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내 마음에도 빨간불이?

조울증 체크리스트 10가지

by 해나결


조울증, 신호등 그림JEPG.jpg


아침 해가 환하게 떠올랐지만, 나는 여전히 까만 밤에 갇혀 있는 기분이다. 거실에 앉아 tv로 만화를 보고 있는 아들, 그 모습을 그저 멍하니 바라본다.


'엄마가 이래서 미안해...'


배고플 텐데, 표현 안 하고 그저 가만히 있는 아들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이 북받쳐 오른다.


7년 전, 아들은 태어나자마자 투병생활을 했고, 결국 목에 구멍을 뚫는 기관절개 수술을 했다.


‘선천적 기관협착증’


이것이 우리 아들의 병명이었다. 2번의 수술 끝에 결국 생후 6개월에 기관절개술을 했다. 그 후로 단 한마디도 울음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의사는 아들이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말을 배우는 게 다른 아이들보다 어려울 수 있다고 했다. 언제 기관절개관을 뺄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평생 해야 하면 평생 말을 하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 얘기를 듣는 내내 숨이 막혀왔다. 내 상황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기역 하고 니은?"


아침을 먹이고 나니, 낱말 카드를 들어 보인다.


"..."


아들은 입모양으로 따라 해 보려 하지만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하… 이럴 때마다 미칠 것 같아...'


절망감이 엄습해 온다. 이런 내 모습이 원망스럽다.


그런데 이상하다... 불과 지난달까지만 해도 나는 신이 나서 육아를 하면서도 집에서 돈 벌 수 있는 방법들에 대해서 계획들을 세우고 있었다. 천천히 생각해도 된다는 신랑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밤낮으로 정보를 찾아다녔다.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지금은 무기력함이 온몸을 짓누른다. 내가 아무리 발버둥 친들 아들의 현실이 변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에 가슴속 저 한편이 답답해져 온다. 숨을 쉬기가 힘들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막막함에 사로잡혀 있다.


'도대체 내 마음은 왜 이렇게 왔다 갔다 하는 걸까...'


극과 극을 오가는 이 감정의 롤러코스터. 순간 떠오르는 병명이 있다.


조울증.


그러고 보니 내 상태가 조울증 증상들과 묘하게 닮아있는 것 같았다.






조울증 자가진단 체크리스트


1. 기분이 들떴다가 가라앉는 것이 반복되나요?

2. 과도하게 들뜬 상태에서는 수면 욕구가 줄고 말이 많아지나요?

3. 들뜬 기분일 때 충동구매를 하거나 무모한 행동을 하나요?

4. 우울한 기분일 때는 무기력함과 절망감이 지속되나요?

5. 식욕과 체중에 큰 변화가 있나요?

6. 일상생활과 대인관계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기분 변화가 심한가요?

7. 자신이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느껴지거나 과대망상적 사고를 하나요?

8. 우울한 시기에 자살충동을 느끼나요?

9. 감정 기복이 일정한 주기로 반복되나요?

10. 이러한 증상이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있나요?






‘나랑 너무 비슷한데… 진짜 나 조울증인가? 아니야… 그 정도까지는 아닐 거야…’


그동안의 감정 기복들을 돌이켜보니 너무나도 명백했다. 이건 그냥 기분 변화가 아니라 병일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인정할 수가 없었다.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나는 해서는 안 되는 시도를 하고 말았다.


“자기야… 우리 병원 가보자… 응?”


신랑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낸다. 결국, 용기를 내어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다. 오랜 시간 쌓아두었던 울분을 토해냈다.


"선생님... 기분이 들쑥날쑥해서 너무 힘들어요. 어떨 땐 잠도 안 자고 계획만 세우다가, 또 어떨 땐 하루 종일 누워만 있게 돼요.."


의사는 내 얘기를 꼼꼼히 듣더니 말했다.


"조울증으로 보입니다. 일단, 약물치료가 시급해 보입니다."


진단명을 듣는 순간, 모든 것이 멈춰버린 듯했다. 치료를 해야 한다는 두려움, 이 병과 평생 함께 살아야 한다는 절망감이 엄습했다.


아마도 오래전부터 이미 함께 하고 있었을지도 모를, 조울증과의 본격적인 동행이 시작됐다. 처방약을 먹으며 극심한 부작용에 시달렸다. 사고가 느려지고, 자꾸만 먹고 싶어 살이 찌기도 했다. 기분이 들뜨면 충동적으로 꼭 필요한 것들이 아님에도 사들이곤 했다. 그러다가 우울해지면 또 며칠씩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뒹굴거렸다.


일상은 엉망진창이 되어가고 있었다. 내 감정을 추스를 수 없어 폭발하듯 남편에게, 아이에게 큰 소리를 치기 일쑤였다.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는 내 모습이 역겨울 지경이었다.


'이렇게는 못 살아... 포기하고 싶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들의 소리 없는 울음을 떠올렸다. 7년간 단 한 번도 '엄마'하고 부르지 못한 내 아들. 그 모습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포기할 수 없다. 나부터 무너지면 우리 가족은 어쩌란 말인가.


눈물로 촉촉해진 약봉투를 손에 쥔 채 하루하루를 버텨냈다. 나에게 주어진 하루를 견디고 또 견디었다. 닥쳐오는 절망 앞에서도 결국 해가 뜨듯, 버틸 수 있을 것이라 스스로 다짐하면서 말이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내 삶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규칙적인 약물복용과 상담치료 덕분이었다. 감정의 굴곡을 어느 정도 다스릴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가족의 든든한 지지가 힘이 되어주었다. 남편은 묵묵히 내 곁을 지켰고, 아이는 내 무릎에 앉아 손짓 발짓으로 이야기를 건넸다. 그 사랑 앞에서 조금씩 내 마음의 빗장이 열리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제대로 거울을 봤다. 지쳐 보이긴 했지만, 절망으로 가득 차 있던 예전의 내 모습은 아니었다. 조울증과 동행하는 과정에서 제법 단단해진 내가 서 있었다. 이제는 알 것 같다. 조울증은 내 삶의 일부이고, 그것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나의 몫이라는 것을, 억누르거나 부정하기보다는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게 답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날은 아들의 어린이집에서 운동회가 있는 날이었다. 여전히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내 손을 잡고 달리기를 하고 공을 던지고, 줄다리기도 했다. 들뜬 얼굴로 이리저리 손짓하는 아들의 모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7년 전 절망의 끝에서 마주한 내 아이는 이토록 쑥쑥 자라 의젓한 모습으로 내 곁을 지켜주고 있다.


그러고 보니, 조울증이 내게 가르쳐준 것도 있다. 바로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법, 작은 행복에 감사하는 법 말이다.


이제는 안다. 내 마음의 신호등은 계속해서 빨강, 노랑, 초록을 오갈 것이다. 그리고 그건 괜찮다. 그 모든 색이 결국 나이기에. 어느 색을 밝히든 나는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테니까.


당신도 감정의 롤러코스터에 지쳐 있는가. 밤마다 뜬눈으로 지새우는가. 당신의 손을 잡아줄 누군가가 있다는 걸 잊지 말자. 의사도, 가족도, 친구도... 그리고 무엇보다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당신 안에 있다는 것도. 지금의 고통을 딛고 일어서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빨간 신호등 너머 초록빛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함께 그 빛을 향해 걸어가자. 천천히, 그러나 멈추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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