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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ramoi Sep 21. 2021

인생의 후반 4

둘째 아들

70세에 들어서도 그녀는 농사일을 멈추지 않았다. 비록 모든 농사일을 부모로부터 넘겨받아 그 규모를 대략 10배 정도 키워놓은 둘째 아들의 일을 조금이나마 도와주는 역할이었지만, 작은 크기의 블루베리 과일을 따내는 일 등과 같이 나이 드신 아주머니들을 모시고 일을 진행할 때 그녀의 역할은 아직 작지 않았다. 동네 아주머니 대여섯 명을 구해서 과일을 따기로 한 날이면 그녀는 예전처럼 묘하게 흥분상태에 빠진 채, 모든 열과 성의를 다하여 둘째 아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였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이는 시간을 체크했고, 그날 마무리해야 할 비닐하우스의 상태를 점검했고, 아주머니들에게 과일의 상태에 따라 과실을 따는 방법을 설명했다. 새참과 점심을 미리 준비해서 자칫 무의미하게 기다리다 지나가는 시간을 최소화하는데 집중하였다. 비닐하우스 한 동에 들어서면 그녀는 누구보다 빠른 손놀림으로, 상품성이 있는 과실 - 즉, 잘 익어서 지금 꼭 따주고 공판장에 내어가야 하는 과실 - 을 정확하게 구분하여, 과실 바구니를 채우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비닐하우스의 주인이 그리 앞서 나갈 때 품삯을 받는 처지에서 미적거리기는 쉽지 않은 노릇이다. 근방의 아주머니들은 그녀의 집에서 일하게 되는 날이면 속으로 일종의 각오를 하고 일터에 들어선다. 그런 날이면 둘째 아들은 그녀가 일하는 시간과 장소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으므로, 그 시간은 온전히 다른 일에 투입할 수 있었다.


둘째 아들

그녀에겐 둘째 아들이 있었다.


그는 젊은 날 대전에서 잠시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평생 땅과 더불어 살겠다는 결심을 하고 부모가 있는 시골마을로 돌아왔다. 어렸을 때부터 몸과 마음이 강건하였고, 형제에게 많은 것을 양보할 줄 알았고, 부모의 야심과 그것으로 비롯된 어려운 사정을 어떤 형제보다 일찍, 깊게 가슴에 새겼다. 어려서부터 학업에 특별한 재능을 보인 형에게 부모의 관심이 쏠리는 것을 어린 둘째 아들은 구김살 없이 받아들였다. 형의 학업을 지원하기 위해 엄마와 아빠가 서울과 고향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갖은 고생을 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그들의 진심을 어린 가슴에 자연스럽게 새겨 넣었다. 엄마가 서울에 있을 때, 아빠가 서울에 올라갔을 때 둘째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품에서 잠이 들었다. 형에게 부모님의 모든 관심과 지출이 집중될 때 둘째는 진심으로 형을 자랑스러워했고 엄마 아빠가 소망하는 방향으로 모든 일이 이루어지길 진심으로 바랬다. 


전교에서 가장 우수한 성적으로 농업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측량기사 자격증을 땄고, 군대를 제대하고 일종의 특별 자격으로 대전 00구청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였다. 2년간의 구청 생활을 누구보다 성실하게 보냈기 때문에 그는 그 겨울만 지나면 '특수' 공무원에서 '특수'를 떼고 정식 공무원이 될 수 있는 조건을 확보했다. 그 도시에서 (결과적으로) 마지막 겨울이 닥쳤을 때 둘째는 지금도 가슴에 흔적이 남아 있을 정도의 지독한 독감을 앓았고, 그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 고향땅으로 돌아올 결심을 굳힌다. 간단한 독감인 줄 알았는데, 2주일 동안 구청에 출근조차 하지 못했다. 병원에서는 단순 독감으로 진단하고 그에 맞는 약을 처방해주었으나 이상하리만치 효과가 없었다. '이 정도 건강한 몸이면 어렵지 않게 털어낼 수 있을 텐데...' 가까스로 병원문을 열고 들어서는 둘째를 보면서 의사는 혼잣말을 되풀이했다.


