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고 반짝거리는 단어 말고

'나에게도 같은 아픔이 있다오'를 가만히 말해주는 것

by 가랑비메이커

가랑비메이커 매거진

[지극히 가랑비적인 이야기]

#story 7

<아름답고 반짝거리는 단어 말고>


*매거진의 이야기는 가랑비메이커의 개인적 삶에 따른 것임으로 불법 복사를 금합니다.



│위로라는 것, 내가 생각하기에


위로,라는 것은 무얼까.

글쓰기에 있어, 내 오랜 습관 중 하나는 익숙한 단어를 낯설게 보기 위해 포털사이트에 그 단어에 대한 정의를 찾아보는 것이다.

위로 [명사] 따뜻한 말이나 행동으로 괴로움을 덜어 주거나 슬픔을 달래 줌.
가끔은 정말 가슴으로 안겨보고 싶은 날이 있다.

따뜻한 말이나 행동으로 괴로움과 슬픔을 달래 주는 일,이라고 한다.내가 처음 펜을 들고 세상 앞에 나와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은 '위로'가 되었다는 친구의 말 한마디에서였다.


어린 날, 그만의 아픔들을 털어놓았던 글 몇 문장(단상집의 에필로그에 남겼듯이 내 글은 나를 위로하기 위해서 시작되었다.)을 보고 글썽이던 눈으로 내게 건네었던, 이제는 희미한 얼굴의 아이는 '위로가 되는 것 같아.'라고 했고 그 말은 다시 내게 큰 위로가 되었고 나는 글을 쓰겠노라고 다짐했다.


위로가 필요한 이들의 그늘을 지켜내겠노라고.




│그늘을 지켜내는 것

그리고 선인장


그늘을 지켜내는 것이다. 그늘을 거둬내고 그 안을 가득 빛으로 채우는 것이 아니라. 나는 정호승 시인의 '내가 사랑하는 사람'처럼 '그늘'이 있는 이들을 사랑한다.


그늘을 견뎌온 이들의 무게를 감히 덜어낼 수 없어도 충분히 안아낼 수 있을 그런 사람이고 싶다.


그늘이 있는 이들은 빛 가운데를 동경하기도 하지만 그늘을 무조건 몰아내고만 싶어 하지 않는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그늘 그 자체의 삶까지도 안아주는 것, 그것에서 위로를 얻는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내게 위로가 무엇이냐고 한다면 '선인장' 같은 것이라고 대답하겠다.식물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것은 단연, 선인장이다.


사로잡는 향기도 빛깔도 없으나, 다가가기에도 아픈 가시가 있지만 그럼에도 꽃을 틔우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고 내게 알려줬던 선인장은 내게 희망 같은 존재였다.


가시를 모두 뽑아내지 않아도, 화사한 빛을 입히지 않아도 그 자체로 그만의 꽃을 품을 수 있다는 것에서 나는 많이 힘을 얻었다. 나란 사람에게서 빛과 향을 찾을 수 없었고 가시 돋친 기억들이 가득했으므로.



│'내게도 당신과 같은 아픔이 있다오'를 따스하게 전하는 것


사춘기 시절, 무심코 바라봤던 선인장이 그랬다.


뜨거운 햇살을 버티고 서서는 내게도 너와 같은 아픔이 있다오, 를 가만히 전해주는 것 같았다.


그때, 그렇게 내 스스로가 정의한 위로라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아름답고 달콤한 언어가 아닌, 떨리는 가슴으로 고백하는 것. '내게도 당신과 같은 아픔이 있다오' 가만히 전해주는 것.

고등학교 시절, 어렵게 털어놓았던 나의 상처에 대해, '힘을 내. 이젠 괜찮을 거야.'라는 말이 아닌 자신의 상처에 대해 가만히 털어 놓아주었던 유난히도 차갑던 그 친구에게서 뜨거운 사랑을 느꼈던 그 순간처럼.


여전히 선명한 그 눈빛과 목소리들처럼.




가랑비메이커 인스타그램 @garangbima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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