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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람 Apr 02. 2019

전국 근무 괜찮나요?

반오십이 되어 바라본 결혼

단신부임이 체질입니다


전국 근무 괜찮나요?


 면접에서 마지막으로 꼭 물어보던 질문.


 대도시에서 일할 수 있다면 좋지만 가족들은 한국에 있고 결혼 생각도 없는 나에게는 딱히 상관없는 질문이었다. 조금이라도 적극성을 어필하기 위해


 네. 어디든지 일만 배울 수 있다면 괜찮습니다.


 라고 대답하고 면접장을 나왔다.






결혼하지 않는다

연애도 안 하겠다고는 말 안 했다


 공기업에 취직한 친구 얘기를 들어보니 결혼한 유부남녀들에게 전근이란 무서운 존재라고 한다. 동기 중 갓 결혼한 남자가 있는데, 촌구석에 발령받았지만 아내도 공무원이라 이사를 갈 수가 없어서 주말 부부 신세가 되었다고 한다.


 결혼에 대한 생각이 없는 나는 그 이야기가 와 닿지 않았다. 전근이니 해외 발령이 인생의 걸림돌이 되는 일은 상상이 안 간다. 그냥 이사하는 게 귀찮고 시골 마을로 내려가면 놀 거리가 줄어들어 심심할 뿐이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좋은 기회가 아닌가! 뭐, 그렇다고 연애를 안 하겠다는 소리는 아닌데 이런 얘기를 하면 주위에서는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며 난리다.


 드라마 <은주의 방>에서 은주의 언니는 은주(29세, 무직)에게 결혼은 몰라도 연애는 하라고 얘기한다.


너네가 과연 연애만 할 수 있을까? 이미지 출처 : 드라마 <은주의 방> (Olive, 2018)


 공중파나 일일 드라마는 아니지만, 결혼식 장면으로 마지막화를 장식하는 게 클리셰인 한국 드라마에서 저런 대사가 나온다는 게 신선했다. 한편으로는 저게 가능할까라는 걱정도 들었다. 20대 우리네 생각이야 저래도 부모님 세대는 안 그럴 텐데.






 얼마 전 큰아버지 환갑잔치가 있어서 오래간만에 모두 모였다. 사촌 언니 오빠들은 80년대 중반에서 90년대 초 사이에 태어나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을 바라보고 있다. 내가 코찔찔이 시절 놀러 가면 맛있는 거 사주고 놀아주느라 바빴던 사람들이 이제는 자기 남편, 아내, 자식들 챙기느라 바쁘다. 그렇다고 내 얘기 들어달라고 투정 부릴 나이도 아니고 서운하지만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거다. 고모들도 마찬가지였다. 다 같이 모이면 조카들 안부 물어보시던 분들이 이제는 간단한 인사만 하고 각자 며느리, 사위, 손주들이랑만 이야기한다. 나도 나이 반오십에 이모, 고모 소리를 들으며 어색한 미소를 짓는다.  

 

 언니 오빠들이 아기 안고 다른 테이블에서 얘기하고 있을 때, 나를 포함한 90년대 중반 태생인 이들은 구석 테이블에 짜져 있었다. 그렇게 서로 일 얘기, 연애 얘기나 하며 시간 때우고 있는데 우리를 향해 누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이고, 니들도 몇 년 뒤면 결혼하고 애 낳겠네.”


 나는 대답한다.

 

 -“저는 결혼 생각 없는데요?”


 그럼 어르신은 말씀하신다.


 -“얘가, 외동인데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해야지…….”


 -“연애는 해도 결혼은 안 한다고요. ”


 -“그게 말이 되니?”


 왜 말이 안 되나요? 나는 자유 연애주의자인데.






그래도 드레스는 입어보고 싶어

날 잡고 친구들이랑 스튜디오나 가볼까


 한국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둘째 이모네 사촌 언니가 결혼식을 올렸다. 오래 사귄 남자 친구가 있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나이 차이 얼마 안 나는 언니가 웨딩드레스 입고 형부 손 잡고 걸어가는 걸 보니 기분이 묘했다. 뼛속까지 비혼주의지만 괜히 드레스 입고 걸어보고 싶었다. 부러운 눈빛으로 결혼식을 바라보다가 옆 자리에 있던 동갑내기 비혼주의 사촌 언니(생일이 더 빠르다) 눈이 마주치고 정신이 들었다.


 ‘역시 결혼은 아니야.’


 결혼을 축하하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다. 진심으로 축하하고 행복하길 바라지만 그게 내 길이 아닌 것 같다는 소리다. 결혼식이 끝나고 이모네 집에서 술 마시면서 동갑내기 사촌 언니와 나는 얘기했다. 우리는 절대 결혼하지 말고 늙으면 침대 누워서 배스킨라빈스 퍼 먹으면서 영화나 보자고.


친구들 앞에서 단골 카페 메뉴에 적은 결혼 서약을 낭독한다. 식장은 미술관. 얼마나 로맨틱 한가! 이미지 출처 : 영화 <서약> (마이클 수지, 2012)


 하지만 영화 <서약>에 나오는 결혼식처럼, 단출하고 왁자지껄한 결혼식 한 번은 올려보고 싶다. 웨딩드레스 곱게 차려 입고 하루쯤 주인공이 되는 일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단 생각에 언니에게 물었다.


