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울증, 단순한 기분 변화가 아니라고?

내 마음을 제대로 알기 위한 첫걸음

by 해나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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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삶이 롤러코스터보다 더 가파르고 예측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롤러코스터는 최소한 언제 올라가고 언제 내려올지 정해져 있지만, 나의 감정은 그렇지 않았다. 기쁨이 어디서 시작되어 어디서 끝날지 알 수 없었고, 우울이 언제 시작되어 언제쯤 바닥을 칠지도 알 수 없었다.


원래 감정이 풍부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조금만 기분이 좋아도 하늘을 나는 것 같았고, 작은 일에도 쉽게 좌절했다.


너는 기분이 롤러코스터 같아!


친구들은 가볍게 말하곤 했다.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타고 있는 이 감정의 롤러코스터가 너무 빨라지고 있었다.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예상하지 못한 속도로 질주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롤러코스터는 곧 나의 일상을, 나의 인간관계를, 나의 삶 전체를 흔들어 놓기 시작했다.






기분 변화 vs. 조울증, 뭐가 다를까?

기분이 변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누구나 좋은 일이 생기면 기분이 좋아지고, 나쁜 일이 생기면 우울해진다. 하지만 조울증은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조울증은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내 감정을 휘두르는 것처럼, 내 의지와 상관없이 극단으로 몰아간다.


조증이 찾아오면 세상이 전혀 다르게 보인다. 모든 것이 찬란하고, 인생이 특별해 보인다. 엄청난 에너지를 얻고, 머릿속이 온갖 생각들로 가득 차면서 쉬지 않고 말하고 움직인다. 새벽까지도 눈이 말똥말똥하고, 피곤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갑자기 운동을 시작하거나, 미뤄둔 집안일을 끝장내고, 사람들에게 연락을 돌린다.


이거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감이 솟구친다. 갑자기 커다란 계획을 세우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평소에는 생각도 못 하던 일들이 너무 쉬워 보이고, 사람들에게도 거리낌 없이 다가간다.


하지만 그 끝이 너무나도 허무하다.


어느 날 갑자기, 마치 푸른 하늘이 검은 먹구름으로 덮이듯이, 바닥을 친다. 어제까지만 해도 넘치는 아이디어로 가득 차 있던 머릿속이 텅 비어버린다. 어제까지 환희에 찼던 나는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나는 왜 그랬을까’라는 후회만이 남는다.


조증과 우울, 이 두 얼굴을 오가면서 나는 점점 혼란스러워졌다. 도대체 어떤 내가 진짜 나일까? 조증일 때의 나? 우울할 때의 나? 아니면 그 사이 어딘가에서 애써 균형을 잡으려 애쓰는 나?






조울증, 흔한 오해들

조울증을 처음 진단받았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감정은 ‘설마 내가?’였다.


조울증이라고 하면 드라마에서 보던 극단적인 모습을 떠올렸다. 감정을 조절 못 하고 폭발적으로 화를 내거나,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 하지만 나는 화를 잘 내지도 않았고,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감정을 드러내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조울증이었다.


조울증은 단순한 감정 기복이 아니다. 감정의 진폭이 너무 크고, 그 변화가 너무 급격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은 그 감정 변화가 내 통제 밖에 있다는 것이다. 단순한 기분 변화라면 ‘아, 오늘은 기분이 좀 다운되네’ 하고 넘길 수 있겠지만, 조울증은 그렇지 않다. 감정의 소용돌이가 나를 완전히 집어삼키고, 나는 그 안에서 허우적거릴 뿐이다.


게다가 조울증은 꼭 ‘하루에도 몇 번씩 기분이 바뀌는 병’이 아니다. 내 경우에는 몇 주, 몇 달 단위로 기분이 바뀌었다. 몇 달 동안 활력이 넘쳤다가, 어느 순간부터 몇 달 동안 침대에서 일어날 힘조차 없어졌다.






진단받기까지, 그리고 그 이후

꽤 오랫동안 스스로를 의심했다. ‘그냥 감정 기복이 심한 사람 아닐까?’, ‘너무 예민해서 그런 거 아닐까?’ 하지만 어느 순간, 그 감정의 변동이 너무 극단적으로 변하면서 일상생활이 어려워졌다.


병원을 찾았을 때, 의사는 내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 기분이 지나치게 들뜨는 기간이 있나요?

- 잠을 거의 안 자도 피곤하지 않은 날이 있나요?

- 평소보다 지나치게 말이 많아지는 때가 있나요?

- 이유 없이 우울해지고 무기력해지는 시간이 길게 지속되나요?

- 충동적인 행동(과소비, 무리한 계획 세우기 등)을 한 적이 있나요?


하나둘씩 ‘네’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단순한 감정 기복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조울증을 가진 사람이었다.






조울증, 그 끝없는 롤러코스터 위에서

조울증을 안고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가장 힘들었던 것은 조울증 자체가 아니라, 내가 왜 이러는지 몰랐던 시간들이었다.


이제는 내 감정을 의심하지 않는다. 기분이 들뜨면 ‘지금 조증이 오려나?’ 하고 스스로를 살핀다. 우울기가 오면 ‘지금은 좀 쉬어야 할 때인가 보다’ 하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필요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조울증이 나를 정의하지는 않는다. 나는 조울증을 가지고 있지만, 조울증이 내 전부는 아니다.


오늘도 나 자신을 이해하는 연습을 한다. 어쩌면 평생 이 롤러코스터를 타고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는, 어디서 급커브가 나올지, 언제 내려갈지를 조금은 예측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롤러코스터에서 내릴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내 삶은 여전히 계속된다. 여전히 살아가고 있고,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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