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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람 Apr 12. 2019

번외 3. 연애와 섹스가 결혼만을 위한 건가요?

한국 드라마 속 로맨틱 러브 이데올로기

이런 엔딩은 싫어


 배우 서현진 씨의 팬으로 드라마 <또 오해영> (2016, tvN)과 <사랑의 온도> (2017, SBS)를 재미있게 보았지만 두 작품 모두 결혼식 장면으로 마지막 회를 장식해서 허무했다. 결혼식 장면을 찍어야 모든 스텝들과 배우들이 모여 쫑파티 하기 편해서 인가? 젊은 층을 겨냥한 로코물은 물론이요, 일일 드라마, 주말 가족 드라마는 거의 남녀 주인공이 결혼식을 올리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여자 혼자, 남자 혼자, 아님 동성 커플이 잘 먹고 잘 산다는 엔딩은 눈 씻고 찾아봐야 하나 나올까 말까 하다.






로맨틱 러브 이데올로기


 평생 한 명의 이성을 사랑하고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이 바람직한 사랑의 형태라는 관념


 <연애의 발견>이나 <로맨스가 필요해>와 같은 예외도 있지만, 대부분의 한국 드라마는 이 로맨틱 러브 이데올로기의 틀을 깨지 못했다. 특히 중장년층을 겨냥한 드라마나 가족 드라마는 이 관념을 더욱 여실하게 드러낸다. 어쩌면 미디어는 남녀가 가정을 이루는 것이 당연하고 행복한 거라는 로맨틱 러브 이데올로기를 주입하기 위해 마지막 회를 결혼식 장면으로 장식하는 걸지도 모른다. 그 뒤의 일은 전혀 보여주지 않은 채 <연애-섹스-결혼>의 성공적인 모습만 보여주려고 한다. 물론 연애 끝에 결혼을 하는 것도 사랑의 한 방법이다만 이 사상에는 몇 가지 불편한 모순이 존재한다.


결혼식 장면 찍으려고 출연진들 다 같이 모이고, OST에 따라 춤도 추었던 톡톡 튀는 엔딩이었다. 이미지 출처: 드라마 <또 오해영> (tvN, 2016)




남자친구가 셰프라 레스토랑에서 지인들 불러 놓고 단촐한 결혼식을 올리는 씬으로 끝이 난다. 이미지 출처 : 드라마 <사랑의 온도> (2017, SBS)






모순 1. 틀에 박힌 사랑의 형태


 성에 관련된 규범과 사상이 전환되며 로맨틱 러브 이데올로기는 구시대적이라는 의견도 많지만,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 숨어 있는 게 현실이다. 연애-섹스-결혼. 이 세 요소가 독립되어서는 안 되며 한 사람과의 관계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예시는 주위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속도위반 결혼, 혼전 관계에 대한 눈초리, 동성애 혐오 등은 모두 <‘남녀’ 간의 연애 감정-결혼-섹스-출산-육아>가 사슬처럼 연결되어 있다는 관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기에 아이가 생기면 책임을 지고 결혼을 해야 하고 결혼 전에 성관계를 갖는 것이 눈치 보이는 것이고 혼전 동거는 금기시되며 동성 간의 사랑을 혐오하는 이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모순 2. 두 종류의 이중잣대


 로맨틱 러브 이데올로기가 다양한 형태의 사랑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점 이외에도 ‘이중잣대’를 들이 민다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 첫째는 남성과 여성 사이의 이중잣대다. 연애-섹스-결혼이 유기적인 관계에 있다면 자유분방한 성생활은 남녀 모두 지탄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아직까지 남성에게는 관대하게, 여성에게는 엄격하게 관념의 잣대가 작용한다는 점은 사실이다. 둘째는 여성 사이에서의 이중잣대다. 여성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가정을 이루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사회 제도의 보호를 받지만 결혼하지 않고 자유연애를 즐기는 여성은 어떠한 보호를 받지 못 한채 손가락질받는다. 비혼주의자, 한부모 가정, 프리섹스 주의자들은 자신의 힘으로 세상의 눈초리와 맞서 싸우며 사랑을 지켜 나가야 한다.






And they lived happily ever after?

이보쇼 나레이션 양반, 왜 맘대로 이야기를 끝내시나


디즈니 엔딩의 클리셰.  "그리고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이미지 출처 : 텀블러


 로맨틱 러브 이데올로기와 고정된 성 관념이 녹아있는 미디어 매체는 또 있다. 바로 디즈니 애니메이션이다. 세계적 애니메이션 제작 회사라는 곳이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동화라는 가면을 쓰고 여자 아이들에게 수동적인 태도로 왕자님을 기다리게 만들고 멋진 왕자님과 결혼하면 평생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거짓말을 치고 있다. (물론 변화하는 젠더 관념에 따라 2010대에 들어서 <겨울 왕국> <모아나>와 같이 진취적인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는 작품이 나오기도 했다.)


 오죽하면 ‘신데렐라 콤플렉스’(남성에게 의탁하여 안정된 삶을 꾀하려는 여성의 심리 상태)라는 말까지 나왔겠느냐? 키이라 나이틀리가 자기 딸에게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보여주지 않겠다고 한 심정이 이해가 간다. 나는 뭘 보고 자라서 남에게 의지하는 걸 싫어하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목구멍에 독사과 조각이 걸렸다면 내가 직접 하임리히법으로 사과 조각을 빼내리. 질식하기 직전인데 언제 꽃 침대에 누워 왕자님의 키스를 기다리나. 신데렐라였다면 계모 가족 고소할 방법을 궁리해서 열심히 증거를 모은 뒤 위자료 챙기고 독립할 거다.


 디즈니 공주들이 왕자와 결혼해서 정말로 'happily ever after' 했는지 안 했는지는 굳이 말 안 해도 알 것 같다. 태생이 왕족이 아닌 사람이 순수 혈통의 왕족을 만나 평생 행복하게 살 확률이 얼마나 될까? 처음에야 서로 젊고 만난 지 얼마 안 됐으니까 좋을지는 몰라도 콩깍지가 벗겨지면 끝 아닌가! 성 안에서 고독하게 늙어 죽을 바에야 엘사와 안나처럼 자유연애 마인드로 서로 의지하며 사는 게 나을 것 같다.






 5월 초에 사촌 오빠가 결혼식을 올린다. 사촌 언니 오빠 결혼식만 벌써 몇 번 짼 지. 비혼주의라고 해서 사촌들 결혼식 가서 깽판 친 적은 한 번도 없다. 조용히 앉아서 박수 쳐주고 사진 찍다 올뿐이다. 결혼하겠다는 분들을 욕하고 무조건 반대하는 입장도 아니다. 내가 이렇게 다른 사람들의 선택을 존중하고 축하해주듯이 다른 분들도 나의 선택을 믿고 존중해줬으면 한다. 요는 서로 내 말이 맞다고 자기 의견 떠밀지 말라는 거다. 세상에는 다른 사람들이 넘쳐나지만 다르다고 틀린 건 아니니까. 한 발 물러서서 응원해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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