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조울증이라면 나는 어디에 속하는가
"조울증도 종류가 있다고?"
처음 정신과에서 조울증(양극성 장애) 진단을 받았을 때, 순간 세상이 멈춘 듯했다. 앞의 글들에서도 언급을 했지만, 돌이켜보면 내 삶은 감정의 롤러코스터 같았다. 때론 너무 높이 치솟다가, 또 어떤 날은 끝없는 깊은 수렁으로 추락하곤 했다.
마치 내 안에 두 개의 나가 살고 있는 것 같았다.
들뜬 나와 우울한 나.
하지만 당연히 처음에는 그게 병이라는 건 꿈에도 몰랐다. 그냥 성격이 그런 줄 알았다. 감정의 진폭이 크다고 생각했을 뿐.
그런데 정신과 의사는 내게 '조울증'이고 조금 더 자세히 말하면 2형에 속한다고 했다. 순간 혼란스러웠다. 조울증인 것도 받아들이기 힘든 마당에 유형까지 있다니 말이다. 머릿속이 희뿌얘지는 반면 또 복잡해졌다.
1형과 2형이 어떻게 다른지 교수님이 친절히 설명해 줬지만, 그때는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이해되지 않았다. 그냥 내가 감정 기복이 심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세부적으로 나뉜다니 그저 처음엔 어이가 없었다. 마치 나도 모르는 나의 또 다른 정체를 들킨 기분이었다.
그렇게 진단을 받고 좀 시일이 지나고 어느 정도 생활이 안정선에 접어든 것 같았을 때, 스스로를 이해하기 위해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조울증 1형과 2형은 같은 병이지만, 그 양상이 다르다는 걸 말이다. 그리고 이 차이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결정하는 데 아주 중요한 열쇠를 갖느냐 못 갖느냐와 같다는 걸 알게 되었다.
조울증 1형과 2형, 뭐가 다를까?
조울증 1형은 조증이 심하게 나타나는 경우라고 한다. 단순히 기분이 들뜨는 정도가 아니라, 현실 감각을 잃고 충동적인 행동을 하거나 과대망상에 빠지기도 한다. 심한 경우 입원을 해야 할 정도로 감정이 폭발적으로 표출된다.
반면 조울증 2형은 조증보다는 우울증이 더 깊고 오래 지속된다. 1형처럼 극단적인 조증까지는 아니지만, 경조증이라는 상태를 경험한다. 기분이 들뜨고 에너지가 넘치지만, 그래도 현실 감각을 완전히 잃지는 않는다. 그래서 오히려 본인이 아프다는 걸 인식하지 못할 때가 많다.
내 경우는 조울증 2형이었다. 나는 조증이 아니라 경조증을 경험했다.
경조증과 조증, 어디까지 다른 걸까?
1. 기분이 좋은 걸 넘어서는 감정의 폭발
조울증 1형을 가진 사람들은 조증 상태에서 감정이 폭발적으로 솟구친다. 그 에너지는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1형 조울증 - 조증 상태 예시]
"나는 위대한 사람이야. 내 아이디어는 세상을 바꿀 거야! 지금 당장 회사를 차려야겠어!"
"잠은 사치야! 할 일이 너무 많아! 잠은 죽어서 자면 돼!"
"이 정도 돈쯤이야! 나중에 다 벌면 되지!" (카드값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불어난다)
이처럼 조증 상태에서는 현실적인 판단이 어려워진다. 너무 들뜨고 흥분된 상태가 계속되면서, 무리한 행동을 하게 되고 스스로 통제하기 힘든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그래서 조울증 1형 환자들은 종종 병원에 입원하기도 한다.
반면 조울증 2형의 경조증은 조금 다르게 나타난다.
[2형 조울증 - 경조증 상태 예시]
"오늘은 기분이 너무 좋아!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아."
"에너지가 넘쳐서 하루 종일 일해도 피곤하지 않아!"
"아이디어가 막 떠오르네! 다 적어놔야겠어."