그녀에게 연락하지 말라는 둘째의 당부로 선임은 한동안 잠자코 있었으나,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깨닫고 둘째의 고향마을에 연통을 넣었다. 다음 날, 그녀는 아이에게 먹일 것을 준비하느라 하루종일 부산스러웠고, 시간이 더디가서 초조하였다. 대전을 거쳐 신탄진 자취방에 도착했을 때 둘째 아들은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말라 있었다. 근방 어디에 내놔도 지지 않을 다부진 몸을 가진 둘째였다. 국민학교 초등학교 고등학교 때 모두 단거리 달리기 학교 대표였고, 면대 표까지 종종 뽑히던 아들이었다. 그런 아들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아들은 2주간의 독감으로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되어 있었다.


둘째는 도시와 맞지 않았다. 도시의 모든 속성과 맞지 않았다. 건물, 사람, 경쟁, 공기, 협소함, 복잡함, 매정함.. 모든 것이 동생의 심성을 해치고 있었다. 들, 바람, 산, 나무, 나의 몸, 나의 노동, 땀이 동생에게 빠져나가는 동안 둘째는 안으로부터 무너지고 있었다. 자신이 도심생활에 절대 맞지 않는다는 것을 둘째는 첫해 첫날부터 강하게 깨닫고 있었다. 둘째가 느낀 것은 극도의 답답함과 원인모를 메스꺼움이었다. 푸르게 / 열린 / 너른 / 시골의 들판과 산이 한순간도 가슴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 생활을 접고 시골로 돌아가겠다는 말을 둘째는 차마 그녀에게 할 수 없었다. 둘째 아들이 비록 특수직이지만 공무원이 되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그녀는 큰아들이 서울의 내놓으라 하는 대학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보다 더 크게 기뻐했다. 큰아들을 대학에 보내고 나서야, 그녀의 눈과 가슴에 둘째가 들어왔고, 지난 긴 시간 동안 묵묵히 모든 것을 이해해준 둘째가 고마웠다. 그런 와중에도 일체 비뚤어지지 않고 오히려 마음까지 강하고 넓은 아이로 성장해준 게 말할 수 없이 미안하고 고마울 따름이었다. 둘째가 공무원이 되었다는 것은 그녀에겐 일종의 면죄부와 같았다. 모든 미안함을 한 번에 해소하는 것이었다. 첫째에게 쏟은 정성과 고생에 비하면 둘째에게 쏟은 것은 보잘것없었다. 그만큼 둘째가 거둔 결실은 더 애틋하고 미안하고 고마운 것이었다. 그런 그녀의 속마음을 둘째가 모를 리 없었기 때문에, 둘째는 어떤 식으로든 이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갖는 노력을 다하였으나, 체질적으로 본성에서 맞지 않는 것을 넘어설 수는 없었다.  


신탄진 자취방에서 엄마는 둘째를 위해 정성 어린 밥상을 차려내었다. 시골에서 가져온 된장으로 찌개를 끓였고, 서천장에서 봐온 조기, 박대를 구워냈고, 홍산장에서 봐온 김과 젓갈, 시골 장독대에서 갓 담아온 김치를 썰어 내었다. 그날 아침 방앗간에서 갓 찧어온 쌀로 밥을 지었다. 둘째가 제일 좋아하는 것들로 시골밥상이 차려졌을 때, 둘째는 밥상에 놓인 모든 것을 천천히 오래도록 씹어서 목으로 넘겼다. 마치 한점 한점, 한 톨 한 톨.. 음미하듯, 알약을 씹어 삼키듯.. 엄마가 차려준 밥상에 놓인 모든 것을 일체 남김없이 모두 목으로 넘겼다. 둘째가 밥을 먹는 동안 엄마는 살짝 남은 누룽지에 물을 부어 숭늉을 만들어 내었다. 둘째는 두 손으로 숭늉이 담긴 그릇을 조심스럽게 들어 올려 천천히 한 숨으로 들이마셨다. 숭늉을 다 마시고, 깊게 숨을 들이쉬었고, 깊게 눈을 감았다... 천천히 눈을 떴다. 그 눈은 다시 강건한 둘째의 그 눈빛이었다. 그 눈빛으로 둘째는 엄마를 쳐다보았다. 둘째의 얼굴에 특유의 눈웃음이 비로소 살아났다.


