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울증 판정 후, 나는 롤러코스터에서 내리지 않기로 했다
"제발 이 지옥 같은 롤러코스터가 멈추길 기도했다. 하지만 나는, 안전벨트를 더 꽉 매기로 결심했다."
처음 ‘조울증(양극성 장애)’이라는 진단명을 받았을 때, 내 마음속 내비게이션은 완전히 꺼져버린 듯했다. 먹통이 된 화면을 아무리 두드려도,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의사 선생님의 입에서 나온 병명을 듣는 순간, 나는 내가 ‘고장 난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기분이 하늘을 찌를 듯 솟구쳤다가 바닥 모를 심연으로 곤두박질치는 이 증상이, 단순한 성격 탓이 아니라 평생 관리해야 하는 ‘병’이라니.
도망치고 싶었다. 이 지긋지긋한 감정의 굴곡에서 내려 남들처럼 평범하고 잔잔한 땅을 밟고 싶었다. 하지만 부정하고 외면할수록 롤러코스터는 더 거칠게 나를 흔들어댔다.
그렇게 한참을 어둠 속에서 헤매다 문득 깨달았다. 이 롤러코스터에서 내리는 비상구는 없다는 것을. 내릴 수 없다면, 방법은 단 하나뿐이다. 이 위에서 멀미하지 않고 버티는 법, 아니 때로는 이 속도감을 즐기는 법을 배우는 것. 나는 그렇게 자세를 고쳐 앉기로 했다.
조울증 2형인 나에게 '경조증'이 찾아오는 순간은 예고편 없는 액션 영화와 같다. 평소의 나라면 상상도 못 할 에너지가 혈관을 타고 흐른다.
어느 날 새벽 2시였다. 모두가 잠든 고요한 집, 물을 마시러 나왔다가 거실을 쓱 훑어보는데 갑자기 등골에 전율이 흘렀다. 마치 신내림이라도 받은 사람처럼 확신에 찬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렸다.
"가구 배치가 엉망이야. 이래서 요즘 아침에 일어나도 개운하지가 않나??? 함 바꿔보까?"
평소라면 무거워서 엄두도 못 낼 4인용 가죽 소파가 그날따라 깃털처럼 가볍게 느껴졌다. 나는 헐크라도 된 양 혼자서 소파를 밀고, 거실장을 들어 엎었다. 바닥 긁히는 소리가 날까 봐 양말을 덧신고, 땀을 뻘뻘 흘리며 가구를 옮겼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책장에 꽂힌 책 200여권이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그래, 색깔별로 정리해야 해. 아들도 그럼 더 관심갖고 책을 볼거야."
새벽 4시, 나는 책 200여권을 거실 바닥에 다 꺼내놓고 하나하나 닦고 있었다. 머릿속은 이미 꽃밭이었다.
'나는 인테리어 천재가 아닐까? 정리수납 자격증을 따서 바로 창업을 할까? 유튜브를 찍으면 대박이 날 텐데!'
새벽 5시, 땀 범벅이 된 채 난장판이 된 거실 한가운데 서서 나는 승리감에 도취되어 있었다. 남편이 아침에 일어나서 "우리 와이프 정말 대단해!"라고 감탄할 모습을 상상하며 혼자 키득거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세상을 구할 슈퍼우먼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 희열의 유통기한은 너무나 짧았다. 딱 24시간 뒤, 나는 그 '풍수지리적으로 완벽한' 거실 한가운데 시체처럼 누워 있었다.
소파 위치를 바꾸느라 드러난 해묵은 먼지 구덩이, 색깔별로 맞추다 지쳐서 바닥에 널브러진 책무더기. 그 난장판을 치울 힘이 손가락 하나에도 남아있지 않았다. 방전된 건 체력뿐만이 아니었다. 마음의 배터리가 0%가 되어버린 것이다.
퇴근한 남편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한숨을 푹 쉬었다.
"하아... 여보, 또 시작이야?"