2형 조울증에서는 1형만큼의 극단적인 증상은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지나고 보면 평소와는 확연히 다른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나 역시 그랬다. 경조증일 때는 말이 많아지고, 밤새 글을 써도 피곤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끝에는 어김없이 깊은 우울이 찾아왔다.
2. 충동적 행동의 차이
조울증 1형의 조증 상태에서는 충동성이 극에 달한다.
[1형 조울증 - 충동적 행동 예시]
"이 사업 아이템은 대박이야! 바로 투자해야겠어!" (실제 가능성도 따지지 않고 큰돈을 투자한다)
"차를 바꾸자! 어차피 언젠가 바꿀 거였잖아!" (갑자기 고급 외제차를 계약한다)
"이 사람이 나의 운명일지도 몰라!" (단 한 번 만난 사람과 결혼을 결심한다)
반면, 조울증 2형의 경조증에서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다. 하지만 지나고 보면 평소와는 다르게 흥분된 상태에서 했던 선택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2형 조울증 - 충동적 행동 예시]
"책을 20권 샀어! 다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옷을 갑자기 많이 샀네? 요즘 기분이 좋아서 그런가."
"갑자기 너무 외롭네. 연락 끊긴 친구한테 먼저 연락해 볼까?"
경조증의 충동성은 소소해 보이지만, 그것이 쌓이면 일상에 큰 영향을 준다. 나도 한동안 경조증일 때 과소비를 했고, 뒤늦게 후회한 적이 많았다.
조울증, 내 유형을 아는 것이 중요한 이유
조울증은 단순히 기분이 오르락내리락하는 병이 아니다. 감정의 극단적인 변화가 반복되면서, 삶을 크게 흔들어 놓는다.
그렇기에 자신이 조울증 1형인지, 2형인지 아는 것은 어찌 보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1형이라면, 조증을 최대한 예방하고 입원 치료가 필요할 수도 있다.
2형이라면, 경조증을 인지하고 조증보다는 우울증 관리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나는 내 감정이 왜 이렇게 변하는지 몰랐을 때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내 유형을 알고 나니, 조금씩 대처할 방법이 보이기 시작했다.
스스로를 이해하는 과정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혹시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기분이 왜 이렇게 오르내리는지 모른 채, 그 파도에 휩쓸려 지쳐 있을지도.
하지만 당신이 겪고 있는 그 감정, 그리고 그 고통에는 이름이 있다. 조울증이라는 이름 말이다. 그리고 조울증에도 유형이 있다는 걸 아는 것, 그것이 바로 자신을 이해하는 첫걸음이 될 거라 생각한다.
지금도 내 감정을 완벽하게 조절하지 못한다. 때로는 깊은 수렁에 빠지기도 하고, 때로는 하늘을 나는 것처럼 들뜨기도 한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내 기분이 왜 이런지'는 알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삶은 한결 감당할 만 해지고 가벼워졌다.
하루는 동생과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언니, 요즘 말이 많아진 거 같다?"
"아... 그러게. 요즘 경조증인가 봐."
"그게 뭐야?"
"조울증의 한 단계랄까. 그냥 기분이 좋은 걸 넘어 좀 들뜨는 상태?"
"그럼 기분 좋으면 좋은 거 아닌가?"
"그렇지. 근데 조만간 바닥을 칠 수도 있어."
이렇게 이제 내가 어떻게 변할지 조금은 예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감정의 롤러코스터에서 완전히 무방비 상태로 떨어지는 일은 줄어들지 않았을까 싶다.
만약 지금 이 글을 읽으며 당신의 이야기를 들은 것 같다면, 용기를 내서 자신과 마주할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당신이 그토록 붙잡고 싶었던 안정의 끈은, 사실 당신이 당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되니까.
당신의 감정도, 당신의 삶도, 모두 제자리에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조금 흔들리고 위태로워 보일지 몰라도, 결국 당신은 당신의 삶을 잘 이끌어 갈 수 있을 테니까.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앞으로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