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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람 Apr 19. 2019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해 보세요

후회가 남지 않도록 사는 법

첫 면접 이야기


 첫 면접 장소는 도쿄의 한 영화 회사였다. 우리 팀 순서가 되어 들어가니 자리도 정해져 있었고 테이블 위에 설문 조사지가 올려져 있었다. 면접관 세 분과 진행자 역할의 인사담당자 한 분 앞에 나를 포함한 다섯 명의 면접자가 앉았다.


 인사담당자분은 굉장히 진지하고 엄숙한 태도로 면접을 진행하셨다. 설문 조사 작성 시간과 답변 시간을 모두 칼 같이 타이머로 재며 우리를 관찰하셨다. 설문 조사 작성 시간에는 긴장해서 잘 쓰던 한자도 생각이 안 났고 글씨도 괴발개발이었지만 면접과 토론은 나름 잘했다고 생각했다. 천 만년 같은 두 시간이 흐른 후 이제야 끝났구나 싶었을 때 인사담당자분이 말씀하셨다.


-“나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해 보세요. 딱 1분 드립니다.”


다들 쭈뼛쭈뼛 눈치를 보고 있는데 이렇게 덧붙이셨다.



悔いがないように。 후회가 남지 않도록.



 그제야 한 명씩 손을 들고 입을 뗐다. 이때 내가 무슨 말을 하고 나왔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아마도 자기 PR이나 입사 후 포부 같은 거를 말하고 나왔겠지. 끝까지 정신줄을 붙잡고 나갈 때 의자 정리하기, 문 앞에서 인사 한 번 더 하기 스킬을 시전하고 나왔다.






마지막 면접 이야기

모든 순간 최선을 다했던가?


 YES라고 하기엔 너무 많은 후회가 남는 나날을 보냈다. 결과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했던 것도, 경주마처럼 달리기만 했던 것도 다 내 잘못이었다. 하루에 면접 세 탕씩 뛰고도 영화를 보러 가던 패기는 사라지고 탈락 메일이 쌓여감에 따라 점점 회피형 인간이 되어 갔다.


 17년 2월부터 6월까지 이어진 내 인생 첫 취준의 종지부를 찍은 건 6월 12일이다. 그날 있었던 전형만 잘 넘기면 최종 면접이었지만 도쿄까지 가서 나는 시간만 때우다가 왔다.


 면접 당일 교토에서 도쿄로 이동하기엔 시간적으로 무리여서 하루 정도 묵을 숙소가 필요했다. 신칸센 비용만 해도 왕복 3만 엔 이상. 여기에 호텔비까지 더하면 예산 오버다. 그래서 도쿄에 사는 고등학교 동창에게 SOS를 청했다. (첫 면접 보러 갔을 때도 신세 졌던 친구다.) 동창은 내가 집을 빌리는 동안 잠시 한국으로 떠난다고 했다. ‘이 친구 내정받았군.’이라는 직감이 머리를 때렸다. 


 보조키로 열고 들어간 친구 집. 폭죽 잔해, 마시다 남은 술잔, 뜯다 남은 선물 포장지, 그리고 애써 숨겨놓은 내정서. 누가 봐도 한바탕 축하 파티를 벌인 후였다.


면접 준비를 마치고 누웠지만 늦은 새벽이 돼도 잠이 오질 않았다. 11.JUN.17


 이제 곧 끝날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도쿄로 내려간 거였지만 그 광경을 본 나는 무너졌다. 울면서 엄마한테 전화를 했는데 혼이 났다.


- “그러게 거길 왜 기어 들어가? 어? 호텔비가 필요하면 엄마한테 얘기를 하던가!”


 전화를 끊고도 한참 동안 울다가 정신을 차리고 면접 준비를 시작했다. 다음 날 세미 정장을 입고 본사로 향했지만 멍만 때리다가 나왔다. 그룹 과제는 그래도 할 말 하면서 참가했지만 휴식 시간 뒤 이어지는 선배와의 면담 시간에는 입 다물고 빨리 끝나는 시간이 오기만을 빌었다.






취업 상담실 데스크에는 티슈가 놓여 있었다


 장장 네 시간짜리 면접 전형을 마치고 나와 나는 호되게 앓았다. 열이 나고 어지러웠지만 그 집에 일 초라도 더 있고 싶진 않았다. 몽롱한 정신을 커피로 깨운 뒤 편한 옷으로 갈아 입고 짐을 챙겨 나왔다. 지하철로 친구네에서 도쿄역까지 이동한 뒤 신칸센을 타고 교토역으로 가서 다시 지하철로 갈아탄 후에야 집에 올 수 있었다. 편의점에 들려 뭔가를 살 여력도 없어 그대로 침대에 다이빙했다. 열이 펄펄 끓고 아무것도 먹지 못해 손이 떨렸지만 몸살약 기운에 취해 잠들었다.


 며칠 뒤 학교 취업 센터에 가서 면담을 했다. 용기를 내서 갔지만 상담 데스크에 앉아서 지금 내 상황을 설명하고 있자니 눈물이 나왔다. 괜히 상담 데스크마다 티슈가 놓여 있는 게 아니었다. 울려고 간 건 아닌데 얘기를 할수록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돌아오는 답변은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이었다. 학교 취업 센터에 정보를 등록하면 나중에 연락을 주겠단다.


 상담을 마치고 나오는데 첫 면접에서 인사담당자분이 말씀하셨던 “후회가 남지 않도록”이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 나에게 실망한 마지막 면접이 끝난 후 하반기 시즌이 올 때까지 나는 휴식기에 들어갔다.






