれぞれの責任において、自分の物語を創り出していかねばならない。」)라고 말했다.


대담이 이루어진 때는 1995년 11월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태엽 감는 새≫가 출간된 연도이며, 한신 아와지 대지진(1995년 1월 17일)과 옴 진리교에 의한 지하철 사린 가스 사건 (1995년 3월 20일)이 일어난 해 이기도 하다. 하루키 본인은 이 두 사건이 집필 활동에 영향을 끼쳤음을 인정하며 신작 ≪태엽 감는 새≫를 통해 독자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작품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하루키는 '노몬한 사건'을 작품 내에서 직접 언급하며 전후 사회 분위기에 더해 당시 일어난 안타까운 사건들로 상처 받은 젊은이들의 마음을 치유하고자 했다.


하루키의 시도를 긍정적으로 바라본 가와이 하야오는 “이전 작품과 한 단계 다른 느낌을 받았다. 일단 청춘이라는 소재에서 벗어나 이번 소설은 현대인 전체를 아우르는 작품이 되었다. 또, 이전부터 생각한 것이지만 최근 들어서 공표한 ‘이야기에 의한 치유’란 테마와 딱 맞아떨어지는 작품이었다.” (「これ以前の作品と一段と異なるものに感じられた。まず、青年ということを離れ、これは現代人一般に関わるものであった。それと、わたしが以前から考えてきたことであるが、最近になった公表しだした「物語による癒し」というテーマにぴったりのものであった。」)라고 코멘트하며 ≪태엽 감는 새≫가 사회적 사건을 다루는 방법과 이를 치유하는 방법을 칭찬했다.


하루키 월드의 기둥이었던 청춘의 고독에서 한 발자국 나아가 실제 사회에서 벌어졌던 일을 소설에 도입한 시도는 한 사람의 창작물이 사회 전체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효과를 보여줬다.






3. 재해의 아픔을 기억하고 보듬는 따뜻한 시도


신카이 마코토의 <너의 이름은.> 역시 사회의 아픔과 깊게 관련되어 있으며, 이야기로 사회의 상처를 보듬는 또 다른 좋은 사례이다. 작품 속에서 그려진 사회의 아픔은 3.11 동일본 대지진이다. 폐쇄적인 세계관과 두 주인공에게만 집중되는 이야기 탓에 현실 세계와 동떨어졌다는 한계를 극복하려고 노력한 결과 처음으로 관객과 소통하는 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다. 감독은 동일본 대지진을 상기시키기 위해 혜성 충돌이 일어나는 미츠하의 세계를 2013년으로 설정하고 청춘 판타지라는 틀을 빌려 이야기를 진행한다. 사춘기 소년소녀, 몸이 바뀌는 현상 등 판타지 요소를 차용한 이유는 끔찍한 재해를 겪은 이들을 위한 배려가 아닐까. 3.11의 참상은 간단하게 형용할 수 없다. 한 순간에 소중한 사람과 장소를 잃은 슬픔, 언젠가 또다시 이런 재해가 닥쳐올지 모른다는 공포는 다시는 직면하고 싶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잊고 살아갈 수는 없다.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일어나더라도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기억해야만 한다.


위 장면이 작품 내에서 재해의 참상을 그린 부분이다. 혜성 충돌로 인해 마을이 파괴되는 모습을 몇 초간 보여줄 뿐, 사망자나 부상자의 모습은 배제되었음을 알 수 있다.


청춘 로맨틱 코미디로 우회해서 재해를 그리는 기법은 떠올리기 두렵지만 기억해야만 하는 사건을 따뜻하게 다룬 성공적인 시도였다. 그 결과 동일본 대지진을 직접 겪은 이들은 현실과 달리 용감한 소년소녀가 재해로부터 사람들을 지키는 모습에서 희망을 엿볼 수 있었고 조금이나마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다. 또한 3.11을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는 우회 전략은 작품에 보편성을 더했다. 혜성 충돌 모티프는 관객의 마음속에 내재된 가장 잔혹한 사건, 재해를 상기시키는 효과를 주는 동시에 희망적인 결말로 상처를 보듬어 준다.






<너의 이름은.>을 보기 전 뉴스에서 세월호 인양 소식을 들어서였을까, 아니면 단순히 그 사고가 내 머릿속에 깊게 박혀있었던 것일까. 타키가 마지막으로 몸이 바뀌는 현상을 이용해 미츠하와 마을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 사야카가 마을 안내 방송으로 대피 안내문을 내보내고 사람들이 반신반의하면서도 일단 피하는 모습, 미츠하가 용기를 내서 아버지와 대면하고 마을 사람들을 피난을 돕는 모습 하나하나가 눈물샘을 자극했다. ‘만약에 우리에게도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가 주어졌다면…’하는 안타까운 마음에 주인공을 더 응원하게 됐고, 마침내 운명을 바꾸는 데 성공한 타키와 미츠하가 어른이 되어 만나 서로의 이름을 묻는 장면에서 한 층 깊은 감동을 느꼈다.


<너의 이름은.>은 신카이 마코토가 작품과 처음으로 관객과의 관계를 염두하고 만든 기념비적인 작품이며 비록 픽션이지만 관객들이 살고 있는 실제 세상과 접점을 만들어 동일본 대지진을 상기시키고 상처를 치유해준다. 집단적 기억을 형성하는 좋은 매체는 다큐멘터리 영화라고 하지만 <너의 이름은.>은 특정 사건을 직접 다루지 않고서도 집단적 기억을 만들어내는 훌륭한 예가 되었다.


내가 만들고 싶은 영화도 이런 영화다. 관객이 사는 세상 속으로 녹아들어 상처를 치유하고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사건을 상기시켜주는 작품. 이런 영화 한 편 사람들의 마음에 심어주고 싶다.





참고문헌/인용

*前島賢『セカイ系とは何か ポスト・エヴァのオタク史』ソフトバンク クリエイティブ株式会社、2010年, 173-174pp.

*「新海誠の世界 SHINKAI MAKOTO FILMOGRAPHY」『Febri OCT.2016 VOL.37』月刊Comic REX10月号増刊、株式会社一迅社、2016年10月、45pp.

*河合隼雄、村上春樹『村上春樹、河合隼雄に会いにいく』新潮文庫、1996年、220-221pp.

*김효순 <무라카미 하루키의 ≪태엽 감는 새≫ 론 -현대인의 상실감과 노몬한 체험을 중심으로->『중앙 대학 일본 연구』고려 대학 글로벌 일본 연구원, 2007년, 167-168pp.


*본문에 쓰인 인용문은 모두 직접 번역한 것입니다. 오역, 의역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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