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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랑비메이커 Dec 20. 2015

처음이라는 이름

가랑비메이커 첫 단상집 #3 낭독콘서트 게스트


가랑비메이커 매거진

[지금, 여기 뒷이야기]

#story 3 <처음이라는 이름>


*매거진의 이야기는 가랑비메이커의 단상집 작업과정에 따른 것임으로 불법 복사를 금합니다.



2015/12/18 생애 첫 낭독콘서트 게스트 참여, 그 그림일기

'첫,이라는 것엔 심장은 없지도 두근거림이 있다. 그리고 아린 것이 있다.
생각해보면 처음이라는 건 늘 특별했으나,
언제나 달콤한 것은 아니었다.
어딘가 어설프고 낯설었고 어려웠다.

 오래 기다려왔던 순간이라 해서
특별히 다를 것도 없다.
괜스레 서글퍼지는 마음이 함께 한다.

이제는 새 것이 될 수 없어서 혹은
이제는 시작, 출발이라는 것을 무를 수가 없어서ㅡ.

나 역시 오래도록  꿈꿨던 순간들,
그중 하나를 지나왔음이 분명한데도 어김없이
불쑥, 찾아온 서글픔이라는 감정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왜, 였을까.

벅찬 기억들이 되어야 할 처음은
왜 서글픔을 떼어낼 수 없는가.

왜 서글픔의 또 다른 이름이어야 하는가.'

-2015.12.18 가랑비 메이커 그림일기 -


퇴근길 책한잔 낭독콘서트 포스터(이미지)


12/12/18 금요일, 늦은 8시는

12/10/31 발행된 나, 가랑비 메이커의

 책 '지금, 여기를 놓친 채 그때, 거기를 말한 들'

이후, 저자 가랑비 메이커 처음 공식적인 자리를 가진 날이었다.


처음 책을 안 아들던 날도 그랬다.

분명 기뻤고 내 스스로에게 고마웠고 대견스러웠다.그럼에도 마음 한 켠에 서글픔이라는 것이 깊숙이  들어앉아 있었다.

언젠가 책을 낸지 얼마 후  공식 인스타그램을 통해 그런 글을 남긴 적이 있었다.


'수년간의 시간들이 행여 단 한 권의 책으로 정의되는 것은 아닐까,  그 시간들의 고민과 한숨들이 페이지에 담기지 못하고 나도 모르는 새 흩어져버리면 어떻게 하나. 그 생각들을 너머 마침내 결단을 서고 일을 내면서 아직 처음이라 서툴렀고 대외적인 문제들에 부딪혔다. 그렇게 계획했던 것들이 어긋나고 가랑비라는 이름으로 실수를 하게 될까 덜컥, 겁이 나 잠 못 들던 시간들이 비로소  지난날이 되었다.
오래전부터 내  책,이라는 것을 받아 들고는 엉엉 우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 (생략)'


처음,이라는 순간.

작가로서 독자들 앞에서 설 수 있다는 것,

작은 책 한 권을 들고 쏟아지던 이야기들을 흘려보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


며칠은 스스로에게 고마운 마음과

주체할 수 없던 성취감에 먹지 않아도 배불렀고

잠들지 못해도 종일 힘이 넘쳤다.


그러나, 조금씩- 차차  곱씹어낼수록

결국, 이유 모를 서글픔이라는 것이 찾아왔었다.

-


처음이라는 것과 함께 찾아오는 서글픔은

언제나 불쑥 찾아오지만

그리 오래 머물지 않으며 서서히 자취를 감춘다.


그렇게  책의 순간에 찾아오던 감정들도

조금씩 사라졌다.


다시, 책을 낸 후 가졌던  공식적 자리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을 나서기 전까지는 그랬다.

사라진 줄로만 알았다.


결국 ㅡ. 다시 새로운 '첫'이라는 것을 잡고

늘어지던 서글픔.



리허설

퇴근길 책한,이라는 공간은 염리동에 위치한

독립출판서점이지만 사실 단순 서점이라고 하기보다는 복합 문화공간이라고 할 만큼 다양한 공연과 모임이 있다.


그, 하나로 '낭독콘서트' 제 4회에  저자 게스트로(생각해보니 낭콘에서의 작가 게스트도 처음 함께 했다고) 초대되었다.

[가랑비메이커 '지금, 여기를 놓친 채 그때, 거기를 말한 들']



리허설,이라는 이름으로 약 1시간 정도를 들뜬 마음을 간신히 붙잡으며 낭독콘서트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을 들으며 어떤 이야기를 하면 좋을지 즐거운 고민을 하고 있었다.


낭독콘서트 게스트 소개 이전, 미묘한 감정의 순간.

공연은 뮤지션 김제형씨의 낭독을 시작으로 그 뒤를 이어 뮤지션 김겨울씨의 낭독과 공연이 이어졌고(내 순서는 마지막으로 1시간이 지난 9시로 예정이 되어있었다. )


어둠 속에서 이어지던 낭독과 음악에

내 순서에 대한 긴장감은 사라졌으나,

이상한 감정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긴장과 함께 설렘마저도 빼앗겨버리고

미묘한 감정들이 지배하던 1시간 남짓의 시간이었다.

-

무얼 하면 좋을지, 가 아닌 무얼 해야만 할지.

이제 몇 분 뒤면


나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 처음의 것을 시작하게 될 텐데/ 돌아가는 길에 나는 웃을 수 있을지, 후회는 없을지


낭독콘서트, 2번 째 게스트로서 저자와의 북토크


결과적으로는

생각보다 긴장하지 않고 많은 이야기들을 쏟아낼 수 있어, 감사했던 시간이었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내 스스로가 아닌

누군가의 물음을 통해, 뱉어낼 수 있어 참 감격스러운 시간이었으며


한 사람 한 사람, 많지 않은 사람들이었으나 따스한 눈빛들을  주고받으면서 큰 힘을 얻을 수 있었고  

작가,라는 이름이 이제는 상호 관계 속에서 조금은 공고해졌다는 느낌도 들었다.


순서가 끝난 뒤에는 준비해왔던 엽서를 전하기도 했으며 자유롭게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었고

웃음이 끊이지 않았던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웃으며 다음을 기약하고

문 밖을 나서는 순간


불쑥 고개를 든 건

'아, 이제 더 잘 할 수 있을 거야' 가 아닌

'이제는 정말, 처음이 끝났어.'라는

후련함도 아닌 서글픔이었다.


정말, 이제는 해냈으나

다시 돌아가 새로운 시간을 뗄 수도

처음이라  그래,라는 풋풋한 변명도

더 이상은 내 것이 될 수 없구나 라는 감정들.



그리고 떠오르던 몇 얼굴들과 이름들.  

그때, 알았다.



왜  처음,이라는 것이 내겐

서글픔의 또 다른 이름이었을까


그 숭고하기까지 한 순간들을 함께 꿈꾸던 이들이 조금씩 멀어지더니


정말 그  ,이라는 순간이 다가왔을 때,

이미 작고 작아져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내가 바라던 모든 것들이 모두 그대로

나를 찾아왔음에도

내가 더 밝게 환하게 웃지 못했던 이유들 중 하나는


그 처음이라는 것이 오기까지

내가 얼마나 많은 밤을 새웠으며


얼마나 많은 숨을 내셨는지

을 붉히며  재잘재잘 털어놓을

그, 얼굴들이 결국 곁을 떠나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그것이 아주 오래 머물지 않는

아직은 알 길이 없다.  





가랑비메이커 낭독콘서트, 2015

가랑비메이커 인스타그램 @garangbimaker

가랑비메이커 공식 메일 imyourgara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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