쉬어 갈 용기

아프지 않아도 괜찮다


 대학 3학년 때 까지는 정말 후회가 남지 않을 정도로 살았다. 노는 것도, 공부도, 연애도, 음주가무도 모두 청춘의 패기로 죽지 않을 정도로 했다. 내일은 없다는 모토와 나와의 약속은 지키자라는 다짐 사이에서 줄다리기하며 후회 없는 유학 생활을 보냈다. 가끔은 내가 이렇게 호사를 누려도 되나 싶었지만 청춘의 권리라 여기며 마음 가는 대로 살았다.


 폭주 기관차처럼 살던 나에게 브레이크가 걸리기 시작한 것은 3학년 2학기 때다. 내 학점 계산 실수로 4학년을 편하게 보내기 위해서는 12개의 수업과 세미나, 취업 준비를 병행해야 했다. 기말고사 기간에 엄마가 장기간 교토 집에 와서 지내는 바람에 그 스트레스를 밖으로 표출하지 못하고 오롯이 마음속으로 삭여야 했다. (결국 3학년 2학기 기말고사가 끝나고 최악의 성적표를 받았다.) 살도 빠지기 시작해 지구력과 집중력은 떨어졌지만 밤샘 작업 없이는 모든 일정을 소화할 수 없었다.


청춘은 아파야 한다고 강요하지 말았으면. 이미지 출처 : 드라마 <청춘시대> (JTBC, 2016)


 웹툰 <치즈 인 더 트랩>의 홍설이나 드라마 <청춘시대> 속 윤 선배도 새파란 청춘이지만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고 아프다. 그런 걸 보면서 내가 지금 이렇게 힘든 건 당연한 거다라고 생각하고 꾹 참고 지냈는지도 모르겠다. 청춘이면 깨지고 부딪혀야 한다는 착각 속에서 내 몸 망가지는 것도 모르고.






 그때의 나는 조바심에 잠식당해서 당장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했다. 쓸데없는 자존심 때문에 남에게 약한 소리 하는 것도, 기대는 것도 못 한채 ‘너는 참 열심히 사는 것 같아.’ ‘나는 너처럼 하라고 해도 못 할 거야.’라는 칭찬을 위안 삼으며 살았다. 4학년 1학기가 오기 전에 잠깐이라도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쉬어가는 시간을 가졌더라면 하는 후회가 남는다. 잠깐 여행이라도 다녀오라는 주위의 말을 무시하고 눈 앞의 과제, 기업 연구, 스펙 쌓기에만 연연했다. 하나가 끝나면 다음 하나가 기다리고 있었고 ‘이거만 끝나면 쉬는 거야’라는 약속은 뒤로 미뤄졌다.


쉬어갈 용기가 없어 이런 문구로나마 마음을 달랬다.


 그 이후로는 대담하게 내려놓는 연습을 하고 있다. 일본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것도 내려놓는 행위 중 하나였다. 졸업 후 백수가 되는 것이 무서워 간사이 공항에서 일하긴 했었지만 빨리 정신을 차리고 모든 걸 내려놓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공항은 한 달에 한 번 퇴사자가 발생하고 신입이 들어올 만큼 인 앤 아웃이 심하다. 그래서 동기들끼리 모이면 항상 나오던 주제가 ‘우리는 언제 그만둘까?’였다. 퇴사하고 유니폼을 반납하는 사람을 보면 부러운 한편, 따박따박 먹고살 만큼 돈이 들어오는 안정적인 생활에 안주하기 시작했다. 몇 개월이 지나고 보니 자투리 시간에 영화를 보고 글을 쓰겠다는 다짐은 사라지고 술고래가 되어있었다. 스트레스와 밤낮이 바뀐 생활로 인해 몸도 망가져서 더 늦기 전에 내려놓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있기도 해 보고 혼자 여행도 떠나보기도 하면서 나만의 인생 속도를 찾는 중이다.






그리고 지금,


 행복하다. 마음이 가볍고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생긴다. 기졸업자 반백수 신세지만 그 어느 때 보다 자신감이 넘치고 할 수 있다는 용기가 샘솟는다. 이렇게 마음을 먹으니 하는 일마다 잘 되는 기분이다.

 

이 년 동안 미룬 홋카이도 여행을 떠나 바라본 밤하늘과 설경. 26.MAR.19


 몸과 마음을 혹사시킨다고 해서 후회가 남지 않는 인생일까? 내가 얻은 정답은 NO다. 후회가 남지 않도록 사는 법의 첫걸음은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주위를 돌아보는 마음을 갖는 것이었다. 마지막은 초등학생 때부터 함께 해온 웹툰 <낢이사는이야기> 시즌 3 엔딩에 나왔던 말로 끝맺고 싶다.



오랫동안 나는 진정한 삶이 곧 시작되리라 믿었다.

그러나 내 앞에는 언제나 온갖 장애물과 먼저 해결해야 할 일들이 있었다.

아직 끝내지 못한 일들과 바쳐야 할 시간들과 갚아야 할 빚이 있었다.

그런 다음에야 삶이 펼쳐질 것이라고 나는 믿었다.

마침내 나는 깨닫게 되었다.

그런 장애물들이 내 삶이었다는 것을.


-알프레드 디 수자


네이버 웹툰 <낢이사는이야기> 시즌3 마지막화-생각 없이 웃으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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