웨딩드레스 대여해서 친구들끼리 방탕하게 노는 것도 좋겠다. 이미지 출처 : 미드 <FRIENDS> (NBC, 1994~2004)


 -“언니, 근데 하루 정도 드레스 입고 주목받는 것도 좋지 않을까?”


 이랬더니 언니가


 -“그런 건 드레스 대여하고 사진관 가서 찍자^^ 너 많이 취했구나?”라고 했다.


 언니는 나보다 더 완강했다. 환상 따위 없는 본투비 비혼주의자였다. 본받아야지.






비혼을 외치게 된 이유

자신이 없습니다


 내가 왜 결혼을 멀리하게 되었을까?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고등학교 국어 수업 시간 결혼 얘기가 나왔을 때 나 혼자 ‘비혼 최고!’를 외쳤던 기억이 난다.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룰 만한 그릇이 아닌 것 같았고, 이런 나를 받아줄 사람도 없을 것 같았다. 잠깐은 맞춰갈 수 있더라도 평생은 무리일 것 같았다. 나만의 시간이 자주 필요하고 가끔은 한 없이 우울하고, 내 가족 챙기는 것만으로도 부담스럽고, 내 몸 하나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는 내가 누군가와 같이 살며 맞춰가며 시댁 사람들을 만나고 아이를 낳아서 키운다니. 상상이 가질 않는다.


 2남 3녀 중 넷째인 우리 아빠와 결혼한 엄마는 친가 행사가 있으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아침 드라마에서 볼 법한 지독한 시집살이는 아니지만 며느리가 겪는 묘한 불편함이 있다. 엄마가 자존심 세고 강단 있는 사람인데 친가 쪽에 있을 때의 엄마는 달라 보인다. 애교도 떨고 군기가 들어가 있다. 말로는 아니라고 하지만 명절 스트레스는 우리 엄마도 피해 갈 수 없나 보다.


 성인이 되고 5년 동안 혼자 살다가 잠시 가족들과 같이 지내고 있는 나는 아직도 적응 중이다. 일촌 지간에도 배려하고 적응하는 기간이 필요한데, 시댁 식구라는 큰 집단이 내 삶을 차지한다니. 도대체 어떤 느낌일까. 결혼하면 혼수로 밍크와 명품백을 사 오라고 할까? 과일 제대로 못 깎는다고 잔소리를 듣는 거 아닐까? 남편 출근하는데 잠이나 자고 밥도 안 차린다고 꾸중 들을까? 설마 신혼집에 들어와 사신다고 할까? 비밀번호 알려달라고 하시는 거 아닌가? 사랑하는 사람을 찾으면 뭐하나. 결혼 = 그 사람 집안도 받아들이겠다는 뜻인데. 나는 그럴 자신이 없다.






내가 죽으면 대가 끊기겠군

그래도 자신이 없습니다


 대학생 시절 즐겨보던 미드 <FRIENDS>. 세 남녀의 우정과 사랑을 그린 드라마로 보면서 저런 친구들과 투닥거리면서 살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대망의 시즌 1 제1화는 레이첼이 결혼식장을 뛰쳐나와 모니카와 친구들을 만나며 시작된다. 어째서 도망쳤냐는 친구들의 물음에 레이첼은 이렇게 대답한다.


선물이 잔뜩 쌓여있는 방에 앉아있는데 엄청나게 큰 수프 그릇이 보이는 거야. 그걸 보니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지. 배리보다 그 수프 그릇에 기대고 싶어 진 거야. 그러더니 갑자기 정신이 들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 배리가 감자 머리 아저씨처럼 생겼다는 생각이. 어쨌든 난 방을 뛰쳐나와 생각했지. "내가 왜, 누굴 위해서 결혼을 하려는 걸까?"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하겠지만 레이첼의 심정이 이해 간다. 지금처럼 확신이 없는 상태로 결혼식장에 서게 된다면 나도 "I do"의 서약을 하는 대신 식장을 뛰쳐나올 것 같다.


그래. 감자 머리 아저씨랑 평생 살 바에야 미친 척하는 게 나을 수도. 이미지 출처 : 미드 <FRIENDS> (NBC, 1994~2004)


 엄마도 외동, 나도 외동. 내가 평생 비혼주의를 외치며 산다면 우리 집 DNA는 여기서 끊기고 말겠지. 이렇게 생각하니 뭔가 무섭지만 내가 겪은 입시 전쟁, 피어 프레셔, 미세 먼지, 취업난, 높은 집값 (딸이라면 코르셋까지)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 몸 상해가며 기껏 낳아 키웠는데 ‘엄마는 이딴 세상에 왜 나를 낳았냐’는 소리를 들으면 많이 서글플 것 같다. 또 축하해주러 와주신 하객분들에게 잘 살겠다고 당당하게 말할 자신이 없다. 나이를 먹으면 생각이 바뀐다는 데 얼마나 더 먹어야 바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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