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왜 곰이 되었을까, 제주도 푸른 바다를 등지고 산으로 떠난 그녀.
가랑비메이커 매거진 [책장과 극장사이]
#movie 1. <그녀의 전설>
*매거진의 모든 감상은 가랑비메이커의 개인적인 견해와 분석에 따른 것임으로 불법 복사를 금합니다.
[그녀의 전설]
(Where Mermaids Go)
2015/ Fiction/ 27 min
김태용 감독/ 배우 최강희, 김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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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의 말>
물질을 하다 바다 속에서 사라진 해녀들은 곰이 되어 한라산에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생각해내고 나름 기뻤다. 해녀 할머니들에게 그 이야기를해드렸는데 그다지 재미있어하진 않으셨다. 완성된 영화를 보시면, 그래도 나름 재미있네 라고 말씀해주시면 좋을 텐데
그 사이엔 어떤 연결고리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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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반대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바다와 산,
전혀 상관없는 듯해 보이지만 또 곰곰이 생각해본다면 교집합을 찾을 수 있을 것도 같은 엄마와 곰.
어느 날, 약사 유진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영화는 이렇게 시작된다.
급히 내려가 실종신고를 마치고 곳곳을 다니며 어멍을 찾아보지만 어느 곳에서도 어멍은 보이지 않는다.
유진은 결국 아무도 없는 텅 빈 집으로 가,
어린 아들과 함께 어멍을 기다린다.
어멍이 사라지고 들려오는 소식이 없지만 유진은 우울해하거나 조급해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어멍이 사라진, 어멍이 없는 것외에 달라지지 않은
어멍의 흔적이 그대로 남겨진 집을 쓸고 닦으며 사람 냄새로 가득 메우며 다만, 기다릴 뿐이다.
어멍은 물질을 하다 작은 곰인형 하나를 건졌다가 정신을 잃었는데 깨어나 보니 곰이 되었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한다.
놀랍도록 황당한 이야기에도 딸 유진은 크게 놀라거나 동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커다란 곰이 되어버린 엄마를 보며 재밌다는 듯한 웃음을 보이며 함께 장난을 치기도 하고 마냥 신기해한다.
그간 먹지 못했다며 놀라울 속도로 많은 음식들을 먹어치우고 술 한 잔에 취해 노랠 부르기도 하며 유진과 함께 노랫가락에 맞춰 춤을 추기도 한다.
그들은 변해버린 모습에서 거리감이나 부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저, 오랜만에 재회한 반가운 모녀의 모습으로서 서로를 반가워하며 함께 천진하게 장난을 칠 뿐.
(곰이 된 어멍과 해녀 무용단의 퍼포먼스는 영화의 중간중간 흥겨운 노래와 함께 환상적인 분위기를 이끌어낸다. 더불어 곰이 되어버린 어멍이라는 비현실적인 요소들도 잘 어우러져 이상하기 보다는 동화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어멍은 걸음마를 배우던 시절부터, 해녀이던 어멍의 어멍을 기다리던 시절과 그렇게 가고 싶던 학교가 아닌 바다로 나와 던져져야 했던 어리고 젊은 시절들에 대해 딸 유진에게 이야기한다.
물질하지 않게, 배우고 싶은 공부시켜 약사로 만든 어멍에게 고맙다는 말을 큰 소리로 해달라며 귀여운 때를 쓰는 어멍의 모습에 웃음이 나기도 했고 눈물이 찔끔 나기도 했다.
: 가끔은 딸의 모습에게서 그 시절 당신들이 누리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질투 아닌 질투가 느껴지지 않을까, 엄마라는 이름으로 그 사소하지만 조금은 아픈 감정들을 숨겨야만 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에 문득 곁에 엄마가 있더라면 꼭 안아주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한참을 귀엽게 티격태격하던 어멍과 유진은 들판에 나와 어린 아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처음 유진은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만
어느새 점점 멀어져가는 어멍,
어딜가냐며 소치지만 마침내, 산으로 사라지고 마는 어멍을 유진은 따라가 붙잡지도 끌까지 소리치지도 않는다.
결국, 처음 곰이 된 어멍을 만났을 때의 모습처럼
정말 곰의 되어 산으로 떠나버린 어멍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인다.
27분 남짓의 영화가 끝이 나고 내게 몇 가지 의문이 남았고 그에 대해 몇 가지 해석을 해보며 이 영화를 더욱 애정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느꼈다.
다른 동물이 아닌, 곰이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곰이 주는 (내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크다, 힘이 세다, 무섭다 외에도 의외로 순하다, 게으르다, 겨울잠의 이미지가 있다.
아마도 굳이 어멍의 이미지에 곰을 끼워 맞춰 본다면 후자가 더 가깝지 않을까. 평생을 억척스럽게 일해야 했던 어멍이 이제는 쉼(죽음)을 향해 가고 있음을곰이 된 모습으로 표현된 것은 아닐지.
이제 바다를 떠나 물질을 떠나 산으로, 영원한 겨울잠을 향해 가고 있음을.
산으로 떠나기 전 어멍은 일생을 바다에서 물질을 하며 보냈던 것에 대한 회한의 감정을 조금 드려낸다.
바다,라는 것은 결국 어멍에겐 평생을 지낸 곳이나 쉽게 떠나지 못한 곳이었고 산,이라는 곳은 그와 상반되는 곳으로 새 삶, 그리고 휴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만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 더 돌아보고 안아줄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영화를 잘 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영화를 사랑하고
그중에서도 독립영화 그리고 단편영화를 특히나 애정 하는 한 사람의 관람객으로서
27분 남짓의 영상이지만, 제주도의 신비스러운 풍경과 정겨운 방언 그리고 흥겨운 퍼포먼스.
그리고 제주도 어머니들의 삶에 대해 돌아볼 수 있는 시간까지 참으로 알찬 영화가 아니었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