그 한숨 소리가 비수가 되어 심장에 꽂혔다. 씻지도 못해 떡진 머리를 하고, 아이 저녁도 챙겨주지 못한 채 누워있는 내 모습이 거울을 보지 않아도 끔찍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괴로운 건 아이였다. 목에 기관절개관이 있어 소리 내어 울지도 못하는 내 아들. 아이가 내 팔을 흔들며 배고프다는 신호를 보내는데, 몸이 천근만근이라 일어날 수가 없었다. 눈동자만 굴려 아이를 바라보는데,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내가 미쳤지. 왜 사서 고생을 했을까. 나는 왜 평범한 엄마가 되지 못할까.'
자기 혐오가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쓰고 생각했다. 나는 고장 났다. 완전히 경로를 이탈했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 거라고.
그렇게 며칠을 동굴 속에 숨어 지내던 어느 날, 문득 운전할 때 듣던 내비게이션의 안내 멘트가 떠올랐다. 우리가 운전하다 길을 잘못 들었을 때, 내비게이션은 화내거나 욕하지 않는다.
"너는 왜 운전을 그따위로 하니?"라고 비난하지 않는다.
그저 딱딱하고 건조하게, 사실만을 말할 뿐이다.
"경로를 이탈했습니다. 경로를 재탐색합니다."
그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그래, 나는 고장 난 폐차 직전의 자동차가 아니라, 그저 잠시 경로를 이탈했던 것뿐이다. 조금 돌아가는 길일지라도, 다시 탐색하면 그만이다.
8년 전, 아픈 아이를 낳았을 때도 나는 내 인생이 경로를 이탈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길 위에서 나는 더 깊은 사랑을 배웠고, 작은 숨소리에도 감사하는 법을 배웠다. 조울증도 마찬가지 아닐까. 남들과 다른 길로 가고 있지만, 이 길 위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 분명 있을 것이다.
이제 나는 나를 다루는 매뉴얼을 조금씩 수정해 나가고 있다.
새벽에 갑자기 기막힌 사업 아이템이 떠오르면? 바로 실행하는 대신 '아이디어 노트'에 적어두고 3일만 묵혀둔다. 3일 뒤에도 하고 싶으면 그때 한다. (대부분은 3일 뒤에 보면 말도 안 되는 아이디어다.)
세상을 다 가질 것 같은 자신감이 솟구치면?
'아, 지금 내 마음이 과속 중이구나, 속도 위반 딱지 떼기 전에 브레이크 밟자'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땅이 꺼질 듯한 우울이 찾아오면? '지금은 터널 구간이구나. 이 터널이 끝날 때까지만 안전하게 서행하자'라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남들은 평지 위를 걷는 동안, 나는 오르막과 내리막을 숨 가쁘게 오간다. 솔직히 말하면 피곤한 삶이다. 약을 챙겨 먹어야 하고, 수면 시간을 칼같이 지켜야 하는 강박 속에 산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남들은 평생 못 볼 풍경을 나는 매일 본다. 경조증일 때의 나는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창의적이다. 아이와 놀아줄 때 동화 속 캐릭터 연기를 실감 나게 해서, 소리 못 내는 아들이 숨이 넘어갈 정도로 웃게 만드는 것도 그때의 나다.
우울할 때의 나는 누구보다 타인의 슬픔에 민감하다. 잎사귀 하나 떨어지는 것에도 눈물 흘릴 줄 아는 감수성이 있어, 아들의 작은 몸짓 하나도 놓치지 않고 읽어낸다.
이 변덕스럽고 종잡을 수 없는 감정의 곡선조차 결국 '나'라는 사람을 만들어낸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어쩌면, 어젯밤 충동적으로 저지른 일을 후회하며 이불킥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혹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을 자책하며 방구석에 웅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장담하건대, 당신의 GPS는 고장 나지 않았다. 잠시 신호를 다시 잡고 있을 뿐이다.
나의 롤러코스터는 오늘도 달린다. 언제 또 새벽에 일어나 가구를 옮기겠다고 설칠지, 언제 또 이불 속으로 숨어버릴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롤러코스터가 무섭게 내려가면, 그 탄력으로 반드시 다시 올라가는 구간이 나온다는 것을.
그러니 나는 이 롤러코스터에서 내리지 않을 것이다. 대신 안전벨트를 단단히 매고, 옆에 탄 남편과 아이의 손을 꼭 잡고 소리칠 것이다.
"자, 이번엔 또 어떤 코스가 기다리고 있을까? 꽉 잡아, 출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