"엄마, 이제 살 것 같네." 둘째의 목소리는 평소 막내의 해맑은 그 목소리로 돌아와 있었다. 무엇이 문제였던 것일까? 둘째와 그녀는 사뭇 길게 침묵했다. 그녀는 자신의 생각이 움직이는 방향을 내심 확인하였고, 둘째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직감을 하고 나서 낮게 탄식했다.


"엄마, 나는 시골에서 살아야겠어". 낮은 탄식. 그녀는 차마 그러지 말라고 못한 채, 다시 낮게 탄식했다.


"도시에서는 형이 번듯하게 자리를 잡을 것이니... 나는 시골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살아도 되지 않겠어?" 둘째는 일부러 가벼운 결정이라는 듯 그녀에게 동의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었다.


애초에 공무원이나 회사원 생활을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미련이 남지는 않을 것이다. 평생  논과 밭에서 피와 땀을 뿌린 이유가 자식들만큼은 이 바닥에서 살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형에 비해 둘째 아들에게 해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둘째는 항상 뒷전이었다. 그녀의 대부분의 시간과 정신적인 집중은 늘 큰아들에게 향했다. 그럴 때마다 둘째는 혼자 남아 엄마 없는 공간과 시간을 지켜내야 했다. 해준 것이 아무것도 없었는데 둘째 아들은 왜 이리 잘 컸을까? 서울에서 내려올 때마다 그녀의 귓전에는 둘째 아들에 대한 칭찬이 가까이서 멀리서 항시로 날아들었다. 엄마가 시골로 돌아올 때마다 둘째는 항상 거기에 있었고 별 말이 없었고 조금씩 몸과 마음이 강건해져 갔다. 중학교에 들어서자 능숙하게 경운기를 다룰 수 있어서 학교를 마치면 곧바로 들농사로 '스스로' 향했다. 밤에는 근방의 친구들과 오토바이를 타고 멀리까지 달려 나아갔다 오고는 했다. 그게 둘째의 유일한 낙이었다. 


(그 시절 둘째의 오토바이에는 그 중학교에서 공부도 제일 잘하고 선망을 받는 여학생이 타고 있었다고 했다. 여자 아이가 대전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기 위해 이사를 하면서 둘은 헤어졌다. 여자아이는 대전에 있는 고등학교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어 서울의 한 여자대학교 한의학과에 진학했다. 대학교 입학시험을 보기 일주일 전 주말에 여자아이는 혼자 버스를 타고 시골마을로 와서 둘째를 만났다고 한다. 둘째는 예전처럼 여자아이를 오토바이 뒤에 태우고 밤새도록 이곳저곳을 달렸다. 여자아이는 새벽 첫차를 타고 대전으로 돌아갔고, 둘째는 오토바이를 타고 집에 돌아와 일터로 나갔다. 그게 그들의 마지막이었다.)


