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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람 Jun 18. 2019

프란시스 하, 보통의 존재를 살아간다는 것에 대하여

<프란시스 하> (노아 바움백, 2012)

To. 조연이 되어버린, 하지만 여전히 주인공을 꿈꾸는 이들을 위해


보통의 존재에 대하여


 사회초년생 시절 저를 가장 괴롭혔던 것은 내가 ‘보통의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었습니다. 백일섭 할아버지가 잘 생겼다고 말하는 엄마 눈에는 제가 제일 예뻐 보였고, 1등이 되지 않아도 괜찮다는 할머니 기준에서 저는 아주 특별한 재능을 가진 천재였습니다. 물론 실제 사회에 나가서 아니란 걸 깨달았지만요.


 대학 졸업 후 일본 간사이 공항에서 근무하던 시절 보통이 주는 허무함이 저를 괴롭혔습니다. 에어라인 그라운드 핸들링 하청 업체 소속, 그중에서도 제일 말단 파견 직원. 주어진 시프트에 따라 출근해서 비행기를 띄우고, 점심시간에는 동료들이 해주는 남 연애 이야기 듣고, 퇴근 시간이 되면 집으로 가는 게 전부였습니다. 인스타그램 피드에 보이는 카페 투어, 여행, 연애, 대학 졸업 동기 라인방에 올라오는 명함 사진, 자기 얼굴이 실린 회사 잡지……. 모두 남 얘기였습니다. 글쓰기조차 하지 않았었던 그때는 하루하루 나를 특별하게 해 주던 것들이 모래알처럼 흩어져 사라지는 허무함에 가슴 아파했습니다.






가장 보통의 뉴욕에서 만나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

<프란시스 하> (노아 바움백, 2012)


 뉴욕 브루클린에 사는 ‘프란시스’도 사회에 나와 주인공이 되지 못한 채 조연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최고의 무용수가 되겠다는 꿈이 있지만 현실은 언더스터디를 전전하다가 은퇴할 위기에 놓여있죠. 남자 친구는 요새 별로였다라는 말을 뒤로 그녀를 떠나고, 같이 살던 친구 ‘소피’는 집을 나간다고 해서 돈도 없는데 새로 지낼 곳을 찾아야 합니다. 가끔은 그녀에게도 좋을 일이 일어나고 사람들이 그녀에게 상냥한 말을 해주면 좋을 텐데 콩고물은 모두 다른 이들에게 돌아갑니다. 그런 상황에 호탕하게 웃으며 대수롭지 않은 듯 넘기지만 조연이 되는 게 익숙해진 프란시스의 모습이 씁쓸하기만 합니다.


남자와의 이별과 베프의 이사 통보.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리. 이하 이미지 출처 : <프란시스 하> (노아 바움백, 2012)


 친구들은 모두 자기 할 일을 찾아서 척척 해내는 한편, 꿈이 있어도 이루기 위해 어떻게 노력하면 좋을지 감을 못 잡는 프란시스의 모습에서 제 모습이 보여서 더 그랬나 봅니다. 고백하자면 저는 별 일 없으면 현실에 안주하는 될 데로 돼라 형입니다. 그래서 같은 처지에 다른 꿈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을 보면 내가 초라하게 느껴지고 조바심이 나지만 혼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그런 모습이 프란시스와 닮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를 이끌어 주고 새로운 것을 공유해줬으면 좋겠지만 이미 그럴 나이는 지나 ‘혼자’의 힘으로 타성을 돌파해야 할 시기에 놓여 있는 프란시스는 과연 홀로서기에 성공할 수 있을까요? 






대도시와 청춘


 그러고 보니 청춘을 그린 작품에서는 대도시를 배경으로 하는 경우가 많네요. <라라랜드> (데미언 셰젤, 2016)는 꿈의 도시 LA에서 피아니스트와 배우의 꿈을 키우는 세바스찬과 미아의 이야기이고, <브루클린> (존 크로울리, 2015) 은 아일랜드에서 뉴욕으로 이민 온 에일리스의 이야기를,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데이비드 프랭클, 2006)는 뉴욕에 위치한 패션 잡지사에 입사해 고군분투하는 앤디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꿈과 열정으로 가득 차있는 청춘을 시험하기라도 하는 듯 도시는 그들에게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회초년생이 겪을 수 있는 모든 고민을 함축한 곳으로 그려지죠. 직장, 인간관계, 집세, 치안, 외로움. 화려한 도시의 불빛에 대비되는 청춘의 모습은 그들의 고민을 더 사소하고 하찮게 만들고, 결국 청춘은 특별할 것 없이 도시의 변두리에서 하루살이처럼 사는 존재로 그려집니다.


꿈의 도시 뉴욕에 거주하지만 제대로 된 주전자 하나 없어 냄비에 물을 끓이는 프란시스. 옛날 자취하던 시절이 생각난다.






 박민규의 첫 소설집 『카스테라』에는 청춘의 암울한 이면이 잘 담겨 있습니다. 총 열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하나같이 사회초년생 힘들고 배고팠던 시절의 일들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래도 나름 먹고 살 돈을 벌겠다고 지하철 푸쉬맨도 해보고 오리배 알바도 하는 ‘사람’들이 주인공이지만 고유의 이름을 가진 객체가 아닌 알파벳, 동물과 같이 누구에게나 적용 가능한 특성을 가진 보통의 존재로 묘사되죠.


