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가기 전, 낯선 공기를 마주했던 거짓말의 오후
가랑비메이커 매거진
[지극히 가랑비적인 이야기]
#story 5
<거짓말과 떠났던 늦가을 일탈 여행>
*매거진의 이야기는 가랑비메이커의 개인적 삶에 따른 것임으로 불법 복사를 금합니다.
하늘이 청명했고 바람이 선선했던 날이었고
평소보다 일찍 출발하였으나 하필, 느린 버스 안이었다.
문득,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전화기를 들어
최상의 컨디션으로
'너무 몸이 아파서 아무래도 출근이 힘들 것 같아요.' 라며 죽어가는 문자를 보냈다.
늘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지만
거짓말과 함께 떠나게 된 갑작스러운 일탈여행에
막상 어디를 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타고 있던 출근버스를 타고
쭉-가는 곳까지 가보기로 하였다.
내리고 싶을 때 그곳에서 내려서
걷고 싶은 곳을 걷고 하고 싶은 것을 하기로.
그것은 아무 버스나 골라타, 종점까지 가서
이것저것 사 먹고 다시 되돌아왔던 중학교 시절
추억의 놀이였다.
참으로 오랜만이라, 그리고 혼자였기에
어린아이처럼 들떴던 것이 생각난다.
낮에 올라탄 버스는 꼬박 2시간을 달리며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을 보여주었고
나는 창가를 통해 낯선 공간들을 담아내기도 하고 꾸벅꾸벅 졸기도 하다,
라는 기사님의 외침에 종점에서 내릴 수 있었다.
버스에 내려 내가 마주했던 풍경은
내가 출발했던 곳과는 많이 달랐고
숨을 들 이마 쉴 때마다 느껴지는 내음도
참 낯설었으나,
나를 평안하게 만든 것은 늦가을이었다.
분명 긴 시간을 달렸고 눈 앞에 펼쳐진 공간은
바로 몇 시간 전의 것과는 전혀 달랐으나
분명언젠가 마주한 적이 있던 늦가을의 얼굴이었다.
청명한 하늘 아래로 금빛 논이 펼쳐져 있고
그 사이로 듬성듬성 고개를 들었던 강아지풀
언제 어디를 떠나오든
가을은 결국, 따스하게 풍성하게 다가오는품.
그것이 낯선 여행에서 조금 경직되어 있던
나를 더 멀리 걷게 했으며 더 높게 바라보게 하였다.
어딘지도 모를 그곳을 산책하면서
내가 마주했던 것은 끝없이 펼쳐진 농가들이었고 그 사이의 무르익음이었다.
길은 좁았고 그 사이로 지나던 큰 트럭들,
걷고 또 걸어야만이 신호등을 만날 수 있었으나
목적지를 잃은 것이 아니라 애초에 목적지라는 것이 없이 떠났던 여행에 찾아오는 것은
여유와 낭만이었다.
길을 걸으면서 나는 평화로운 풍경을 마주하고 있었음에도 완전히 풀리지 않던 긴장감에 귀에 꽂고 있던 이어폰을 잠시 가방 속에 넣어두고는 주위를 찬찬히 둘러보았다.
조용한 공간에서 그리고 높지 않은 집들 사이로
파란 하늘을 보니
사소하게 짊어지고 있던 고민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고
낯선 마을에 내려앉은 나그네가 된 듯한
낭만적인 느낌을 마음껏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비록 거짓말과 함께 떠났던 일탈여행이었으나
길지 않았고 이렇다 자랑할 만한 풍경도
맛있는 음식도 함께 하는 이도 없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랬기 때문에
내 안의 소리와 내가 딛는 걸음에 집중하며 달라지는 풍경을 만끽할 수 있지 않았는지.
가을이라는 것이 선물해준 거짓말 같던 하루.
그 얼마나 소중한 시간이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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