둘째는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것을 스스로 포기하고 시골마을 근처 홍산면에 위치한 농업고등학교에 진학하였다. 그녀로서도 그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그때부터 둘째는 자신의 미래의 모습을 정해두고 있었던 것 같았다. 둘째는 농업고등학교에서 가장 건실하고 우수한 학생으로 종종 선발되어 타 지역 연합행사에 참여하였고, 유례없이 2학년 3학년 내내 전체 학생회장/연대장으로 뽑혔다. 학교에서 지원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성실히 이행하면 여러 가지 자격증을 확보하는 것이 가능했는데, 둘째는 그중에서 난이도가 제일 높다고 하는 측량기사 3급/2급 자격증을 따냈다. 당시 군청이나 구청의 토목 부서에는 (공무원 필기시험을 거치지 않더라도 특수한 목적의 기술 자격증을 갖춘) 특수직군의 '준'공무원 자리가 있었고, 둘째는 무수한 사람들의 추천을 받아 대전 00 구청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둘째가 대전 00 구청에서 근무하게 되었다는 걸 듣는 순간, 그녀는 기쁨과 미안함과 행복함에 겨워 가슴속으로 깊게 울었다. 첫째에게 모든 시간과 고생을 투입하는 동안,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지원하거나 도움이 될만한 것을 해준 게 없는데, 둘째는 아무 말 없이 그녀가 원하는 아이로 성장해 준 것이다. 큰 아이 한 녀석을 위해 쓰라리고 힘든 날을 보냈다고 스스로 위로하고 있을 때, 둘째는 불식 간에 그녀에게 다가와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이렇게 속삭이는 듯했다. '그렇지 않다, 당신들 덕에 나도 이렇게 잘 컸다. 자식 하나가 아니라 둘 모두 잘 되었으니 당신들이 고생한 시간은 아깝지 않은 것이고, 기쁨과 보람도 두배가 되었으니, 너무 후회나 회한 갖지 마시라'


둘째가 스스로 농업고등학교를 선택할 때, 그의 인생의 방향은 명확하게 결정 나 있었다. 자신의 곧은 의지와 심성이 지향하는 곳을 한 티끌의 후회도 없이 선택한 것이다. 중학교 내내 자신의 오토바이에 앉아 울면서 설득하던 여자아이의 바람도 그의 심성이 가리키는 곳을 바꿀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헤어질 수밖에 없었고). 그런 그가 측량기사 자격증을 따고 공무원의 길로 들어서기로 잠시 마음먹었던 것은 온전히 그의 엄마 때문이었다. 시골을 벗어나는 삶을 아이들에게 주고자 했던 그녀의 바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꿈 때문에 평생을 고생했던 그녀를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에, (담임 선생님이 측량기사에 관한 얘기를 둘째에게 전달했을 때) 둘째는 선뜻 측량기사 시험공부를 시작했고 어렵지 않게 3급/2급을 통과한 후, 00구청에서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 삶이 둘째의 삶이 아닌 것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명확해졌다. 나무와 산과 들이 없는, 매연과 차량과 콘크리트 빌딩에서 매일을 살아야 하는 것을 둘째의 몸은 본능적으로 거부하고 있었다. 시골에서는 학교/면/군 단위의 모든 체육행사에서 각별한 우위를 드러냈던 몸이 조금씩 아프기 시작했다. 눈으로 보이는 것, 숨으로 들어오는 것,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이 그의 머리와 심장과 내부를 헤치기 시작했다. 대부분 시간을 앉아서 보내야 하는 사무공간은 너무 좁았고, 좁은 공간에 너무 많은 사람이 뒤척이고 있었고, 그 공간은 사람들이 내뱉는 피로한 숨과 역겨운 냄새로 덮여있었다. 술과 담배가 체질적으로 맞지 않았던 둘째에게 거의 매일같이 진행되는 직장인들의 저녁 회식자리는 직접적으로 그의 육체를 아프게 했다. 


일종의 향수병이라고 부를 있는 현상이 둘째를 지배하고 있었고, 거기에 육체적 고통이 수반되었다. 시골에 두고 강아지와 소, 친구들과 뛰놀던 들과 산이 그의 눈과 마음에서, 그의 몸에서 떠나지 않았다.  


유난히 추웠던 두 번째 겨울이 닥쳤을 때, 그의 몸과 마음 상태가 거의 바닥에 다다랐을 때, 그 지독한 독감이 찾아왔다. 어떤 힘도 낼 수 없는 상태가 2주 동안 지속되었다. 일어나 걷기조차 힘들었다. 어떤 약도 듣지 않아 가까스로 견디는 것이 한계에 다다랐을 때, 그녀는 시골에서 가져온 것으로 밥상을 차려 아이를 먹이고 아이를 살렸고, 아이 손을 잡고 시골마을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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