그랬구나, 그때도 B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끝이었다. 실질적으로 밴드는 해체되었고, 나는 이곳의 인턴사원이 되었다. 그저 미안할 뿐이었고, 지금도 미안할 뿐이다. 그사이 전화로 안부를 묻는 것도 B였지 내가 아니었으며, 오늘 낚시를 제안한 것도 B였지 내가 아니었다. 나라는 인간은 – 겨우 기어나와 너구리 따위의 고민을 늘어놓는 게 고작이었다.

『카스테라』  박민규 지음, 문학동네, 2005, 51-52pp.


 위 인용은 수록 작품 중 하나인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의 일부입니다. 무언가 이루겠다고 도시로 올라왔을 텐데 특별했던 학창 시절의 꿈은 사라지고 현재는 그냥 부장(너구리) 때문에 스트레스받는 인턴이 되어 친구에게 하소연을 늘어놓는 처지가 됐을 뿐입니다. 나머지 단편도 별 다를 건 없습니다. 원룸, 고시원에서 하루 벌고 하루 먹고 외롭게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그리고 있죠. 모두 확실한 엔딩 없이 그저 그렇게 보통의 존재로 살았던 시절의 일부를 회상하다 끝이 납니다. 커피가 자기 시급보다 비싸서 ‘고객님 주문하신 커피 나오셨습니다’라고 말하는 웃픈 대한민국 청춘들의 힘든 단면만 잘 뽑아냈다고 할 수 있겠죠.


 『카스테라』에 비하면 <프란시스 하>는 아주 조금 희망적입니다. 무작정 파리로 떠나지만 별 소득 없이 돌아오고 소속된 무용단에서는 무용수가 아닌 사무직원으로 일하게 됩니다. 무용수로서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연출에는 재능이 있는지 자신이 담당한 작품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월세 낼 돈이 없어 애인도 아닌 남자와 한 집에 살던 시절은 뒤로 하고 자기만의 방을 얻는 데 성공합니다.






<프란시스 하>가 흑백으로 시작해 흑백으로 끝나는 이유

한 단계 성장했지만 아직은 미완성인 인생


 <프란시스 하>는 흑백 영화입니다. 아주 옛날 일을 그리고 있는 것도 아닌데도요. 사전 정보 없이 영화를 보게 된다면 모노톤의 화면 속에서 울리는 아이폰 기본 벨소리가 그렇게 이질적으로 들릴 수가 없습니다. <쉰들러 리스트> (스티븐 스필버그, 1993)처럼 중요한 순간 컬러로 전환되는 것 같은 효과는 없으며, 시작부터 프란시스가 홀로서기에 성공한 순간까지 흑백 화면이 이어집니다. 보통 흑백으로 찍는 이유는 시대상을 반영하거나, 잔인한 묘사를 중화하거나 하는 이유에서지만 <프란시스 하>는 해당사항이 없습니다. 감독은 그저 모노톤의 담담한 시선으로 프란시스의 홀로서기를 좇을 뿐입니다. 프란시스가 집을 얻는 장면으로 끝이 나지만 어쩌면 진정으로 홀로서기에 성공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생을 활짝 피우기 위한 한 계단을 올라간 것뿐이기 때문에 극적인 전환은 없었던 게 아닐까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프란시스의 풀 네임은 ‘프란시스 하’ (Frances Ha)가 아닙니다. 이사한 집 현관 우체통에 이름표를 끼우기 위해 종이에 진짜 이름 프란시스 할라데이 (Frances Halladay)를 써서 들고 내려가지만 철자가 너무 많아 Frances Ha에서 잘리고 말죠. 꿈을 이루기 위한 터전으로 집은 얻었지만 아직은 끝이 아니라는 걸, 언젠가는 본인 풀 네임을 쓸 수 있는 더 큰 성공을 이룰 수 있다는 걸 말하기 위해 흑백 화면으로 끝이 납니다.






주인공이 되는 그 날까지


 이름하니까 생각난 건데 일본 간사이 공항에서 근무할 때의 일입니다. 정식 이름표가 나왔지만 서류 미스로 An Ga Ram 이 아니라 An Ga Ramp라고 적힌 이름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퇴사할 때까지 1~2개월 차가 달고 다니는 종이 이름표를 달고 다녀야 했습니다.


 또 한 번은 사고를 친 날이었습니다. 11시 퇴근임에도 불구하고 새벽 1시까지 남아 뒤처리를 하고 보고서를 쓰고 지점장님이 돌아오길 기다렸습니다. 지점장님은 사무실에 있던 사람들한테 다 들릴 정도로 제가 쓴 보고서를 읽어 내려갔습니다. 잘못한 내가 죄인이니 그러려니 했습니다. 그런데 근무한 지 반년이 넘어갔을 때였는데도 제 이름 하나 제대로 모르시고 ‘안가람’ 이 아닌 ‘야스 가라무’라고 발음하시더군요. 그때 참으로 내가 이 작은 회사에서 보통보다 못한 존재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잘못해서 보고서를 써서 서러운 게 아니라 이름 하나 제대로 불리지 못하는 외국인 노동자라는 사실이 더 서러웠습니다. 그리고 다짐했습니다. 적어도 이름은 제대로 불러주는 회사에서 일하자고.


 언젠가 이름도 없는 보통의 존재가 아닌 내 이름 석자 제대로 펼칠 수 있는 날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이것저것 시도하고 있습니다. 잘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흑백에서 컬러로 바뀔 그 순간이 멋지게 왔으면 좋겠네요.


From. 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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